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4 (금)

[이유종의 뉴스룸]‘틈새’ 전략으로 ‘금융 허브’ 된 룩셈부르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동아일보

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영국계 보험회사 ‘히스콕스’가 이달 초 런던 유럽본부를 룩셈부르크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히스콕스는 “친기업 정책, 합리적인 금융규제를 고려했다”고 설명했으나 실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고려한 조치였다. 경쟁회사 ‘AIG’ ‘푸르덴셜’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브렉시트 이후 시장 접근성 하락을 우려한 금융회사들이 런던 금융가를 떠나고 있다. ‘포스트 런던’을 노린 독일 프랑스 아일랜드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이런 가운데 룩셈부르크가 단연 돋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룩셈부르크는 1인당 국민소득이 10만 달러가 넘는 유럽의 대표적인 강소국이다. 19세기 중반만 해도 가난한 나라였으나 1850년대 프랑스 국경을 따라 철강석이 발견되면서 철강산업에 몰입했고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철광석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면서 철강의 GDP 비중은 1970년 30%, 1985년 10%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룩셈부르크는 1950년대부터 일찌감치 대안을 찾았다.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과 국경을 접한 지리적인 입지를 고려해 금융산업에 주목했다. 사실 룩셈부르크는 1856년에야 첫 은행을 세울 정도로 미국 독일 스위스와 비교해 금융 산업이 100년 이상 뒤처졌다. 그 대신 남보다 빨리 시장을 열었다. 룩셈부르크 증권거래소는 1963년 통화국 밖에서 해당 통화국의 화폐로 표시된 채권을 발행하는 ‘유로본드’를 처음으로 거래했다. 그러자 돈이 몰렸다. 1978년 기독교 국가가 대부분인 유럽에서 처음으로 이슬람 금융기관 설립을 허락했다.

1988년 유럽 최초로 ‘유럽의 공모펀드 투자 기준(UCITS)’을 도입해 각종 투자기금을 모았다. 이 기준대로 EU의 한 회원국에 펀드를 등록하면 다른 국가에서도 등록 없이 펀드를 팔 수 있다. 금융회사들은 룩셈부르크에 속속 지점을 열었다. UCITS에 따른 투자는 현재 67%가 룩셈부르크에서 거래된다.

핀테크(정보기술과 금융을 결합한 서비스)에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유럽의회가 2009년 전자결제 규제안을 내놓자 EU 회원국 중 처음으로 적용했다. ‘아마존’ ‘페이팔’ ‘라쿠텐’ ‘알리페이’ 등 유명 전자결제 관련 회사들이 몰렸다. 1970년 37곳에 불과하던 은행은 2015년 현재 28개 국가, 144개 은행으로 늘었다. 이 중 룩셈부르크 현지 은행은 5곳에 불과하다.

우리는 어떤가. 노무현 정부 당시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금융 산업을 GDP의 1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금융허브’ 구상은 여전히 초보 수준이다. 서울과 부산은 금융허브를 지향하지만, 도쿄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등에 견주면 비교 우위를 보일 만한 요소는 찾기 힘들다.

EU에서는 동일한 금융 규제가 적용된다. 룩셈부르크는 차별화를 위해 감독권 행사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규제나 감독보다 금융 컨설턴트 역할에 전념했다. 이런 노력으로 히스콕스 AIG 푸르덴셜은 룩셈부르크의 법인세율(29.22%)이 아일랜드(12.5%) 등과 비교할 때 높은 수준이었으나 룩셈부르크를 결국 선택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금융허브를 위해 서울 부산의 차별화, 틈새 전략을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유종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pen@donga.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