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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숲 안쪽 어딘가 있는, 쇠창살은 없는 '자유로운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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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승우의 두 컷 세계여행] 케냐 나이로비 & 프랑스 파리

'세렝게티 초원'.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세렝게티는 '끝이 없는 평원'이라는 뜻의 마사이어에서 온 이름이다. 케냐에서 탄자니아에 걸친 3만㎢ 땅 위에 수백만 마리의 동물들이 살고 있다. 말 그대로 '동물의 왕국'이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케냐의 나이로비까지 왔건만 6시간 거리의 세렝게티까지는 갈 여유가 없었다. 나는 나이로비 시내 안에 동물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케냐의 동물원이라면 세렝게티를 대신할 뭔가를 보여주지 않을까? 잔뜩 기대하고 '나이로비 사파리 워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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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나이로비의 ‘나이로비 사파리 워크’에 설치된 나무다리를 따라 걸으며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 숨어 있기를 좋아하는 동물들은 보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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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비 사파리 워크는 나이로비 국립공원의 동물원이다. (나이로비는 수도 안에 국립공원이 있다고 자랑하는데, 하하하, 서울에도 북한산 국립공원이 있다.) 말 그대로 걸을 수 있는 사파리다. 사파리! 엄청난 크기의 평원과 숲 사이에 나무다리를 연결해 길을 만들었다. 한 바퀴 둘러보는 데 2시간 이상 걸린다. 나무다리와 숲 사이로 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 '사자' '레오파드' 같은 표지판이 있는데, 정작 동물들이 몇 마리 보이지 않는다. 숲 안쪽 어딘가 있단다. '동물의 왕국' 옆 동물원답다. 처음에는 동물들이 안 보여서 실망했는데, 넓은 땅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쁘지 않았다. 보통의 동물원에서 창살 안에 갇혀 있는 동물을 보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희한한 나무들로 뒤덮인 숲속 길을 걷다가 길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개미떼의 행렬을 봤다. 크기도 규모도 엄청나다. 옛날 '타잔' 영화에서 본 것 같다.

동물원이란 근대 서양의 산물이다. 이국으로 탐험을 떠나고 다른 땅을 정복하던 시대, 그 정복의 결과물을 계몽 혹은 구경거리라는 핑계로 가져와 전시하던 곳이 동물원이다. 초기의 동물원들은 팔려가는 동물들을 임시로 모아 두었던 곳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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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자뎅 데 플랑트 동물원’의 건물과 우리는 당시의 건축 양식을 따라 만들어진 것들이다. 19세기 파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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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옛 동물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곳은 어디일까? 내가 가본 곳 중에는 프랑스 파리의 '자뎅 데 플랑트 동물원'이 있다. 파리의 한복판이다. 1794년 개인들이 소유한 야생동물을 한자리에 모은 것으로 시작했다. 곧 코끼리 같은 대형 동물을 들여왔는데, 1826년에는 프랑스에 최초로 기린이 공개되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이야기가 있다. 1871년 파리코뮌의 고립 상황에서 코끼리를 포함한 6마리의 동물들이 식용으로 이용되었다. 당시 식당의 메뉴판에 이런 동물들의 목록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이 동물원이 재미있던 점은 전시관이나 동물 우리가 당시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비대칭의 곡선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아르누보식 철골 구조물들은 19세기 말의 파리를 생각하게 한다. 동물원 근처에 '자연사 박물관'이 있는데, 이 건물도 멋지다.

지금 파리에는 훨씬 크고 훨씬 세련된 동물원이 하나 더 있다. 파리 시내 동쪽의 뱅센 숲에 있는 '파리 동물원'이다. 자뎅 데 플랑트의 동물원이 너무 좁아서 1934년 더 큰 동물원을 만들었다. 원래 동물원에는 작은 동물들만 남았다. 그리고 2014년 다시 한번 1700억원을 들여 개조했다. 지금은 동물 친화적인 최신의 동물원이 되었다. 이곳에는 쇠창살이 없다. 동물들은 갇혀 있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어딘가 숨어 있으면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뭐?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그런 것이 최신형의 동물원이라면 이미 난 그런 동물원을 보았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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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코스타리카 정부는 동물원을 모두 없애고 동물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겠다는 발표를 했다. 10년간 점진적으로 동물을 돌려보내겠단다. 세계 최초로 동물원이 없는 나라가 된다고 한다.

나이로비 사파리 워크에서는 가이드 투어를 할 수 있다. 나이로비 국립공원에서 자동차로 사파리 투어를 할 수도 있다. 7월과 8월에는 동물들이 떼 지어 이동하는 장관을 볼 수 있다.

파리의 '자뎅 데 플랑트'는 식물원이다. 5구에 있으며 주변에 아랍 사원과 로마 시대 경기장 유적이 있으니 함께 둘러봐도 좋다.


[채승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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