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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영·유아기 '애착관계 형성' 중요… 사교육은 부작용만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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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희 육아정책연구소장 인터뷰

육아 문화 바뀌어야 저출산 해결
경제적 지원만으론 개선 어려워
양육의 기쁨 공유하는 사회 돼야

막을 내린 대선 토론에서 뜨거운 감자는 단연 '교육·육아정책'이었다. 해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예산을 쏟아붓지만, 저출산 문제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다. 그런데 당시 대선주자들이 활용한 연구자료의 공통된 출처가 있었다. 국무조정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가 바로 그곳으로, 연간 60건 이상의 연구를 진행하며 우리나라의 육아 문제와 현안을 고민하고 있다. 동덕여자대학교 아동학과 교수 출신으로 2015년 부임해 연구소를 이끄는 우남희(68·사진) 육아정책연구소장을 만나봤다.

◇육아, 힘든 현실보다 보람에 방점 찍어야

우 소장은 저출산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아이 키우는 문화가 바뀌어야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태도를 바꿀 수 있다"며 "문화가 가족 중심으로 바뀌고 가정의 중요성을 느끼는 사회 분위기가 먼저 형성돼야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이들에게 일자리와 집을 마련해주고, 육아수당을 준다 한들 아이를 낳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30대 여성을 만나보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로 '자유로운 생활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를 꼽더군요. 경제적으로 안정될수록 삶이 윤택해지니 결혼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고 일만 하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저출산 문제를 경제적 지원으로 막으려는 방안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출산과 양육의 기쁨을 공유하는 사회가 되도록 나아가야 해요."

그는 가정 내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맞벌이 부부 등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적어도 아이가 만 1세까지는 집에서 따뜻하게 보살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무상교육은 저출산 해법이 아닐뿐더러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수당을 주는 게 평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집에서 아이 키우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부모로 인해 가정에서 충분히 잘 키울 수 있는 아이들도 어린이집에 보내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부모는 아이들의 가장 예쁜 시기를 곁에서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육아의 보람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부작용이 나타나죠. 영·유아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의 애착관계 형성인데, 그것을 많은 부모가 소홀히 여기는 현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3남매를 둔 워킹맘인 그는 요즘 힘들어하는 후배 워킹맘들을 자주 만난다. 하나같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군대육아' '독박육아' 같은 단어가 회자되는 등 육아의 힘든 점만 두드러지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예나 지금이나 육아가 힘든 것은 똑같아요. 하나의 생명체를 인간으로 자립시키는 것은 웬만한 노력으로는 부족하죠. 하지만 지금 많은 엄마가 더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인식이 달라져서예요. 과거에는 결혼과 출산을 필수라고 생각했기에 어려운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달라요. 결혼과 출산이 '선택'으로 변한 현실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행동을 하면 더 힘들다고 느낄 수밖에 없죠. 따라서 저는 엄마들에게 힘든 선택을 한 만큼 수고로움은 감수하되, 다른 선택보다 훨씬 풍성한 결과를 기대하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분명히 힘든 만큼 보람도 큰 법이니까요."

조선일보

우남희(68)육아정책연구소장/임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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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기 사교육… 효과 미미해

육아정책연구소가 출산율 이외에 가장 관심 갖는 분야는 '영·유아 사교육 문제'다. 영·유아기의 과다한 사교육은 아동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다수 연구를 통해 입증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는 조기 과다 사교육에 따른 피해 어린이 사례를 연구한 '영·유아 사교육 실태와 개선 방안' 보고서를 들 수 있다. 연구소가 지난해 서울·경기·충남 상담센터를 찾은 유아·초등학생 124명을 대상으로 부작용을 조사했더니 관계의 어려움(13.5%)과 사회적 미성숙(11.0%), 불안(9.8%), 감정조절의 어려움(9.3%), 주의 산만(9.1%) 등의 순서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또한 올해 초 조사에서는 전국 5세 아동의 84%, 2세 아동의 36%가 사교육을 받는 현실을 밝혀냈다.

"저는 지난 25년간 영·유아기 사교육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연구를 통해 사교육 부작용을 입증했습니다. 영·유아기는 모든 뇌가 골고루 왕성하게 발달하는 시기이므로 어느 한쪽으로 편중된 학습은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잉학습장애증후군이나 우울증, 애착장애 등의 부작용만 낳을 뿐이죠. 이렇게 계속 강조해도 주변 엄마들 얘기에 흔들려 아이가 무엇을 배우는지도 모른 채 자녀를 여러 학원에 돌리는 경우가 많아요.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 유대관계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와 자녀의 좋은 애착관계는 영·유아의 놀이·탐색 활동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다양한 배움의 동기로 작용합니다."

그는 또 '지나친 사교육'이 가정을 와해시키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어려서부터 사교육으로 인해 가정의 울타리 밖으로 내쳐지다 보면 가정의 소중함을 모르는 상황에 익숙해진다는 얘기다.

"청년들을 만나보면 어렸을 때 학원 다니느라 초등학생 때부터 혼밥('혼자 먹는 밥'을 줄인 말)을 한 경우가 많아요. 이제는 그게 너무 익숙해서 부모를 비롯한 다른 사람과 밥 먹는 게 어색하다는 청년도 있더군요. 혼자 있는 게 익숙하다 보면 결혼과 출산의 필요성에 무뎌질 수 있습니다. 성적 올리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로 인해 다른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게 아닌지 곱씹어볼 시점입니다."




[방종임 조선에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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