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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정의길 칼럼] 문정인은 할 수 있는 말을 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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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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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의 워싱턴 발언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노선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논란으로 만들려고 하는 쪽이 있고, 만들어지고 있다.

문 특보는 16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과 협의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고,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국이 전략무기를 축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문 특보의 발언을 한-미 동맹을 저해하는 철부지 언행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때맞춰 문 특보와 같이 임명됐던 홍석현 외교안보 특보는 사임을 요구해 해촉 절차를 밟고 있다 한다. 공교롭게 홍 특보가 경영했던 언론이 문 특보의 발언을 한-미 동맹을 저해하는 철부지 언행으로 몰아붙이는 선두에 섰다.

일부 언론은 문 특보가 세미나 뒤 한국 특파원들과 개인적으로 만난 모임에서 한 발언까지 끄집어내어, 문 특보를 비난하는 재료로 삼고 있다. 문 특보의 발언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쪽의 패를 미리 보이는 성급한 발언이었다는 점에서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는 개인 자격으로 세미나에서 발언했다. 또 특보라는 비상근 직책임을 고려하면 그가 장외에서 북핵 해결을 위한 여론 탐색을 했을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그의 발언에 능동적인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한국 언론들은 미국 정부의 관리들을 억지로 두드려서, 지극히 원론적인 논평을 끌어내고는 한-미 균열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스터 문의 개인 견해로 본다.” “한국 정부의 공식 정책이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정부에 알아보기 바란다.” 개인 자격으로 세미나에 참석한 문 특보와 그의 발언을 한국의 대통령 특보로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말했다고 미국이 논평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 아닌가?

최근 사태는 기시감을 준다. 김영삼 정부 이래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 쪽의 외교 공간과 주도력을 높이려는 시도는 언제나 ‘한-미 동맹을 해치는 철부지 자주파’ 언행으로 매도당해 왔다. 김영삼 대통령의 “민족이 동맹보다 앞선다”는 취임사가 시작이었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윤영관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의 사임까지 빚어진 북핵과 대미 관계를 둘러싼 이른바 자주-동맹파 분란이 일었다. 당시 외교부 내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 및 대미 관계 정책을 미국대사관 쪽에 비판적으로, 아니 거의 비난 수준으로 보고하다가 사달이 났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는 주로 정부 안에서 새로운 대북 및 외교 노선에 대한 저항과 비토가 일고, 보수 언론 등이 밖에서 이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번에 달라진 게 있다면, 정부 안이 아니라 밖에서 먼저 주도적으로 나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이는 분명 기존의 대북 정책과는 차별되는 노선이다. 문 특보의 발언도 그 연장선상에서 하나의 가능성과 옵션을 말한 것이다. 문 특보의 발언이 비판되고 부정돼야 한다면, 그 모태가 되는 문 대통령의 제안이 먼저 비판되고 부정돼야 한다.

지지도가 높은 문 대통령의 새로운 대북 제안에 대한 직접적 비판이 부담되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인선과 문 특보의 발언을 놓고 전방위적인 흔들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 내용도 조악하기 그지없다. 사드는 무조건 배치돼야 하고, 미국이 한반도와 관련해 펼치는 모든 정책은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하는 대로 따라가서 심기를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 특보 발언을 계기로 보수 언론이나 야당이 제기하는 비판과 주장을 아무리 뜯어봐도 다른 논리가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로 정의된다. 압박을 한 뒤에 북한이 항복하고 손들고 나오면 관여, 즉 대화를 하겠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진행될 수 없다. 그 내용은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이제 채워나가야 한다.

문정인 특보는 학자로서나 특보로서나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이를 부정하면, 다양한 선택과 공간을 넓히는 작업인 외교를 부정하는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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