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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I ♥ 건축] 같은 개념 다른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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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세기 후반기 최고 거장 '루이스 칸'은 철학적인 명언을 많이 남긴 건축가로도 유명하다. 여러 명언 중 '태양 빛은 건축물을 비추기 전에는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몰랐다'라는 말이 있다. 태양빛이 벽을 비추고 그림자를 만들면서 빛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림자를 빛의 일부로 보는 그의 사고방식은 음양의 조화를 중시하는 동양철학적인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빛과 그림자에 대한 추구는 건축물을 통해서 빛을 연출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장식이 아닌 건축구조 자체를 이용해서 자연채광을 건물 내부로 들임으로써 건축물과 빛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끔 디자인하였다. 이는 인공조명으로 모든 빛을 해결하는 현대건축보다는 고딕성당이나 판테온 같은 전통건축과 더 비슷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태양에 바쳐진 제물'이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칸은 태양광을 멋지게 이용한 미술관을 두 개 남겼다. 텍사스주에 있는 '킴벨미술관'과 코네티컷주에 있는 '브리티시아트미술관'이다. 두 미술관 모두 태양빛을 이용하는 개념이지만 겉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왜냐하면 두 미술관이 다른 장소에 있기 때문이다. 위도가 낮은 텍사스주의 킴벨미술관은 태양 입사각이 높다. 지붕 꼭대기에 위치한 천창을 통해 수직으로 들어오는 빛을 반사판을 이용해서 180도 돌려서 천장을 비추게 디자인하였다. 반면 위도가 높은 코네티컷주에 위치한 브리티시미술관은 태양빛의 입사각이 낮다. 낮게 들어오는 빛을 90도 아래로 꺾어서 반사시키는 루버를 디자인했다. 공원에 위치한 킴벨미술관은 단층으로 계획되어 있는 반면, 도시에 위치한 브리티시미술관은 4층 건물이다. 두 미술관 모두 빛을 담아내기 위해서 여러 개의 중정을 만들었는데 따뜻한 지역에 위치한 킴벨미술관의 중정은 외부공간으로 계획되었고, 추운 지역에 있는 브리티시미술관은 중정을 실내아트리움으로 만들었다. 같은 건축가가 태양빛을 담는다는 같은 개념으로 디자인했지만 두 미술관은 다른 지역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결과물로 만들어졌다. 건축은 주변 환경에 따라서 다르게 진화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잘 보여주는 두 작품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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