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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靑 비서실장이 된 홍길동' 임종석의 51%를 위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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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51세에 청와대 비서실장이 된 조정과 협상의 달인. 학생운동권의 전설 '임길동'.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임종석 비서실장은 언뜻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수식어를 한 몸에 받는다. 그만큼 다양한 깊이를 지닌 정치인이라는 평가다. 지인들은 그를 한때의 운동권 전설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화려하게 정계 입문하고도 국회의원 선거서 쓴 잔을 마시는 등 지난 세월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그런 임 실장을 통합의 정치뿐 아니라 '젊고 일하는 청와대'라는 역동성의 상징으로 국정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시켰다.

문재인의 '특명'= 문재인 대통령이 '야인' 신분으로 대권 구상을 하고 있던 지난해 9월, 측근들에게 특명을 내렸다. 특명은 "임종석을 영입하라"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대통령비서실장이지만, 당시 임 실장은 박원순계로 분류되던 야인이었다. 지난해 4·13 총선에서 서울 은평을에 출사표를 냈지만 당내 경선에서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충격패를 당한 상황이었다.

끈질긴 설득 끝에 임 실장을 영입한 문 대통령은 그에게 처음부터 캠프 비서실장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표면 상 '2선'으로 물러났고, 그 자리를 임 실장이 차지했다. 그가 합류한 후 캠프에서는 "역시 임종석"이라는 말들이 나왔다.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의 간판 답게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문재인 캠프의 중심으로 완벽하게 거듭났다는 평가였다.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활약했던 한 인사는 "문 대통령이 임 실장의 영입을 특명으로 지시한 것은 86그룹 간판격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리더십에 주목했기 때문"이라며 "3철(양정철·이호철·전해철)로 대표되는 '비선' 논란을 잠재우고, 친문(文)이 아니면서 캠프와 당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의 상징으로 임 실장을 내세웠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임 실장은 캠프와 선대위를 거치며 문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꾸준히 활약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를 하자마자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낙점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총선에서 충격의 경선 탈락을 한 지 약 1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젋고 역동적인 청와대의 상징 격으로 임 실장을 비서실장에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 국면에서 '통합'의 상징에 이어, 당선 후 '역동적인 정권'의 상징으로 국정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올해 51세의 임 실장은 취임과 동시에 "예스맨이 되지 않겠다"고 말하며 문 대통령의 선임 취지에 맞는 초반 행보를 보였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 조국 민정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등과 함께 '청와대 F4'로 불리는 등 대중적 인기도 얻고 있다. 정권 초 '신데렐라'와 같은 모습이지만, 그가 86그룹의 간판이라고 해서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운동권 스타 '임길동'에서 대통령의 최측근 '임 실장'으로 성장해온 그의 이력은 범상치 않다.





운동권 간판, 별명은 임길동=임 실장은 1986년 한양대 무기재료공학과에 입학했다. 1학년 때부터 민중가요 동아리에 가입하는 등 학생운동에 가담했다. 한양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1989년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에 뽑혔다. 수려한 외모를 가진 덕에, 여학생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으로 꼽히기도 했다. 운동권 스타의 탄생이었다.

그의 별명은 '임길동'이었다. 경찰의 지명수배망을 뚫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모습에 붙어진 별명이었다. 수배기간 동안 그가 내외신과 진행한 기자회견만 10번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경찰의 포위망을 비웃는 듯한 모습에 대학생들은 열광했다. 그와 같은 시대에 대학생이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청와대 비서실장 임종석이 아닌, '임길동'을 먼저 떠올릴 정도다.

특히 1989년 6월 당시 이른바 '임수경 방북사건'을 주도해 유명세를 탔다. 한국외대 학생이었던 임수경 전 민주당 의원이 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그해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제'에 참석한 사건이다. 노태우 정권이 '불허'했지만 임 실장과 전대협은 제3국인 일본, 독일을 거쳐 임 전 의원을 평양으로 보냈다.

임 실장은 2008년 자신의 책에서 "무기징역을 받아 더이상 바깥세상 구경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비장한 심정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사건으로 전대협 간부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임 실장은 3년6개월 간 복역했다.

그에 대한 이른바 '주사파' 논란이 끊이지 않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아는 임종석은 더 이상 주사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 의원은 "임 실장이 저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통일맞이' NGO(비정부기구)를 같이 했는데, 맹목적인 주사파 비판을 임 실장이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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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정치판에선 부침.. 총선공천 등 쓴잔= 임 실장은 복역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NGO 활동을 하다가 현실정치에 뛰어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에 따라 민주당에 입당했다. 2000년 총선에 출마, 서울 성동구에서 당선됐다. 당시만 34세로 최연소 국회의원이었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참여본부 사무총장으로 승리에 기여했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 상정되자 국회에서 몸싸움을 벌이며 탄핵을 저지하는 모습이 국민들 뇌리에 박히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일던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서울 성동(을) 지역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 재선에 성공했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시련은 그 이후 찾아왔다.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에 나선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후보에게 석패했다.

한명숙 전 총리가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이던 시절 대변인으로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이 같은 인연은 2012년 4·11 총선(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대표로 당을 진두지휘하게 된 한 전 총리가 임 비서실장을 후보 공천을 조율하는 사무총장으로 발탁한 배경이 됐다.

당시 임 실장은 저축은행 비리 사건과 관련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1심에서 유죄(징역 6월·집행유예 1년)를 받은 상태였다.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란 평가와 일각에선 '비리 인사'라는 비판이 혼재했다. 결국 총선 공천과 당내 계파를 둘러싼 갈등이 공천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에게 향하면서 한달 반만에 자진 사퇴했다. 총선 출마의 뜻도 접었다.

공교롭게 당시 한명숙 대표에게 임 실장의 공천을 철회하라고 요구한 것이 문 대통령이었다. 법정 공방 끝에 2014년에 이르러서야 임 실장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재기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통해 이뤄졌다. 박 시장은 임 실장을 2014년 6·4 지방선거 캠프 총괄팀장으로 영입했다. 당선 후에는 서울시 정무부시장까지 맡아 시정 경험의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문 대통령에게 영입될 때까지 그는 '박원순맨'으로 분류됐다. 문재인 정부의 하승창 사회혁신수석과 김수현 사회수석도 '박원순맨'으로 불린다.

현실주의자가 된 임길동= 정치인으로 임 실장은 현실주의적이라는 평가다. 2003~2004년 이라크 파병 문제가 불거졌을 때 처음에는 "파병 시 의원직 사퇴"를 거론하며 단식에 돌입하기도 했으나 이후 "나의 희망이나 철학과 달리 객관적으로 돌아가는 국제질서 안의 문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항상 원점에서 주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파병 재검토 서명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지금 바꾸기는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면모는 '51%를 위한 정치'라는 '정치인 임종석'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그는 2014년 서울시 정무부시장 시절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라크 파병 문제 당시를 생각하며 "저 나름대로 늘 책임있는 입장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30% 지지층만 상대로 한 정치를 하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또 "늘 51%를 생각하는 게 어떤 의제에 부딪혔을 때 제가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생각은 소통과 통합을 강조하는 '비서실장 임종석'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평가다.

정책면에선 남북교류, 평화경제 분야에 전문성을 인정 받는다. 참여정부 시절 개성공단 지원법 입법을 주도했다.

청와대는 임 실장 인선 당시 "여야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정치권 인맥을 갖고 있어 청와대와 국회 사이의 대화와 소통의 중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개성공단 지원법'을 제정하는 등 남북관계에 많은 경험과 철학을 갖고 있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제대로 뒷받침할 것으로로도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 한 장의 사진= 운동권 시절 실제 수배전단에 올랐는데, '응답하라 1988'에 등장했다. 임 실장은 지난 3월13일 이에 대해 SNS에서 "지인이 찾아서 보내주셨는데 웃다가 쓰러지는 줄 알았다"며 "p.s.(추신) 남의 키는 왜 6cm나 줄이시나"라고 멘트했다. 그는 176cm인데 화면 속 전단엔 170cm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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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임종석 비서실장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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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퍼지면서 '응팔' 제작진은 임 실장이 임명된 지난 10일 SNS를 통해 사과(?), 다시 화제를 모았다.

"<응팔> 미술팀입니다~ 사과 드리러 왔습니다. 팬심으로 꼭 출연시켜드리고 싶어 예전 자료를 보고 만들다보니 176을 170으로 봐서 6cm나 줄였네요~ 죄송합니다 ㅋ ps. 비서실장 지명 축하드리며 새로운 청와대 문화를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전남 장흥 출생 △용문고, 한양대 △한양대 총학생회장 △전대협 3기 의장 △16,17대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대변인 △통합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민주통합당 사무총장 △박원순 후보 캠프 총괄팀장 △서울시 정무부시장 △2017년 문재인 후보 캠프 비서실장

최경민 ,김성휘 기자 brow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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