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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어디까지 가봤니, 차 지붕에 휴대폰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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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Y기자, 내 인생은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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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또 없다. ‘도대체 어디 간 거지?’ 기억을 더듬는다. 분명 집에서 나올 때는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차 안에는 없다. 귀신이 곡할 노릇. ‘진짜 손에 들고 나왔는데… 어제였나?’ ‘설마’ 하는 마음에 빨간 신호에 대기했을 때 문을 열고 차 지붕을 본다. 있다! 그것도 아주 멀쩡히, 살포시 내려앉은 모습으로 있다. 이 주인과 밀당하는 요물단지 혹은 주인을 잘못 만나 생고생하는 문명의 기기여.

때는 눈발이 약간 날리던 겨울의 어느 날. 여느 날처럼 나는 차를 몰고 출입처로 가고 있었다. 충전을 하려고 휴대폰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잠깐 신호등 앞에 섰을 때 가방을 이리저리 뒤져봐도, 옆자리와 뒷자리를 구석구석 훑어봐도 없었다. 외곽순환도로 진입 직전 ‘싸~’ 한 기분에 차 문을 열고 봤는데 은색 차 지붕 위에 빨간 케이스의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잠깐. 나는 집에서 출발해서 주차장 언덕을 올라왔으며 좌회전 1번, 우회전 2번 등을 포함해 1㎞ 넘게 운전을 한 터였다. 그런데도 휴대폰이 차 지붕에 찰딱 붙어 있었다. 눈 때문에 케이스가 젖어 있기는 했으나 온전한 자태(?)였다. 헛웃음만 나오는 기가 막힌 상황에서도 ‘나 참 코너링 잘하는 모범 운전수구나’ 했다.

만약 휴대폰을 차 지붕에 얹고 그대로 고속도로를 탔다면? 혹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면? 아마 도로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거나 다른 운전자 차량과 부딪혀 사고를 유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림도구를 차 트렁크 위에 놓고 달렸다는 동생을 비웃는 게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다. 설사 그것이 차 위에 무엇인가를 얹고 달리는 것이라도 말이다.

사실 휴대폰과 관련해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꽤 겪었다. 방심과 망각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보면 종종 그런 일이 있다. 어린이집 면담 때도 그랬다. 첫째가 6살 때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과 면담이 있었다. 선생님과 만남은 언제나 어려운 터. 짧은 인사 뒤 원장 선생님이 권하는 의자에 앉을 찰나 ‘우지끈’ 소리가 들렸다. 아차차. 순간 한 달 전 바꾼 내 휴대폰이 바지 뒷주머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에 쓰던, 액정이 작은 휴대폰은 뒷주머니에 넣고 앉아도 아무 탈이 없었다. 하지만 액정이 큰 휴대폰은 면적 때문인지 나의 엉덩이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화면 글씨가 안 보일 정도로 산산이 조각난 휴대폰 액정에 원장 선생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상담을 마쳤지만 온통 깨진 화면 생각뿐이었다. 서비스센터에 맡기니 수리비는 무려 18만원. 전적으로 내 잘못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후부터는 휴대폰을 고이 손에 꽉 쥐고 다닌다.

따지고 보면 집에 인터넷 전화를 설치한 것도 육아휴직 동안 ‘어디 뒀는지 도통 알 수 없는’ 휴대폰 때문이었다. 휴대폰 전원이 꺼지면 이 또한 소용이 없지만 그래도 꽤 유용하다. 소파 사이, 침대 밑에서 울리는 휴대폰 음악만 쫓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휴대폰이 냉장고 속에서 발견된 적은 없으니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기억 저장소가 과포화 상태가 된 것인지, 아니면 생각 없이 하는 행동들이 많아져서인지 자주 ‘깜빡이’ 등이 들어온다. 휴대폰뿐만 아니라 차 키를 집에 두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일도 잦으니 할 말은 없다. 하긴 동생이 이런 경고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외출했다가 아이들만 잃어버리지 마.”

이제 난 매일 차 문을 닫기 전 차 바깥을 빠르게 ‘스캔’한다. 제발 차 지붕이나 트렁크 위에 얹어진 것은 먼지나 새똥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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