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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정규직이 먼저 통큰 임금양보… 현대차도 응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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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통상임금 체불액 등 활용 방침

“기금으로 하청 노동조건 개선”

사쪽, 그룹 공동교섭에 난색

전문가들 “일자리 창출 위해

정부가 대화의 장 만들어야”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채권)에서 2500억원을 떼내 하청업체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쓰겠다고 선언한 것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노동계가 먼저 손을 내민 의미있는 진전으로 평가된다. ‘재벌 몫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는 ‘사용자 선 책임론’에서 한발짝 나아가 ‘정규직 노조 책임론’을 일부 받아들인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5000억원대의 ‘일자리연대기금’이 현실화돼 한국 사회의 집단적 노사관계의 모범이 탄생할지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연대기금이 현실화하려면 현대·기아차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사쪽은 그룹사 공동교섭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어려움이 예상된다.

금속노조의 이번 제안은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통상임금 채권과 매년 임금·단체협상 합의 때 노동자가 받는 임금인상분의 일정 금액을 재원으로 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주식배당금 가운데 일부’를 종잣돈으로 내놓으라고 요구했던 지난해와는 사뭇 다르다. 정규직 노동자의 몫을 내놓는 만큼 일자리연대기금은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위해 쓰일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의 경우 주간연속 2교대제(주간조 8시간, 야간조 8시간 근무)를 통해 노동시간이 단축됐지만, 협력사나 하청업체의 경우 10시간씩 근무하거나 주야간 맞교대로 일하고 있는 곳도 많다”며 “연대기금을 하청업체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도 늘리는 데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속노조의 제안이 현실화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현대·기아차가 이에 응할지 여부다. 금속노조는 계열사 임단협이 사실상 현대차 본사의 주도로 이뤄진다는 점을 들어 계열사 공동교섭을 요구해왔지만 그동안 회사 쪽은 응하지 않았다.

두번째 산은 일자리연대기금 조성의 핵심 종잣돈인 ‘통상임금’ 체불액 지급 시기와 규모를 노사가 합의할 수 있을지다. 현대·기아차 계열사 17곳 가운데 소송 중인 사업장은 13곳으로 원고의 수만 9만2천여명에 이른다. 노조는 노동자 1명당 평균 임금채권 액수를 2100만~6600만원으로 추산한다. 이미 2013년말 대법원은 임금의 상당액을 차지하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했지만, 현대·기아차는 이 기준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개인당 700만~1200만원의 체불임금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도, 회사는 통상임금 합의를 하지 않고 소송전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계속 소송 비용을 부담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이끌기보다는 노사가 타협하는 게 옳다”며 “노조가 (일자리연대기금이라는) 전향적 조처를 내놨기 때문에 경영계도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만 탓하며 수동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양극화 해소를 위한 해법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차 쪽은 노조 제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대차 관계자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회사 쪽이 2심까지 승소한 상황에서 노조가 1인당 수천만원을 받는 걸로 소송을 끝내자고 하는 것 자체가 억지”라며 “2500억원은 노조가 주장하는 임금채권의 3%에 불과한 금액인데 이게 노조가 선제적으로 희생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현대차는 2심까지 회사 쪽이 승소했지만, 기아차는 6년째 1심이 진행중이며, 노조 쪽이 승소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기아차의 경우 통상임금 소송가액도 훨씬 커서 6000억원이고, 지연이자를 포함하면 1조원에 이른다.

금속노조는 정부에 일자리연대기금 운용에 관한 컨설팅을 요청하는 등 논의 테이블에 정부도 끌어들일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규직 노조의 양보와 사회적 대화·타협의 중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한 바 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정부가 금속노조의 제안을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할 좋은 신호라고 화답하며 사회적 대화와 협의의 장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태우 정은주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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