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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밤 11시에 “오늘 좀 일찍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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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밥먹듯 야근’ 내몰린 청년노동자들

넷마블·LG전자 사업장 6명 사망뒤

서울디지털단지 4421명 서명 참여

“무료노동 금지” “과로사 걱정” 외침

신고센터, 고용부에 근로감독 촉구



한겨레

지난해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6명이 돌연사와 자살로 목숨을 잃은 뒤 민주노총 서울남부지구협의회와 지역시민사회단체는 ’무료노동 부당해고 신고센터’를 세우고 3월21일부터 열흘 동안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을 이용해 거리에서 현장 노동자 4421명의 목소리를 담았다. 청년 노동자들이 ’과로사·무료노동 없는 가디·구디 집중서명’에 참여하는 모습. 무료노동 부당해고 신고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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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좀 일찍 들어가 보겠습니다.”

밤 11시. 김성수(33·가명)씨는 자리를 지키는 상사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한 제조업에서 사무직으로 5년 동안 일해온 김씨는 아침 8시에 출근해 이날 15시간 일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은 아직도 2시간 더 남아 있다. 그는 평소에 새벽 1시께 퇴근하기 때문이다.

바쁠 때는 밤샘 근무도 밥먹듯 했고, 한 달 내내 하루도 못 쉬지만 야근수당은 없다. 휴일 회사에 나가 일하면 특근비 2만5000원이 나온다. 그래야 월급은 200만원을 겨우 넘긴다. 김씨는 20~30대 청년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회사에 잘 보여야 승진하는데, 사무직이 뭘로 충성도를 보여주겠나. 늦게 퇴근하고 휴일에 일하는 것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는 김씨도 요즘 과로사하는 동료를 지켜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무서워졌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두려워졌다.”

한겨레

서울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 4421명이 무료노동 부당해고 신고센터가 진행한 ‘가디·구디 집중 서명운동’에 참여해 과로사와 무료노동을 뿌리 뽑아달라고 30일 촉구했다. 가디·구디란 각각 1·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과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을 줄인 말로, 서울디지털단지의 동의어처럼 쓰인다.

서울디지털단지에선 20만명 노동자가 일하며 이들 중 65%(13만명)가 20~30대 청년이다. 지난해부터 모바일게임업체 넷마블과 엘지(LG)전자 가산사업장에서 6명이 잇따라 돌연사하거나 자살하면서, 서울디지털단지의 ‘살인적 노동환경’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심각성을 깨달은 민주노총 서울남부지구협의회와 지역시민사회단체는 무료노동 신고센터를 세우고 3월21일부터 열흘 동안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을 이용해 거리에서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서명한 글을 보면, 밤샘 야근에 지친 노동자들은 “집에 좀 가자” “퇴근 좀 하자” “열정페이 금지”를 요구했다. 또 “과로사 걱정하며 일하기 싫다” “인간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이라는 바람도 있었다. “(밤) 9시 넘게 일해야 4500원(짜리) 식권 하나”라는 현실을 고발하는 글도 있었고, “아이를 키우며 직장 다닐 수 있도록” “6시 이후에는 (서울디지털단지) 전원을 차단”해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직장인은 노예가 아니다” “경영인의 톱니바퀴도 아니다” “사람 취급해달라”라는 요청도 있었다.

박준도 무료노동 신고센터 사무국장은 “‘집에 보내달라’ ‘사람 취급해달라’는 요구가 많다는 것은 첨단 서울단지가 역설적으로 청년을 절망에 빠뜨리는 곳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무료노동 신고센터는 고용노동부 서울관악지청에 서명용지를 전달하고 서울디지털단지의 △장시간 노동 △미지급 수당 및 체불임금 △불법파견 등을 철저히 근로감독해달라고 요청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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