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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정신질환 강제입원 금지` 불안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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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된 정신보건법 30일 시행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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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30일부터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 요건이 까다로워진다. "의료 현장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법안"이라는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가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을 밀어붙이자 의료계는 시행 첫날에 '법 전면 재개정'을 촉구하는 공청회를 열며 정면으로 맞설 예정이다. 이날부터 시행되는 정신건강복지법은 기존 정신과 전문의 1인 진단으로 가능했던 '강제 입원'을 서로 다른 기관의 전문의 2인이 진단해야만 가능하도록 바꾼 법안이다. 2명 중 1명은 국공립 병원 전문의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했다. 의사 단 1명의 의학적 소견으로 강제 입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인권 침해 소지가 있으며 2주 안에 2차 소견을 구해 공정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취지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정신 의료기관 입원 환자 7만명 중 60%에 달하는 4만2000명이 강제 입원 환자다.

또 '정신질환자의 탈(脫)수용화'를 골자로 하는 개정법은 △자·타해 위험성이 있고 △치료·요양이 필요한 정신질환자여야만 강제 입원이 가능하도록 요건을 강화했다. 과거에는 두 가지 요건 중 하나만 만족시키면 됐는데 더 엄격해진 것이다. 나아가 1개월 안에 별도 기구인 입원적합성위원회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입원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복지부는 이를 "억울한 입원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의료계는 "현실을 무시한 졸속 입법" "인권 보호 취지에 역행"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2인 진단'에 필요한 국공립 병원 전문의 수가 현저히 부족하고, 지역사회에 퇴원한 정신질환자들을 돌볼 재활·치료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들을 적시에 치료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법"이라는 것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인 진단에 필요한 국공립 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5개 국립병원에 61명, 14개 공립병원에 79명으로 총 140명에 불과해 연간 최소 10만건에 달하는 비자발적 입원 심사를 감당할 수 없다고 염려하고 있다.

개정법의 핵심인 입원적합성위원회도 심사에 1개월이란 긴 시간이 소요되고 서류 평가에 그치기 때문에 행정력 낭비만 초래한 채 오히려 인권을 침해한다는 게 의료계의 공통된 견해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료를 꼭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못 받을 수 있다"며 "시급히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을 다른 의료기관의 2차 전문의 진단이 있을 때까지 2주간 기다리게 한 뒤, 2차 진단의를 못 구하면 2주를 더 기다리라고 하는 게 결과적으로 인권 침해 아닌가"라고 말했다. 국공립 병원 진단인력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의료계 반발을 의식해 복지부가 '전문의가 부족해 진단을 받지 못한 경우 1회에 한해 입원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두고 '필요하면 민간 병원 전문의를 활용'하도록 했지만 이 역시 법 취지에 역행하고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설명이다.

법 시행 3개월 뒤부터는 석 달간 까다로워진 요건을 적용받은 환자가 대거 퇴원하면서 최대 1만9100명의 환자들이 병원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도 염려했다. 권 교수는 "알코올중독이나 거식증 환자처럼 '정신질환자'로 분류되지 않지만 당장 입원시켜 영양을 공급하지 않으면 신체에 이상이 생기는 이들도 개정법에 따르면 즉각 퇴원시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신경정신의학회는 '퇴원 대란' '사회복귀 인프라 부족' 등의 문제를 좌시할 수 없다며 30일 시행 당일 법 전면 재개정을 촉구하는 공청회를 열고 강경 대응에 나섰다. 최근 경기연구원은 국내 사회복귀시설의 수용 정원이 7000여 명으로 전체 중증 질환자(51만5293명)의 1.4% 불과해 퇴원 환자를 돌보기에 역부족이며 정신건강증진센터 요원 1명이 100명의 중증 질환자를 맡아야 한다는 실태를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의료계가 30일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서울지방변호사회와 함께 여는 공청회는 대안으로 거론되는 '사법입원제도'의 국내 시행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복지부는 이미 입원 진단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충분히 확보했으며, 일단 법을 시행한 뒤 점진적으로 정신건강증진센터 등 사회복귀시설과 지역사회의 치료·재활 인프라를 늘려 나가면 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법 개정 이후 매년 입원 진단 건수가 13만4000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미 대응인력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보고 있다. 복지부는 "풀타임으로 환산한 국공립병원 전문의 수가 80명으로 최소 필요 인력(42명)의 두 배에 달한다. 입원 진단 업무를 수행할 의료인력 준비와 제반사항 준비를 마쳤다"고 해명했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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