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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사설] 트럼프 방향 전환 가능성, '北核 동결'쇼에 또 속아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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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 대통령이 26일 미 연방 상원의원 대부분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북한 관련 브리핑을 했다. 같은 날 국무장관, 국방장관, 국가정보국장이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 핵 문제는 긴급한 국가 안보 위협이면서 외교정책 최우선순위"라고 규정했다. 특정 국가 문제로 미 대통령이 여야 상원의원들을 불러 모으고, 외교·안보 분야 장관들과 정보기관 수장(首長)이 공동성명을 낸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앞서 북에 대해 '최고의 압박과 개입' 정책을 천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대대적인 행사의 이면에선 '군사 조치' 언급이 줄어들고 '대북 협상'이라는 새로운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날 발표된 공동성명은 '대북 경제제재' 강화 외에도 "평화로운 비핵화라는 목적을 위해 협상의 문을 열어둘 것"이라고 명시했다. 트럼프의 의도는 결국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미국에선 트럼프가 북한 문제에 대한 다자회담을 열기 위해 '벼랑끝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이미 정상회담과 두 차례 전화 회담에서 비핵화 협상 재개에 합의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많은 전문가가 예상했던 상황 전개다.

군사력을 사용한 북핵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고도화된 북한 핵 프로그램을 여러 단계로 나눠서 풀어야 한다는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핵 동결 후 단계적 비핵화' 접근법은 이미 지난 20여 년 동안의 실험에서 실패한 것으로 판명됐다. 북한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플루토늄 핵 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춘 북핵 6자회담에 한·미의 관심을 집중시킨 후 비밀리에 고농축우라늄(HEU)을 이용한 핵 개발을 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핵 관련 북의 행동은 핵무장을 향한 전략과 전술이다. 이 기본을 잊으면 사사건건 뒤통수를 맞게 돼 있다.

문제는 한·미 양국 지도부가 과거 실패했던 모델을 답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양국의 새 지도부는 모두 북한 문제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성과 중 가장 흔한 것이 '회담'이다. 그래서 이어져 온 것이 '회담을 위한 회담'이고 북은 이를 지금까지 이용해왔다. 또 그런 회담이라면 '핵 동결 후 단계적 비핵화' 협상은 위기에 처한 김정은 정권의 숨통을 틔워주는 길이 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검증'이다. 과거 북은 '회담'이라는 기만 전략을 펴다 '검증'을 거부하면서 판을 깼다. 검증을 허용하면 기만 전략이 탄로 나기 때문이다. 북이 핵 동결·폐기에 대한 제한 없는 검증에 동의하지 않으면 어떤 회담을 하든 결국 막이 내리는 '쇼'일 수밖에 없다. 이번만은 20여 년 대북(對北) 실패를 반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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