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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하태훈의 법과 사회]소수의견도 존중받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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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이 사라질 위기다. 김이수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가 실종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장관 임명 강행으로 야당이 강경 반대의 날을 세운 터라 더욱 안갯속이다.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반대, 국가보안법 제7조 1항 중 반국가단체 ‘동조’ 부분 위헌,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교원노조법 제3조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낸 후보자가 헌법재판소 수장이 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야당의 문제제기는 그야말로 소수의견이다. 그런 시각과 견해는 수적으로는 소수일지 모르지만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언젠가는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생각이다. 후보자의 이념 편향성을 지적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지난 정부에서의 재판관들은 보수 일색으로 편향되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다양한 이념과 가치관을 가진 재판관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는 합의체여야 한다. 그것이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이자 도입 취지다. 소수의견을 많이 내 ‘미스터 소수의견’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정작 건수로 치면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의 소수의견은 ‘사회적 약자’ ‘기본권’ ‘민주주의와 법치국가’라는 키워드로 정리될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헌법재판소의 토양이자 헌법재판소장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경향신문

법학 공부를 시작하자마자 펼쳐지는 것이 학설의 바다다. 통설, 다수설, 소수설, 지배설, 유력설 속에 빠져 허우적대기 바쁘다. 법학은 정답이 없는 학문이다. 어떤 법적 이슈든 견해가 다양하게 갈린다. 법학 입문부터 통설이 무엇이고 다수설은 어떤 입장이며 판례는 어떠한지 이해해야 한다. 소수의견은 중요치 않다. 장식품쯤으로 여긴다. 좋은 학점을 받고 시험에 합격하려면 다수설과 다수의견, 판례의 입장에 따르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출제자가 소수의견에 서 있는 자라면 모를까 소수의견에 따라 결론을 내고 답안을 써낼 수험생은 거의 없다. 다수의견을 중시하고 다수설과 판례에 따라 사고하는 것이 법학교육의 과정이자 법률가의 평균적 모습이다.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도 다수의견으로 견해가 일치되는 경우가 있지만 종종 소수의견, 별개의견 등으로 견해가 갈리는 판결도 많다. 예를 들어 부부간의 강간죄에 관한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보았지만, 반대의견은 ‘강간’의 의미를 폭행·협박에 의한 ‘간음’으로 보고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처럼 간음을 부인 이외의 여자와 관계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부부간에는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논증한다. 주장할 수 있는 견해이고 일견 설득력이 있지만 간음의 사전적 의미만 바라봤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이처럼 법을 해석하여 적용하는 데는 법에 쓰인 언어의 다소간의 추상성과 다의성, 가치충전이 필요한 개념사용 때문에 다양한 견해가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방법론을 배우는 것이 법학교육의 핵심이다. 따라서 다수의견이든, 소수의견이든 중요하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은 그르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다수의견만이 건전한 사회통념일 수 없다. 소수의견이라고 국민의 뜻에 반하는 것도 아니다. 지지자도 있고 소수의견이 더 정의에 부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이나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다수결로 한다면 우리 사회의 소수는 보호받을 수 없다. 다수에 밀린 소수는 언제까지나 변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소수의견이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여 시대의 흐름을 바꾸고 사회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이 되는 데 평균 7.3년이 걸렸다는 조사결과처럼 다수의견이 절대적이고 불변인 것은 아니다. 시대상황과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합헌에서 위헌으로 바뀐 ‘혼인빙자간음죄’와 ‘간통죄’가 이를 말해준다.

소수의견을 이념적 편향이라고 낙인찍는 것이야말로 위헌적 사고이자 반민주적이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공동체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약자와 소수자 보호에 힘써야 민주국가라 할 수 있다. 그것이 헌법적 요청이기도 하다. 소수의견이든, 다수의견이든 치밀한 논증이 없으면 설득력이 떨어질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래서 판결에서의 의견이 논증이 부실하거나 체계적이지 않거나 비논리적인지를 살펴봐야지, 소수의견을 취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헌법재판소 소장도 9명의 재판관 중 1명이다. 그가 소수의견의 대가이든, 다수의견을 취한 재판관이든 상관없는 이유다. 김이수 후보자가 당시 여론과 정치적 압력에도 소신을 지켰다는 것은 위대한 반대자이자 정치적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신념의 소유자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추천권자나 임명권자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권력에 굴하지 않는 헌법재판소의 수장이 필요한 대한민국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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