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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5 (수)

[열려라 공부] 교사, 학생 개개인 ‘현미경’ 관찰 … “꼼꼼한 선생님 기록에 깜짝 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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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반고 11곳 학생부 살펴보니

학생 주도 수업, 토론·연극 통해

개인별 특성 파악해 충실히 적어

교사끼리 정보 교환, 완성도 높여

미사여구투성이 다른 학교와 달라

중앙일보

수학 시간에 ‘가우스 방정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조현서(왼쪽)군. 광주 살레시오고는 1, 2학년 전 과목 모든 수업을 학생참여형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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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업은 현서가 하기로 했지? 오늘은 ‘가우스 기호를 포함한 방정식’이야. 현서가 나와서 설명해 봐. 자, 박수!”

지난 12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살레시오고 1학년 3반 교실. 박석열 수학교사가 교단에서 물러서자 조현서군이 앞으로 나왔다.

살레시오고는 본지가 올해 처음 주최하고 한국교육개발원이 주관한 ‘잘 가르치는 베스트 일반고 발굴 프로젝트’에서 우수 학교로 선정된 고교 11곳 중 하나다(중앙일보 5월 15일자 20, 21면). 일반고 중에서 학생을 잘 가르치는 곳을 뽑아 격려하고 노하우를 함께 나누자의 취지의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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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 박석열 교사(오른쪽)가 문제 풀이가 잘 되지 않는 모둠을 찾아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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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반고’의 특징은 학생부 관리에 열정적이란 점이다. 대입에서 학생부를 심사해 합격자를 뽑는 ‘학생부종합전형’이 늘자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살레시오고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특징과 장점을 학생부에 잘 기록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결은 이날 수업 같은 ‘학생 주도형 수업’이었다.

교단에 오른 조군은 준비한 프레젠테이션(PPT) 자료를 스크린에 띄웠다.

“가우스 기호 안에 있는 미지수 χ를 구할 때는 수직선에서 확인을 해 봐야 해. 가우스 χ는 수직선 왼쪽에 있는 정수인데, 음수일 때는 혼동하기 쉽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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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담당 교사들이 교무실에서 특정 학생의학생부와 대입 자료를 보고 토론을 하고 있다. 교사 간 소통도 학생부 기록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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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군은 이날 수업을 해 보겠다고 사전에 지원했다. 수업 때는 준비 과정에서 자신이 혼동한 부분도 언급했다. “예습한 사람이면 아마 나랑 같은 곳에서 틀렸을 거야”라고 조군이 말하자 학생 여럿이 고개를 끄덕였다. 급우들도 수업 중 자기 생각과 경험을 보태 조군을 거들었다. 박 교사는 교실 뒤편에서 이를 지켜보며 ‘수업 관찰일지’에 메모를 했다. 슬쩍 보니 메모 중엔 ‘가우스 방정식을 수직선을 통해 검증하며 푸는 방법을 설명한 점이 아주 탁월했음. 직접 문제를 풀며 겪은 어려움을 친구와 공유해 실질적 도움을 줬음’이란 부분도 있었다.

박 교사는 “현서처럼 수업을 해 보겠다고 지원한 학생과 미리 서너 차례 만나 발표 준비를 한다. 수업은 학생에게 맡기고 나는 관찰한 내용을 일지에 남겨 학생부에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20여 분의 발표가 끝난 뒤엔 모둠별 문제풀이가 이어졌다. 4~5명이 한 모둠인데 풀이가 더딘 학생은 같은 모둠의 학생이 설명해 줬다. 모둠 학생 모두가 풀 수 없을 때만 박 교사가 나섰다.

대입 학생부종합전형 늘자 적극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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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반고’ 프로젝트엔 수도권 대학의 입학사정관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이 학교를 실사한 임진택 경희대 책임입학사정관은 “이 학교 학생부는 학생의 학교 생활을 풍성한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학사정관 입장에서 볼 때 개별 학생의 변화·발전을 잘 엿볼 수 있게 서술한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살레시오고는 2015년부터 고1, 고2 전체 과목을 학생 참여형 수업으로 바꿨다. 수학·과학은 예습한 학생의 발표 중심으로, 국어·사회는 학생 모두가 참여하는 토론·연극 등으로 진행한다.

‘학생들에게 수업 주도권을 맡겨도 괜찮겠느냐’는 고민이 교사들 사이에서 없지 않았다. 하지만 열띤 토론 끝에 ‘해 보자’고 결정했다. 오지용(3학년 부장) 교사는 “교사가 주로 말하는 강의식 수업에선 상위권이거나 성격이 활달한 학생만 적극성을 보이기 때문에 개별 학생의 역량·잠재력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점에 의견이 모아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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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바꾸기로 하고 교사들은 유대식 토론 수업인 ‘하브루타’ ‘거꾸로수업’ ‘교과 융합 수업’ 등 다양한 방식을 연구했다. 오 교사는 “모든 교사가 ‘수업에서 학생이 주체, 교사는 코치·관찰자’라는 역할 분담에 동의하고 수업을 바꿔 나갔다”고 말했다.

살레시오고 외에 서울사대부설고(서울), 경상여고·정화여고(대구), 교하고·안화고·서해고(경기도), 송도고(인천), 대아고(경남), 서천여고·천안중앙고(충남) 등 나머지 ‘베스트 일반고’도 ‘학생부 기록이 풍부하고 구체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에 대해 조희권 수도권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회장은 “좋은 학생부란 ‘학생을 잘 이해한 기록’이다. 베스트 일반고들은 학생 중심 수업에서 드러난 학생들의 개별적 특성을 학생부에 충실히 반영한 사례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좋은 학생부’엔 교사 간의 활발한 협업과 소통도 작용했다. 경기도 시흥 서해고(한국교육개발원장상)는 3월 학기 시작 전에 학년별 교사가 모두 모여 교육과정과 수업 방식, 학생부 기록의 유의점 등을 논의하고 공유한다. 이후 한두 달마다 학년별 교사, 1년에 두 차례 전체 교사 모임을 연다. 학생부를 함께 열람하며 토론하는 ‘학생부 비평’ 시간도 갖는다. 이영화 서해고 교사는 “교사끼리 협업하다 보니 학생부 기록에서 정확성과 완성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정례 회의 외에도 교사끼리 수시로 만나 학생 정보를 공유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 안화고(교육부장관상)도 비슷하다. 분기별로 교사들이 모여 학생부 기록을 점검하고 다음 분기에 학생별로 지도해줄 부분이 무엇인지, 어떤 활동을 추천해줄지 논의한다. 학생들도 학생부에 적힌 내용을 나중에 알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올해 고려대에 입학한 최지혜(19·식품자원경제학과)씨는 “프로젝트 수업이 많았는데 내가 수업에서 말했던 내용, 모둠 활동이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전교생의 학생부에 같은 문장이 없을 정도로 개별 학생의 특성을 살려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교사·학생 홈페이지 대화, DB로 활용

베스트 일반고들은 교사와 학생의 소통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 적극 활용한다. 대구 경상여고(한국교육개발원장상)는 홈페이지에서 주고받은 내용은 학생부 기록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로 이용한다. 이 학교는 전교생의 모든 활동이 ‘경상행복미소방’이라는 홈페이지에서 이뤄진다. 수업 내용에 궁금한 점이 있으면 해당 수업 폴더에 질문을 남긴다. 교사는 학생이 참고할 만한 도서를 이 홈페이지에서 추천한다. 학생이 이를 읽고 ‘독서활동’ 코너에 기재하면 교사는 이를 학생부의 ‘세부활동 및 특기사항’으로 정리한다.

김도기(한국교원대 교수) 한국학교컨설팅연구회 회장은 “베스트 일반고의 학생부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특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미사여구를 나열해 분량만 많은 다른 학교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고 평가했다.

제1회 베스트 일반고 프로젝트의 시상식은 24일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청 교육연수원에서 열린다. 이들 학교의 우수 사례를 설명하는 기회도 마련된다.

◆잘 가르치는 베스트 일반고 발굴 프로젝트
중앙일보가 주최하고 한국교육개발원이 주관, 교육부가 후원한 우수 일반고 공모전이다. 전국 일반고 중 교육과정이 우수하고 수업 혁신이 이뤄진 곳을 발굴해 다른 학교들이 참고하게 하자는 취지다. 올해 처음 시행됐다.

●대입 수시전형 핵심 ‘학종’ 은
대입에서 수시전형 비중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하는 인원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학생부는 학생의 3년간 내신 성적, 수업 태도, 비교과활동 등 모든 학교 생활에 대한 기록물이다. 한때는 수업 형태와 비교과활동이 다양하게 갖춰진 특목·자사고의 학생부 기록이 특색 있고 우수한 반면 강의식 수업 위주인 일반고의 학생부는 천편일률적이란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본지가 올해 실시한 ‘잘 가르치는 베스트 일반고 발굴 프로젝트’에 선정된 11개 고교의 학생부는 달랐다. 대학입학사정관에게 “학생부 기록의 모범”이란 평가를 받은 이들 일반고의 특징을 알아봤다.



박형수·정현진 기자 hspark97@joongang.co.kr

박형수.정현진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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