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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한국경제학회 경제공약 분석-조세 부문] 실현가능성 떨어지는 공약이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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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증세 계획 밝힌 유승민, 심상정

복지 위해서는 연 70조원대 증세 불가피 명시'

안철수의 20조원대 중규모 증세 공약은 절충형 그쳐

문재인, 연 6조원 증세로 재정소요 충족 가능할지 의문

홍준표, 감세 주장하지만 실현 가능성 낮아

한국경제학회와 중앙일보가 유권자의 선택을 돕기 위해 마련한 대선후보 경제공약 심층 분석 시리즈의 다섯 번째 주제는 ‘조세’다. 대표 집필을 맡은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투명성과 실행 의지 측면에서 유승민, 심상정 후보가 돋보인다. 안철수, 문재인 후보 공약에는 다소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고 요약했다. 다음은 한국경제학회의 평가 및 분석이다.

중앙일보

증세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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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랫동안 납세는 최우선 국민의 의무 중 하나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는 조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아니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조세는 공동체의 윤택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이 자발적 합의를 거쳐 지불하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조세란 어쩔 수 없이 무조건 짊어지게 되는 의무가 아니라, 공공재정의 운용을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요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권리다. ‘무엇을 위해 누가 얼마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전체 국민의 민주적 총의에 따라 정한다.

대선 투표일을 목전에 둔 지금이 국민이 투표를 통해 조세와 재정 운용에 대한 선택·요구권을 행사하는 기간이다. 향후 5년의 조세·재정 정책을 표로 결정하는 중대한 시기이다. 따라서 대선 후보들이 내건 조세와 재정 공약은 다른 어느 공약보다도 찬찬히, 그리고 냉정히 살펴보고 엄중히 심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조세권’은 더는 유지되지 못하고 민주화 이전의 시대에서처럼 단순한 의무사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5개 정당은 후보별로 150~280개씩의 공약을 내놓았다. 개별 공약의 개발에 후보들은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과는 별개로, 각 후보들이 공약 이행을 위해 제시한 재정운용 계획을 보면 정책의 책임성과 실현가능성 측면에서 평가가 엇갈린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정운용 계획의 기본적인 요건에 해당하는 투명성과 실행 의지 측면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두 후보는 재정소요액 산출에서 비교적 소상히 유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또 대규모 증세의 필요성을 제시함으로써 정책실행의 의지를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줬다.

다만 정책의 실현가능성 측면에서는 후보들 모두에게 유보적인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다. 유승민, 심상정 후보의 공약은 대규모 증세가 갖는 현실적 한계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극복할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중규모 또는 소형 증세를 표방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약 실현가능성은 결국 지금껏 지지부진했던 재정지출 개혁 완수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추진할 것이냐에 의해 결정될 전망이다.

5명 모두 복지와 고용창출을 위한 과감한 재정투입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재정기조는 서로 유사한 측면이 많다. 공약 이행을 위한 재정투입 규모 면에서는 심 후보가 연 110조원의 재정투입을 약속해 가장 많았고, 유승민, 안철수, 문재인 후보는 각각 연 42조원, 41조원, 36조원의 재정소요 예상액을 밝히고 있다. 문 후보는 복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재정의 적극적 활용을 강조하고 있는데도, 재정투입 예상액이 가장 적었다. 이 때문에 대선후보 4차 토론회에서 재정소요 산출 부정확성에 대한 지적을 받기도 했다. 문 후보 측이 객관적 자료를 제시해 논란을 신속히 정리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재정운용 계획의 보다 극명한 차이는 재원조달 계획에서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심 후보와 유 후보는 공약에서 각각 연평균 70조원대의 대규모 증세를 구체화했다. 반면, 안 후보는 24조원의 중규모 증세를, 문 후보는 6조3000억원 규모의 소형 증세를 표방했다. 예상지출 규모가 가장 큰 심 후보는 연 70조원의 세수 증가를 임기 내 복지지출 등에 쓰겠다고 밝힌 반면, 지출규모가 그보다 작은 유승민 후보는 연 72원의 신규 세수를 새로 설치한 기금에 적립해 추후의 재정소요에 대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참고로 유 후보의 증세 조달 규모에는 연 10조원 정도의 세수 자연증가분이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다른 후보들과 같은 기준으로 따질 경우 증세 규모는 연 62조원 정도라는 게 유 후보측의 주장이다.

재원조달액 중 증세가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유 후보와 심 후보의 복지확대 정책 실천의지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대로 증세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문 후보의 재원조달 계획은 유사한 범진보 진영에 속하는 심 후보로부터도 실행 의지 부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약집에 나타난 숫자대로라면, 문 후보의 정책은 사실상의 ‘증세 없는 복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상정, 유승민 후보의 소신 있는 선택과 상관없이 아직까지 한국의 대규모 증세정책은 단 한 번도 성공적으로 시행된 적이 없다. 1970년대 말의 부가가치세 도입, 90년대 초의 토지초과이득세, 2000년대 중반의 종합부동산세는 모두 성공적이지 못했다. 때문에 두 후보의 증세 청사진은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두 후보는 정책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대선기간 동안 공약을 통해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국민이 부담해야 할 재정적 비용을 명확히 제시한 사례로 평가될 만하다. 특히, 유 후보는 ‘중부담·중복지’ 노선을 공약함으로써 ‘증세 없는 복지’를 실질적으로 대체한 공로가 인정된다.

중규모 증세를 표방한 안철수 후보는 긍정적으로 보자면 정책의 실현가능성과 책임성에 대한 절충주의적 입장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의 실행 의지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재정개혁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소형 증세만으로도 중복지 수준의 재정 투입을 충당할 수 있다는 입장의 문 후보는 자신이 공약한 정책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주기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와 재정개혁 모두를 성공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5명의 후보 중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법인세 감세 등 일부 감세 주장까지 하고 있다.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책 일관성은 지켜냈을지 모르겠지만 현 재정여건 상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구체적인 재정소요 예상액와 재원조달 방안도 가장 늦게 밝혔다.

중앙일보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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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기자 park.ji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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