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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밤송이찜’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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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맛난 밥상

금오도 성게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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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길 때문에 한 해 30만명이 찾아드는 금오도. 그래서 이름난 식당이나 화려한 펜션들도 많지만 나그네는 금오도에 가면 늘 허름한 어부의 민박집에 묵는다. 밥상 때문이다. 어부의 아내가 오늘도 바다를 통째로 담아낸 저녁상을 차렸다. 문어무침, 전어구이, 고둥무침, 낙지무침, 대합탕, 해삼물회, 두릅나물. “문밖에만 나오면 다 객지요. 많이 잡수씨오.” 어부는 30년 넘게 어장을 운영해왔다. 예전에는 매일같이 돌산 군내리 어판장으로 팔러 다녔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한두 번 갈까 말까다. 그만큼 바다에 물고기가 줄었다. 어부는 고대구리 배(저인망 어선)가 없어지면서 바다가 황폐화됐다고 생각한다.

“묵혀논 땅하고 같아요. 밭을 갈아줘야 곡식이 자라지. 고대구리 배가 바다를 갈아줬었는디.” 저인망 어선들이 그물로 바닷속을 파헤쳐주니 쌓인 뻘들도 제거돼 깨끗해지고 수초도 많아 물고기가 살기 좋았다는 얘기다. “여그 선창머리도 저녁 먹고 나가믄 민물장어, 참게 같은 게 많이도 잡혔었는디 이젠 눈 씻고 봐도 없어.” 어부는 대형 선단들의 싹쓸이 어업은 그대로 두고 작은 저인망 어선들만 없애버린 정부 정책에 불만이 많다. 바다에 폐기물들이 쌓여가고 대형 선단이 외해까지 나가 내해로 들어올 물고기들을 모두 쓸어담아 가는 것이 바다 가뭄의 원인이라 생각한다. 예전 봄 숭어 철이면 어부는 골병이 들었었다. “숭어 땜에 골병들었었소. 얼마나 많이 들었등가. 미어 나르느라 골병들었소. 하루에 두 배씩 퍼 나르고” 지금은 그 흔하던 숭어도 귀해졌다. 어부는 고기 잡느라 세월이 다 갔다고 탄식이다.

이제 상차림이 끝났는가 싶었는데 어부의 아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에서 무언가 꺼내 오신다. 이런! 그 귀한 밤송이(말똥성게)찜이다. 거기다 생성게도 한 쟁반 가득 담아낸다. 혀끝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는 성게알. 한국뿐만 아니라 수산물에 대한 탐식이 유난한 일본인들도 성게알을 숭어 어란, 해삼 창자와 함께 천하 삼대 진미의 하나로 꼽았을 정도니 성게의 가치는 고금이 동일하다. 성게는 세계적으로 900여종, 한국의 바다에는 30여종이 서식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보라성게와 분홍성게, 말똥성게 등이다. 보라성게는 봄부터 여름까지가 제철이고 말똥성게는 겨울부터 봄까지가 제철이다. 성게는 종류에 따라 식성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바위에 붙어 사는 해초나 고착성 동물을 먹고 산다. 암수딴몸인데 황갈색 알 주위 하얀 액체가 있는 것이 수컷이다.

옛날 기록에는 성게를 ‘해구’(海毬) 또는 ‘해위’(海蝟)라 했고, 우리말로는 밤송이조개라 불렀다. <자산어보>에도 성게를 ‘율구합’(栗毬蛤)과 ‘승률구’(僧栗毬)로 구분했는데 율구합은 보라성게, 승률구는 말똥성게로 추정된다. 남해안 지역에서는 율구합을 밤송이라 부른다. “맛은 달고 날로 먹거나 국을 끓여서 먹는다”고 했다. 성게는 빈혈이나 회복기 환자에게 좋다고 한다. 단백질, 비타민, 철분이 많기 때문이다. 사포닌 성분도 들어 있어 결핵이나 가래를 제거하는 효능까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내륙의 도시에서도 성게알은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지만 성게알찜을 맛본 이는 드물 것이다. 귀한 고가의 몸이라 생으로도 양껏 먹기 어려운 성게알을 찜으로 먹을 수 있다니! 섬이 아니면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경험이다. 말똥성게알찜은 첫맛은 약간 쌉싸름한 듯하지만 이내 쓴맛은 사라지고 달달한 맛만이 내내 혀끝을 맴돈다. 도대체 많이 먹어 질리지 않는 음식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있다. 바로 성게알이다. 산란철인 이즈음의 말똥성게가 최고로 여물고 맛있다. 섬마을 민박집 백반 밥상에 이 귀한 성게알찜이랑 생성게알은 덤이다. 섬에서 유명한 식당이나 화려한 펜션 같은 곳이 아니라 허름한 어부의 민박집을 찾아들 줄 아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여행에도 기술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강제윤 시인·섬연구소장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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