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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임우선의 뉴스룸]이제 정말 교육특구 강남으로 가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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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오늘 정말 기운 빠진다. 이 와중에 안경환 아들은 하나고, 김상곤 세 딸은 강남 특구 여고, 조국 딸은 한영외고, 조희연 두 아들은 명덕외고, 대일외고…. 진짜 내로남불 차원을 넘어서는구나….’

16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는데 한 이용자가 올린 글이 눈에 들어왔다. ‘진보는 다를 것’ ‘이번 정부는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결국 당신들 역시 ‘그들만의 리그’에서 살아온 기득권 아니냐고 묻는, 국민의 상실감이 느껴졌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20년을 대치동에서 산 ‘강남 토박이’이며, 여전히 19억 원짜리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고, 그의 세 딸이 모두 숙명여고 등 강남의 최고 명문고를 나왔다는 사실을 기자가 보도한 날이었다. 이날 김 후보자는 즉각 해명자료를 냈다.

김 후보자는 “자녀 교육이나 투기를 위해 강남으로 이주한 것이 아니다”라며 “실제 거주하기 위해 전입해 20년 이상 살고 있는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오른 것을 부동산 투기로 몰아가고, 추첨을 통해 지역의 학교에 배정받아 다닌 것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적었다.

한 부동산 블로거의 글을 인용해 “(과거 대치동은) 아래로 내려가 땅을 파면 개구리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었던 곳”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난 그냥 시골 같은 곳에 살고 있었을 뿐인데 저절로 ‘대박’이 났고, 그냥 동네에 있는 학교를 보냈을 뿐인데 거기가 명문이었다’는 얘기였다.

팩트는 틀리지 않지만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는 못하는 씁쓸한 해명이었다. 대다수 서민은 고착화된 사회적·경제적 격차에 재산 증식은커녕 빚만 안 져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특목고나 자사고, 강남 지역 명문 일반고에서의 자녀 교육도 생각하기 힘들다. 그런데 김 후보자는 ‘살던 데 살다 그렇게 됐는데 뭐가 문제냐’는 말만 하고 있었다.

김 후보자는 자녀들이 ‘뺑뺑이’로 가는 일반고 출신이란 걸 강조했지만 교육을 좀 안다 하는 부모들은 “숙명여고 다니고 일반고 다녔다고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숙명여고는 일반고지만 전국 일반계 여고 중 서울대 진학 성적이 가장 좋은, 매년 ‘SKY’에 수십 명을 보내는, 웬만한 외고나 자사고 뺨치는 면학 분위기를 가진 명문 사립여고다. 대치동 인근에 살아야만 배정받는 학교라는 점에서 어찌 보면 외고나 자사고와는 또 다른 차원의 ‘성벽’이 있는 셈이다.

‘경쟁 완화’ ‘교육의 공공성 회복’ 등 새 정부가 좋은 뜻으로 추진하려는 많은 교육 개혁 정책에 상당수 국민이 냉소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런 상황과 맞물려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엔 좋은 일반고가 없고, 잘 가르치는 교사도 없으며, 학교생활기록부를 정성 들여 써줄 교사도 없고, 아이들의 꿈과 끼를 찾아줄 다채로운 교육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데 수능은 왜 없애며 교육 개혁은 다 무슨 소리냐’는 것이다. 입시 전문가들조차 새 정부가 추진 중인 외고·자사고 폐지에 대해 “강남 일반고만 덕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엊그제 비교육특구에서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이제 정말 더 빚을 내서라도 강남으로 가야 하는 거냐고. 나도 진짜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물었다. 19억 원은 아니래도 전세금 10억 원은 있냐고. 우리는 웃다가 긴 한숨으로 대화를 끝냈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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