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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연중기획- 지구의 미래]"공휴일은 충전소 휴무"… 달리는 '미니발전소' 수소차 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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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세종 구간 충전소 3곳뿐… 게다가 ‘공휴일 휴무’ 난감/가속 페달 밟으면 바로 최고 출력 도달/ 소음 거의 없고 車무게 비해 힘도 좋아/ 한 번 충전하면 최대 415㎞ 주행 가능/ 충전 인프라 부족해 지방 출장 ‘발목’/ 지원금 뺀 차값 8500만원… 상용화 한계

세계일보

“오늘 문 안 열었는데? 식목일이잖아요, 빨간 날 … 여기(양재 수소충전소)도 그렇고 다른 데도 마찬가지일 텐데?” 지난 5일 수소연료전지차(이하 수소차)를 몰고 막 서울 올림픽대로 반포대교를 지나던 참이었다. 세종시로 가려던 계획은 집을 나선 지 30분 만에 수정돼야 했다.

식목일이 ‘빨간 날’(공휴일, 식목일은 2006년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됐다)이라는 충전소 측의 반응도 반응이거니와, ‘공휴일에 충전소가 쉰다’는 것은 예상도 못했기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이틀 후 정부와 국회는 공동으로 ‘수소경제사회 실현을 위한 정책방향 설정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수소차는 수소경제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2020년 1만대의 수소차가 도로를 누비게 하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아직은 생소하기만 한 수소차 시대를 엿보기 위해 지난 4∼5일 수소차를 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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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구간에 충전소 3곳… 이용 가능한 곳은 0곳

국내 수소차는 현대자동차의 투싼 ix가 유일하다. 기존 내연기관(가솔린·디젤) 모델의 외형은 그대로인데 내부의 기계·연료 장치가 싹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겉모습만 보면 수소차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미래적인(?) 디자인’을 상상한 기자의 기대가 살짝 꺾이려던 차에 현대차 관계자가 말했다.

“지금 이 차는 시동이 걸린 상태입니다. 잘 모르겠죠?”

그러고 보니 차 바로 옆에 서 있었는데도 언제 시동을 걸었는지 모를 만큼 조용했다. 엔진룸을 열자 그제야 희미하게 압축기(외부 공기를 빨아들이는 부품) 소리가 들렸다. 내연기관 차량은 고온이나 고압으로 폭발을 일으켜 힘을 얻는 방식이라 매우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방음 처리를 해서 그나마 우리가 참을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수소차는 수소와 산소를 화학반응시켜 동력을 얻기 때문에 소음과 거리가 멀다. 그런 점에서 전기차와 비슷하지만 주행거리는 수소차가 훨씬 앞선다. 투싼 수소차는 1회 충전 시 594㎞(유럽 기준·국내 기준 415㎞)를 달릴 수 있다. 현대차가 내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수소 전용차의 항속거리는 800㎞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기차처럼 배터리에 내장된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연료(수소)로 직접 전기를 만들어 내 가능한 일이다. 쉽게 말해 수소차는 ‘미니 발전소’를 싣고 달리는 셈이다. 완충된 수소차는 32평 아파트에서 3일간 쓸 수 있는 전기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주행성능을 알아보고자 자동차 전문매체 ‘더 드라이브’의 이다일 기자와 함께 강변북로를 달렸다. 이 기자는 ‘무거운 차인데도 무겁지 않게 달린다’고 평가했다. 그는 “휘발유차는 엔진이 어느 정도 돌아야 최고 출력에 도달하는데 수소차는 ‘on/off’ 식으로 액셀을 밟으면 바로 최고 출력이 나와서 그런지 차량 무게에 비해 힘이 좋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주행 중에는 타이어 마찰음 탓에 조용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 기자는 “노면 소음 저감장비가 잘 설치된 고급 내연기관 차량보다 시끄럽다”고 말했다.

수소차와 보낸 하루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하루 종일 양재동에서 신대방동, 서교동, 강변북로 드라이브를 거쳐 염창동까지 왔는데도 계기판의 주행가능 거리는 처음보다 40㎞ 줄어든 264㎞를 가리켰다. 충전 문제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문제는 이튿날이었다. 서울∼세종에 이용할 수 있는 충전소는 양재동과 상암동, 용인 세 군데뿐이었는데 양재동 쪽은 식목일이라고 문을 닫았다. 상암동 충전소는 충전 압력이 350바(bar)인 탓에 수소를 절반만 채울 수 있어 지방 출장길에는 의미가 없었다. 용인 쪽도 연구소 내에 있어 일반인은 이용할 수 없을뿐더러 수리 중이었다. 왕복 250㎞ 구간에 수소를 채울 곳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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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만대 늘린다는데…

그런데도 정부의 계획은 핑크빛으로 가득하다. 수소차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26대가 팔렸다. 3년여 뒤인 2020년에 누적 1만대를 보급하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수소 충전소도 2020년 100곳, 수소·전기차·LPG 등을 모두 충전할 수 있는 복합휴게소는 2025년까지 200곳을 조성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지난달 제네바 모터쇼에서 수소 콘셉트카 ‘FE’를 공개했는데,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에 맞춰 FE를 기반으로 한 SUV 수소 전용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수소차가 대중화하려면 가격과 인프라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

정부 지원금을 뺀 투싼 수소차의 가격은 8500만원으로 투싼 가솔린·디젤차보다 2.5∼3.5배나 비싸다. 수소차가 비싼 이유는 주로 연료전지 촉매로 쓰이는 백금이 비싸서다. 하지만 이 문제는 머잖아 해결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보통 수소차에는 1g에 5만원하는 백금이 60∼70g 들어간다. 그러나 도요타 수소차 미라이는 백금 양을 30g으로 줄였고, 최근에는 10g까지 줄일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왔다”면서 “내연기관 차에도 배기가스 저감장치에 백금이 7g가량 들어가니 5년 이내면 백금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만 연료전지에 들어가는 다른 부품 역시 고가여서 내연기관 수준으로 차값이 떨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차값보다 더 풀기 어려운 문제는 충전 인프라다. 현재 충전소 설치비용은 30억원에 이른다. 충전소 설치가 늘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지고, 국산화가 이뤄져 비용이 크게 낮아진다 해도 ‘어떻게 수소를 만들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남는다.

수소차는 기름 대신 수소를 넣기 때문에 부산물이 물밖에 나오지 않는다. 수소차를 ‘궁극의 친환경차’라고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수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운영 중인 수소 충전소 10기 중 7기가 석유화학산업에서 쓰고 남은 부생수소를 쓴다. 운영 중이거나 설치 중인 충전소는 대부분 울산, 창원, 광주에 몰려 있는데 이는 산업단지를 끼고 있어서다.

두 번째로 많이 쓰이는 방법은 ‘개질’이다.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탄소+수소)에 수증기(수소+산소)를 반응시켜 수소를 뽑아내는 것인데, 필연적으로 이산화탄소도 만들어진다. 대구 충전소는 유일하게 물을 분해해 쓰는데 물 분해에 쓰이는 전기도 화력발전 등으로 생산된 것이다. 즉 국내 수소차에 들어가는 수소는 석유·석탄에 기댄 것이라 볼 수 있다.

수소차가 정말 친환경적이려면 태양에너지 같은 재생에너지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들어 내면 되는데, 재생에너지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1차에너지 총공급량 대비 1.5%)인 우리나라 현실에서 아직은 먼 이야기다.

정종식 포스텍 교수(화학공학)는 “정부가 이러저런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친환경적인 수소 공급, 수소연료전지 성능개선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며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하고, 자동차 회사는 인프라 구축을 정부에만 바랄 것이 아니라 직접 투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도 “수소차 개발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경제성,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완전히 사업을 접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며 “무턱대고 2020년 수소차 1만대를 보급하겠다는 것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우주 분자 90% '수소'… 미래 연금술 잡기 경쟁

정부와 산업계가 미래 에너지원으로 수소를 주목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수소는 지구뿐 아니라 온 우주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우주 질량의 75%, 우주 분자의 90%가 수소로 이뤄졌다. 에너지를 내면서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지도 않는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15년 전 저서 ‘수소혁명’에서 “수소를 동력으로 효율성 있게 사용할 경우 무한한 에너지원, 연금술사와 화학자들 모두 오랫동안 찾아 헤매다 결국 못 찾은 에너지 연금약이 인류에게 생기는 셈”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2010년이면 수소 연료전지로 굴러가는 신세대 차량을 대량생산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소차 시대는 열리지 않았다. 그 이유로 ‘그 흔한 수소가 막상 쓰려고 보니 안 보이는’ 역설적인 상황을 꼽을 수 있다. 수소는 어디에나 있지만 독립적으로 떠다니지 않는다. 물이든 석탄이든 천연가스든 천연자원에서 추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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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리프킨은 소형 발전 설비를 가정, 사무실 같은 최종 소비자 근방에 배치해 각자 에너지를 만들어 모두가 함께 쓰는 ‘세계적인 수소 에너지망(HEW·Hydrogen Energy Web)’을 제안했다. 모두가 정보 생산자인 동시에 이용자인 인터넷을 떠올리면 쉽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이런 이상적인 논의는 일단 접어둔 채 저마다의 방법으로 ‘수소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호주의 갈탄을 비롯해 북미의 수력, 유럽의 풍력, 수력, 석유, 천연가스, 중동의 석유, 남미의 풍력 등 수소를 뽑아낼 수단을 확보하려고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는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2020년에 수소차 4만대, 수소충전소 160곳을 만들고 2025년에는 수소차 가격을 하이브리드 차량 수준으로 낮춰 20만대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이다. 2020년대 후반에는 본격적인 수소사회 진입을 맞아 해외 수소 공급망을 가동할 예정이다. 자동차부품연구원의 구영모 팀장은 “일본은 시장이 있든 없든 수소사회라는 것을 정해 놓고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 간다”며 “굳이 필요할까 싶은 기술까지 개발하는 걸 보면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고 전했다.

중국 역시 2020년 연간 수소차 생산규모 1만대, 수소충전소 100기, 2030년에는 연간 200만대 생산, 수소충전소 1000기 이상을 목표로 뒀다. 수소차에는 차량 가격의 60%까지 구매보조금이 지원되는데 중국 현지에서 생산된 차량에만 지급할 계획이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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