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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김대중 칼럼] 安保는 잘못되면 물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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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 탄핵으로 탄생한 정부… 새 인사와 정책 도입 서둘러

그래도 결정하면 철회 어려운 安保만은 섣부른 판단 안 돼

韓·美 정상회담 때 담판보다는 트럼프 의중 탐색할 기회 삼길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된 지 2주일도 안 되는 기간에 많은 것을 쏟아내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국정교과서 폐지, 세월호 진상 조사, 국정 농단 재조사, 4대 강 사업 감사 등 주요 국정 사안에서부터 기념식 노래 제창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사에 있어서도 청와대 비서진, 검찰, 외교 분야에 걸쳐 변화의 기운이 뚜렷한 파격(?)을 단행하고 있다. 측근을 운동권 출신의 진보·좌파적 성향의 인물들로 채우는 것도 눈에 띈다.

새 대통령과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 인물, 새 정책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정권 교체의 '전리품'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돼서 인사도 마음대로 못하고 당면 과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도 모색하지 못한다면 애써 대통령 할 이유가 없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과 정책이 과연 그 정권과 나라에 이롭게 작동할 것이냐의 여부는 나중에 판단할 일이고 시작 단계에서부터 시비를 걸 문제는 아닌 것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절차와 과정을 존중했으면 하는 것이다. 지금의 새 대통령과 정부는 전임의 탄핵이라는 비상 상황으로 인해 앞당겨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과정이 단축되고 준비가 덜 된 상황이기에 서두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모든 것이 대통령과 비서 측근 몇 사람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대북 기본 방향 전환에 대해서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북관계의 단절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민간 교류 등 남북 관계 주요 사안들에 유연하게 대처할 것임을 천명했다. 좌파 정권의 등장을 실감케 하는 것들이다.

새 대통령이 전임의 '청와대 관저 정치'와 엄연히 다른 면모를 강조하려고 한다면 몇몇 정책을 섣불리 선보이기보다 먼저 정부를 제대로 궤도 위에 올려놓은 뒤 주요 정책을 재정비하고 개선하는 것이 순서다. '비서 정치'로 가면 끝내 불행해지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익히 배우고 있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의도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내각의 진용이 짜이고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기 전에 또는 각 정당이 대선 후유증에서 채 벗어나기 전에 문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대선 전에 이미 마련해 놓은 '변화'들을 재빨리 기정사실화하려는 전략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국방과 안전 보장에 관한 사안만은 섣불리 결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그의 캠프가 대선 때 내걸었던 사드 배치 재검토, 전시작전권 전환, 방위비 분담 등 한·미 관계에 관한 문제 그리고 북핵과 미사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가동 등 대북 문제는 서둘러 결말을 보려고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국내 정치, 경제정책, 사회정책에 관한 것들은 이 정권에서든 또는 다음 정권에서든 교정 내지 궤도 수정이 가능하다. 잘못됐으면 바꾸면 되고 고치면 된다. 비록 비용은 지불해야 하겠지만 그것으로 나라가 결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안보 문제는 다르다. 한번 결정되면 바꿀 수 없다.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섣부른 '자주'로 한·미 동맹에 금이 가면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한다. 대(對)중국 관계, 대일본 관계에 변수가 발생하면 나라가 흔들릴 수 있고 우리는 백척간두에 내몰릴 수 있다. 이런 사안만큼은 문 대통령과 그의 측근, 같은 편(便) 진용만으로 독단적으로 또는 이념의 차원에서 결정하고 실행할 일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국토의 보전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인 만큼 대통령은 내각의 충분한 토론과 찬반 전문가들의 숙고를 거친 조언을 받아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갖기 바란다.

문 대통령이 근자에 외교·안보에 관한 인사에 치중하는 것은 6월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권위와 집중력이 그의 대러시아 관계 특검 수사로 흔들리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돌출적이고 돌발적인 그와 어떤 담판(?)을 하거나 우리 측 의견을 강압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그의 생각과 의중을 읽는 탐색의 기회로 삼는 것이 우선은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선이 끝난 지금 우리는 미국의 어느 주지사(공화당)가 최근 CNN의 타운미팅 방송에서 한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란, 소통이란, 통합이란 자신의 의견과 다른,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견해를 최소한 10분간 들어주는 인내와 아량을 의미한다.'

[김대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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