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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VIEW POINT] 달랑 한장짜리 감세안…트럼프의 노림수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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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어떻게 한 장짜리 세제안을 내놓을 수 있는지 깜짝 놀랐다."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재무장관을 지냈던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대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머스 교수는 27일(현지시간) 미국 CNBC 방송과 인터뷰하면서 "경제성장으로 세수 부족을 초래하지 않을 거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며 "이런 세제안을 발표하라는 백악관의 요청을 받았다면 나는 사임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움직인 스티븐 므누신 현 재무장관을 은근히 비꼬는 말투였다.

지난 26일 므누신 장관이 백악관에서 공개한 세제개편안은 1986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 이후 30여 년 만의 대대적 감세안이라는 의미를 뒷받침하기에는 너무도 단출했다. 한 장짜리 자료에 들어간 감세안 자체는 이미 알려진 대로 파격적인 내용이었지만 어떻게 실행하겠다는 건지 세부사항이 전무했다.

예를 들어 개인소득세를 현재의 7단계에서 3단계로 간소화한다고 하면서 개인 소득구간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밝히지 않았다.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 비축한 대규모 수익을 미국으로 송환할 때 내는 일회성 '본국송환세'를 도입하겠다고 하면서도 세율을 언급하지 않아 기업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만약 한국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 같은 기자회견을 했다면 전혀 준비되지 않은 발표로 시장에 혼란을 초래했다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을 것이다.

트럼프 감세안의 구체적 실체를 기대했던 월가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무려 20%포인트의 파격적인 법인세율 인하 방안도 뉴욕 증시를 끌어올리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제대로 법제화될 수 있을까'라는 시장의 의구심만 더 커졌다. 트럼프가 취임 100일 성과를 과대 포장하기 위해 무리하게 발표 일정을 앞당겼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더구나 이번 세제개편안은 '부자 감세'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39.6%에서 35%로 낮추고, 부유층의 전유물인 상속세는 아예 폐지하기로 했다. 특히 자영업자와 부동산 개발 업체 등 '패스스루' 기업에 적용되는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기존 39.6%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한 것은 트럼프 자신을 위한 '셀프 감세'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재정건전성을 어떻게 확보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내놓지 않아 재정적자에 민감한 공화당 의원들조차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이 벌어졌다. 상황이 이러니 민주당의 설득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팽배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 장짜리 감세안에는 분명히 건질 메시지가 있다. 트럼프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일관되게 주창한 '프로 비즈니스'다. 트럼프는 기업 하기 좋은 미국을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또 한번 표출했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트럼프지만 '일자리 창출을 갈망하는 친기업론자'라는 믿음을 미국 유권자와 시장에 주입시킨 건 취임 100일의 가장 강력한 성과인 듯싶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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