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2 (일)

한 번도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어느 탈북 동성애 작가 이야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탈북 작가 A씨는 단 한 번도 아내를 사랑한 적 없다.

결혼생활 내내 그는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쳤다고 자책했다.

이성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자기가 왜 그런지 몰라 대학교 재학 시절 한 신경외과 의사를 찾아간 적 있다. 점점 자기 증상을 말하는 A씨에게 의사는 결국 나가라고 고함쳤다.

도망치듯 A씨는 병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세계일보

학창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다. 손을 잡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 A씨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를 사랑했다는 게 A씨의 생각이다. 두 사람의 아내는 자기네 남편끼리 서로 친하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친구가 놀러 온 어느 날, 아내 대신 친구와 함께 자려던 A씨는 가슴이 쿵쾅대고 흥분되는 느낌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밖으로 나와 하늘 높이 나는 새 한 마리를 보는 순간, 그는 북한을 떠나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A씨는 1996년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1년 넘게 있다가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비무장지대(DMZ) 근처 부대에서 10년간 군생활을 했던 A씨는 같은 부대 내에서 자기와 똑같은 상관을 만났다. 결혼까지 하고서도 여자가 아닌 남자를 사랑하는 그 사람을 보고, A씨는 동질감을 느꼈다.

세계일보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와 관련한 책을 읽고 A씨는 나이가 마흔에 가까워진 후에야 자기가 어떤 상황인지 알았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받는 북한에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기쁨과 안도 등을 비롯해 여러 감정이 A씨의 가슴을 스쳤다.

하지만 그때뿐. A씨는 서울에서의 삶이 2배로 어려워졌다. 탈북자라는 시각과 더불어 동성애자라는 편견도 이겨내야 했기 때문이다.

세계일보

A씨는 인생은 60세부터라고 생각한다. 동성애자라는 편견을 벗어날 수 없겠지만, 온전히 자기가 누군지 알게 되면서 뒤늦게라도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기억에 남을 삶을 살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보통 사람’으로서 살 수는 있다고 안도한다.

A씨는 재작년 4월 자전소설 ‘붉은 넥타이’를 내며 작가로 등단했다. 당시는 건물 청소 일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미국 CNN이 지난 24일(현지시간) 사연을 전한 A씨의 이름은 장영진이며, 그의 나이는 50대 후반이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미국 CNN 영상캡처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