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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구의역 사고 1년…동행르포]김군의 비극은 ‘안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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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 안전모가 메트로 안전모로

2인1조·주간철로작업 금지시켜

-“전엔 밥도 못먹고 일했던데…

휴게시간 보장…걱정 마세요”


앳된 얼굴의 김우현(24) 씨는 소지품을 보여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수줍어하며 가방을 열어 보여줬다. ‘서울메트로’ 직인이 박힌 안전모가 형광조끼와 함께 제일 먼저 나왔다. 김 씨의 손때 묻은 스크린도어 수리 관련 메뉴얼과 도면자료, 드라이버와 육각렌치가 뒤를 이었다. 가방 고리에는 노란 세월호 리본이 달려 있었다.

지난해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강남 방면 9-3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모(19) 군이 전동차에 치어 허망하게 숨졌다. 지하철 97개 역의 고장을 처리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김 군의 유류품에는 기름때에 전 스패너 등 작업공구와 함께 컵라면, 숟가락이 있었다.

헤럴드경제

김우현 씨가 플랫폼에서 스크린도어 레이저 센서를 리모컨으로 조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제2ㆍ3의 스크린도어 수리공 김 씨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김 씨는 24일 오후 3시께 서울 지하철 3호선 약수역에서 출발해 경복궁역으로 향했다. 이전 근무조가 발견한 UPS(무정전 전원장치)의 냉각팬 고장을 수리하기 위해서다. 부품이 맞지 않았다. 사진 촬영 후 조장 김남린(43) 씨에게 보고했다. 김 씨는 김 씨에게 약수역으로 돌아와 다른 부품을 챙겨 고치자고 했다.

김 씨는 “시간제한은 없어졌습니다. 되도록 빨리 수리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는 있어요. 인력 충원도 충분히 이뤄져서 2인 1개조 원칙도 지켜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구의역 사고 당시 하청업체 은성PSD에는 현장직보다 관리직이 배 이상 많았다. 관리직은 대부분 원청업체 서울메트로 퇴직자로 채워졌다. 수리공인 구의역 김 씨가 혼자 97개 역을 점검해야 했던 이유였다.

이후 인력 충원이 이뤄졌다. 김 씨가 속한 PSD(Platform Screen Door) 약수관리소는 인근 30개 역사를 담당한다. 45명이 주간ㆍ야간ㆍ휴무로 조를 나눠 근무한다. 인력 충원은 어느정도 이뤄졌다. 다만 아직 거리가 멀리 떨어진 역을 고려해 2개 정도 분소가 추가됐으면 하는 것이 김 씨의 바람이다.

김 씨는 이후 안국역으로 이동했다. 종합제어시스템 운영체계를 윈도우XP에서 윈도우7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김 씨는 “이제 지하철이 운행되는 주간에는 철로로 내려가서 수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승강장에서 할 수 있는 점검 내지 간단한 정비만 합니다. 철로로 내려가서 장시간 수리해야 하는 것은 야간에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안전 수칙은 확실하게 자리 잡은 모양새다. 고질적인 문제였던 적외선 센서도 레이저 센서로 교체했다. 철로로 내려가지 않고 승강장에서 리모컨으로 점검 및 조정이 가능해졌다.

아쉬움은 없을까.

김 씨는 “제가 서울메트로에 입사한 게 8개월 됐습니다. 처음에 들어올 때 부모님이 걱정 많이 했어요. 밥도 못 먹고 일한다던데 괜찮겠냐고요. 구의역 사고 때문이죠. 다행히 그 이후로 휴게시간이 보장되서 그런 걱정은 덜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김 씨가 말했다.

“저는 스크린도어 관리 업무 10년입니다. 은성에서 4년 7개월 포함해서요. 서울메트로에 무기계약직으로 들어온 것은 지난해 9월이고요. 정규직 분들과 급여 차이가 있습니다. 기존 경력이 인정 안 된 것도 있고, 급수 없이 호봉만 있는 임금 체계도 차이를 만듭니다. 조장급 중에는 오히려 월급이 줄어든 경우도 있습니다. 처우 개선을 약속했으니 지켜봐야죠. 시장과의 약속도 믿습니다.”

안국역 UPS실에 먼지 쌓인 ‘은성’ 안전모가 굴러다녔다.

김진원 기자/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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