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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아침 편지] 육아휴직 1년… 아빠 인생 최대의 이벤트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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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성은 경기관광공사 과장


재작년은 내 삶에서 가장 바쁜 해였다. 회사에서는 부서를 옮겨 처음 해보는 일을 맡았고, 학교에서는 논문 학기가 시작돼 퇴근 후 매일 새벽까지 논문에 매달렸다. 집에서는 1월에 태어난 아이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려고 아침마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났지만 늘 부족한 느낌이었다. 내 나름 돕는다고 했지만 집안일과 육아로 늘 피곤한 아내에게 미안했다.

어느 날 신문을 보고 "나도 육아휴직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슬쩍 물었다. 예상과 달리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공기업이라고 해도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내자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동료들은 승진이나 경력 단절을 이유로 부정적이었고, 손주보다는 아들이 먼저인 부모님도 만류하셨다.

하지만 나는 세 가지 이유에서 용기를 냈다. 먼저 쉬지 않고 달려온 스스로에게 잠시 멈춰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2년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하는 아내가 홀로 남은 아이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가 엄마 부재에서 올 불안감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래도 회사를 오래 떠나기는 불안해서 6개월만 냈다가 석 달 후 나머지 6개월도 연장 신청했다.

나름 자신 있게 시작한 육아휴직은 생각처럼 여유롭지 않았다. 엄마가 아빠와 아들을 남겨놓고 출근한 첫날, 아이가 열이 났다. 동네 소아과에서 "폐 소리가 좋지 않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택시를 잡았다. 시름시름 앓는 아이를 안은 채 응급실 의자에 앉아 있자니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다행히 아이는 2주 만에 회복됐지만 모든 게 내 잘못인 양 느꼈던 초보 아빠는 평생 지은 죄들을 회개하며 2주를 보냈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뒤 조금씩 안정이 찾아왔다. 엄마 없는 아침에 낯설어하던 아들은 아빠와의 시간에 적응해갔고 내가 준비한 놀거리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입맛 까다로운 녀석을 위해 해본 적 없는 음식들을 시도했지만 잘 먹지 않았다. 무얼 좋아하는지 알고 나서야 잘 먹었고, 이런 아이를 보니 한여름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어도 덥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어린이집에 보낸 후에는 청소와 볼일을 마치고 쉬다가 아이가 잘 적응하는지 궁금해 계속 시계만 쳐다보기도 했다.

조선일보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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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많이 경험하게 하려고 어린이집이 끝나면 동네 산이나 공원에 데려갔고, 엄마 회사 앞에서 퇴근을 기다리며 둘이 시간을 보낸 적도 많다. 둘만의 추억을 만들겠다며 두 돌도 안 된 아이와 2박 3일 제주도 여행도 갔다.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멋진 시간이었다. 우리는 요즘도 종종 엄마 없는 여행을 간다. 휴직이 끝날 무렵에는 아이는 자다가도 아빠를 먼저 찾을 정도가 됐다. 사람들은 "크면 유치원 이전은 기억도 못 하는데 왜 그리 공을 들이냐"며 핀잔도 주지만 나는 "그래도 내가 기억하니까 괜찮다"고 말한다. 아이가 커서 지치고 힘들 때 많이 사랑받고 자란 존재임을 알려주고 싶어 계속 사진과 영상으로 담고 있다.

1년은 아주 빠르게 지나갔고 복직할 날이 다가왔다. 아이가 아빠마저 없는 시간에 잘 적응해줄지, 나 또한 복귀해서 잘 지낼지 걱정이 컸다. 아들은 기대 이상으로 잘 적응했고, 나도 두세 달 신입 사원 같은 신선함으로 업무에 임했다. 요즘도 나보다 일찍 출근하는 아내 대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아침은 정신없지만 그나마 함께 있는 귀한 시간이니 감사하다.

경제적 어려움은 있었지만 나는 친구나 동료에게 육아휴직을 사용하라고 권한다. 물론 회사나 가정에서 그에 따른 갈등이나 어려움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를 1년간 지켜본 것만으로도 아빠는 남은 삶을 살아갈 충분한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아이를 위해 시작한 육아휴직이지만 실은 내가 얻은 것이 더 큰, 내 삶의 가장 큰 이벤트였다.

[김성은 경기관광공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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