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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의 디지털사회] 미국은 군산학, 한국은 도시-시산학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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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군산학의 두 얼굴, 혁신과 전쟁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소련은 대대적인 중화학공업의 육성과 과학자 양성계획을 추진한다. 그 결과 1957년 소련은 미국보다 먼저 우주를 향해 스푸트니크 위성을 쏘아 올렸다.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2차 세계대전을 끝낸 원자폭탄을 위성 발사체에 탑재하면 미국 본토가 핵전쟁의 전쟁터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위기를 느낀 미국은 바로 다음해 군과 민간의 과학기술 역량을 결집한 미항공우주국(NASA)과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설립했다.

NASA에는 소련보다 먼저 달에 우주인을 보낸다는 미션을, DARPA에는 앞으로 있을 수 있는 기술적 충격을 미연에 방지하고 예상되는 도전에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국방과학기술을 개발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이 양 기관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기관이었다. 이미 주어진 거대 미션을 빨리 수행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도록 하는 거대 조직과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미지의 과제를 발굴하고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작고 유연한 조직이라는 2개의 다른 성격의 조직을 동시에 출범시킨 것이다. 이후 NASA, DARPA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고, 지금도 미국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의 50%가 넘게 국방 R&D에 투입되고 있다. 최근 기준으로 국방에 766억달러, NASA에 120억달러, DARPA에 29억달러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NASA와 DARPA 설립을 승인했지만,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퇴임 연설에서 군산복합체가 가져올 어두운 미래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군산복합체가 탄생했고 미국은 20세기 수많은 국제 분쟁과 전쟁의 주역이 됐다. 연구소에서 개발된 첨단 장비와 무기가 많은 전쟁에 투입됐고, 군수산업체의 수요를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비난이 대두됐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대학과 기업체 연구소 등에 지원된 국방 R&D 투자는 세계적인 신기술을 탄생시켰다. 신기술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들이 벤처기업 등을 설립하고, 기술이 민간에 이전되면서 신경제를 선도했다. 국방R&D→신기술 탄생→민간 이용→신산업 탄생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탄생한 것이다. 이는 소련이 가지지 못한 구조였으며, 결국 소련은 과도한 국방비 경쟁으로 몰락했지만, 미국은 군산학으로 신경제의 기반을 만드는 시스템의 우위를 확보했다.

◆ 미국 국방 R&D가 가져온 신기술과 민간산업 육성이라는 선순환 구조

많은 국방 R&D의 성과는 연구원 없는 연구조직이라는 DARPA에서 나왔다. '앞으로 예상되는 문제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을 찾아라'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DARPA는 획기적인 발상으로 세상을 바꿀 기술을 개발하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핵전쟁에도 끊어지지 않는 통신망 연구에서 인터넷이 탄생했다. 내비게이션에 쓰이는 위치추적시스템(GPS)를 개발했다. 무인자동차, 드론, 스텔스 전투기 등이 탄생했다. 애플의 시리(지능형 개인 비서)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이 국방 R&D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는 구조를 만들었다. 같은 기술이 군에서도 쓰이고 민간에서도 쓰일 수 있도록 스핀오프(spin-off)를 지원했다.

무모한 달착륙 경쟁으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던 NASA는 1달러 예산을 들여 개발한 기술이 민간에 이전,파급되어 7~14달러의 경기 부양 효과를 냈다. 2000여건의 기술이 이전되어 1600건의 신제품이 탄생한다. 무선청소기, 나이키의 에어쿠션 운동화, 핸드폰용 카메라, 라식수술, 귀 체온계, 인공심장, 투명세라믹, 어군탐지기, 연기감지기, 공기정화기, 장거리 통신, 냉동 건조식품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제품이 NASA 기술에서 나왔다.

미국 군산학 시스템의 특징은 국방 R&D 투자가 기초연구→군에 적용(실용연구) 후 민간이양이라는 연구→기술→제품으로 쉽게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 냈다. 이를 위한 미국의 법과 제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정부는 기초연구와 실용연구를 분리하고, 연계해 지원한다. 미국과학재단(NSF)은 작지만 장기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대학 등의 자율적인 기초연구를 집중 지원한다. DARPA는 대학 등의 기초연구 아이디어를 활용해 정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문제해결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NSF의 3~10배에 달하는 매우 풍부한 연구비를 지원한다.

둘째, 정부에서 사용해본 실용연구 결과를 첨단 기업들에게 이전하거나 창업하게 한다. DARPA 같은 조직이 대학, 기업(산업), 정부를 연결해 주는 허브 역할을 한다.

셋째, 국방 등 정부 R&D 성과를 신속하게 민간에 이양되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 베이돌법(Bayh Dole Act, 1980)을 제정해 연방정부자금으로 개발된 특허는 개발을 담당한 대학, 연구소, 기업이 소유하도록 했다. 정부는 무상의 통상실시권을 가지고, 개발자가 소유권을 가지는 혁명적인 발상을 했다. 또한 연방기술이전법(FTTA, 1986)으로 모든 연방 연구자에게 기술이전을 의무화했다. 나아가 연구자가 이해 저촉이 없는 한 민간의 상용화 개발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했다.

◆ 한국은 R&D가 실용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단절된 구조

한국 정부의 R&D 투자는 2015년 19조원으로 정부 총예산의 5.03%에 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부와 민간 R&D를 합쳐서도 GDP 대비 세계 1위(한국 4.36%, 일본 3.39%, 미국2.77%, 중국1.84%)다. 그런데 한국의 R&D 투자대비 성과는 OECD 국가 중 바닥권이다. 연구대비 사업화 성과로 인한 기술이전 수입은 저조하고, 기술무역 수지는 57억달러 적자로 OECD 최하위다. 반면 미국, 일본, 독일 등은 모두 기술무역이 흑자다.

연구개발비 대비 기술개발건수는 미국의 5배, 연구 성공률은 96%나 된다. 그러나 건당 기술료 수준은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특허와 논문은 늘었지만, 산업적 파급력이 없는 구조다. 즉 "그동안 우리는 작은 번트만 쳤다"라는 서울대 공대 백서 주장처럼 작은 성공위주, 안정 지향형 연구로 미래를 개척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를 보이고 있다. R&D가 신기술→신제품→신산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R&D와 미국의 R&D가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는 한국은 산업지원형 R&D(전체 예산 중 약 50%)를 하고 있고, 미국은 정부에서 필요한 R&D(전체 예산 중 국방 50%, 보건의료 20%)를 한다는데 있다. 미국은 혁신적인 과학기술을 개발, 활용해 국가를 보호하고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데 집중하고 있다면, 한국은 산업을 지원하는 R&D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성과는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산업을 지원한다는 한국은 산업지원 효과가 거의 없고, 국방과 보건에 집중하는 미국은 오히려 산업적 효과가 큰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다. 추격형 경제에서는 산업지원형 R&D가 성과를 냈다면,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

◆ 미국은 국방-군산학, 한국은 도시-시산학에 도전해야 한다

국방기술은 매우 구체적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확하고 빠르게 포탄의 탄도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고성능의 컴퓨터가 필요하고, 미사일에 장착하기 위해서는 작고 견고한 반도체가 필요하다. 국방 R&D는 치열한 생사의 현장에서 사용해야 하는 실용성과 최고의 성능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다. 미국은 군산학으로 이러한 과학기술 역량을 키우고, 이 역량이 산업계로 스며들어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한국은 R&D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국민의 안전과 보건, 삶의 질 향상에 집중해야 한다. 해결책 중에 하나는 도시-시산학(도시-산업-대학이 협력하는 혁신생태계)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국가의 임무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구현되게 된다. 즉, 도시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도시 R&D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실용적인 성과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스마트 홈, 스마트 도시는 자원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환경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영역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이해 집과 도시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를 넘어서 디지털사회로의 진화가 일어나면서 집과 도시의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사회의 상징인 대도시가 소량 맞춤생산과 소비의 시대에 경쟁력을 잃고 있다. 3D 프린터와 스마트공장은 생산과 유통의 경계를 허물고 있고, 공장이 도시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무인자동차와 스마트 교통통제 시스템은 도로의 모습과 교통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대도시의 화려한 백화점이 사라지고 편의점, 온라인 구매가 일반화되고 있다. 번화가에 위치했던 은행들이 사라지고 온라인과 스마트폰 뱅킹이 더 편리함을 주고 있다. 다양한 건강관리 디바이스가 등장하고, 원격진료가 가능해지고, 인공지능이 암 진단을 하는 등 병원이 변하고 있다. 교육과 학교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지옥 같은 몇 시간을 낭비하는 출퇴근이 아니라 재택근무, 직장과 거주가 근접 또는 일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로 도시가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도시의 변화에 주목하고 세계적인 기업들, 특히 IT 기업들이 미래도시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은 좋은 미래도시 건설을 목표로 사이드워크랩(Sidewalk Labs)을 설립했다. 알파벳의 최고경영자(CEO) 래리 페이지는 주거비용, 교통, 에너지, 헬스케어 같은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인프라 전체를 향상시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21세기형 미래도시 건설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엘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지구환경과 인류에게 덜 해로운 연료를 사용하는 지속가능한 교통수단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에서 태양광 발전 등 지속가능한 주거 공간, 도시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IBM, Cisco, 지멘스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스마트도시와 에너지 절약 건물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오고 있다.

도시산업은 미래 핵심 산업이다. 또한 도시산업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전세계에서 40년간 20만명 규모의 도시가 1만3000개 이상 건설될 전망이다. 25억명이 도시로 나오게 된다. 중국은 30만명의 분당 신도시 규모의 도시를 매년 100개를 건설하고 있다. 에너지 절약형 도시,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 홈, 스마트 도시, 미래의 산업에 적합한 클러스터 도시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산업혁명 시대의 도시가 아닌 디지털시대의 도시 건설은 강력한 미래 산업이 될 수밖에 없다.

◆ 세계를 선도할 도시-시산학 R&D에 도전하자

이 세상에 없던, 모든 사람이 그것 없이는 못사는 것을 발명할 때 세계 문명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전기, 전구, 세탁기, 냉장고, 인터넷, 컴퓨터, 핸드폰 등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미국이 발명했다. 그래서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냉전시대의 군산학이 있으며, 미국의 혁신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평화시대의 산업이 필요한 시대다. 삶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실용적인 도시-시산학 R&D를 상상해 보자.

현재 전세계적인 에너지 수요증가와 지구 온난화는 획기적인 에너지 절감 기술의 등장을 요구하고 있다. 효율이 높고 시공이 간편한 태양광 발전기술, 조광과 냉난방을 자동 조절해 전기를 줄이는 기술, 40년이 아니라 150년 살 수 있는 건축 기술 등 많은 기술이 개발돼야 한다.

건설과 운용비용을 줄이는 기술 향상도 필요하다. 100년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조립식공법으로 19개월만에 지어졌다. 포드는 자동차를 컨베이어에서 조립해 원가를 5분의 1로 줄이는 혁신을 이룩했다. 집과 건물의 건설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공법, 도시 운영 비용을 절감하는 도시 ERP 등 앞으로 개발, 발명돼야 할 기술 등이 많다.

삶의 질을 높이는 스마트 홈과 도시 R&D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미래 산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R&D다. 건강을 체크하고 생활 습관을 알려주는 변기, 침대 등 건강을 관리하는 가구와 스마트 홈, 교감하는 가구, 도시를 관리하는 인공지능 기술 등 스마트 홈, 스마트 도시 안에서는 손에 잡히는 수많은 기술과 제품들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 대한민국 도시-시산학 R&D에 성공하는 법

시산학으로 R&D 시스템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대통령 직속으로 스마트홈-스마트시티 위원회를 만들고, 국가의 전략산업, 핵심산업으로 육성하는 임무를 부여해야 한다.

둘째, 현재 스마트홈, 스마트시티 관련 R&D 예산은 물론이고, 많은 정부 각 부처 R&D 예산을 스마트홈, 스마트시티에 적용 가능한 프로젝트를 발굴하는데 집중하고, R&D 기획과 실행을 통제하는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컨트롤 타워는 국토부, 미래부, 출연연, KT, 토지공사 등 정부와 공기업, 민간의 R&D를 체계적으로 연계하는 협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민간과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마스터플랜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기관별, 단계별 핵심 부분에 집중하고, 영역별 진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체크하고 조율해 나가야 한다. 스마트 홈과 시티로 연결되는 거대한 레고를 상상해 보자.

넷째, 시산학을 추진하는 지역 거버넌스를 구축하자. 시도정부를 중심으로 특화산업에 대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지역의 대학과 공공 연구소가 지역 산업체들과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도정부가 대학과 공공연구소에 대한 예산 지원이 가능하도록 중앙정부의 재정권을 시도정부에 이양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앞서가는 일본, 추격하는 중국을 바라보지 말고, 세계의 변화, 세상의 변화를 보면서 인류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을 창조하자. 인간의 삶이 있는 집과 도시는 혁신의 시발점이고 대상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명호 연구위원은 연세대 공대를 졸업하고 KAIST에서 IT MBA, 기술경영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삼성SDS 미국지사(실리콘밸리)의 컨설턴트, 농림수산정보센터 사장, 충남도립청양대학 산학협력교수 등 기업, 공공, 학계에서 IT와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현재는 민간 싱크탱크인 (사)창조경제연구회 상임이사를 거쳐 (재)여시재 선임연구위원으로 디지털사회, 과학기술, 미래산업, 미래도시, 벤처, IT 정책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미래학회 이사를 겸하고 있습니다.

IT조선 이명호 여시재 Solution 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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