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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야! 한국 사회] 엘리트 집단의 몰락 / 김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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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졌을 즈음 한 동료의 촌철살인. 남북 양쪽 다 ‘윗사람’들이 무능력한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고야 마는 민중의 신기(神技)도 빼박은 듯 닮았다는 것이다. 하긴 최악의 식량난에도 북한의 인민은 나름의 방도를 찾아내었고, 남한 국민 또한 불안정한 정치구조와 경제 불황 속에서도 놀랄 만한 평정심과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굳이 한민족의 우수성을 들먹이지 않아도 남과 북이 식민과 전쟁, 냉전과 분단 그리고 신자유주의라는 현대사의 거친 파고를 견뎌낸 것은 전적으로 민중의 힘이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를 ‘운영’한다는 엘리트들은 이토록 명징한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엘리트들은 ‘무지’한 대중을 ‘교화’시켜야 한다고 믿으며, 민중을 ‘지도’하는 것이 자신들의 사회적 의무라고 으스댄다. 한때 전 국민을 자괴감에 빠지게 한 교육부 관리의 “민중은 개돼지”라는 말이 이 사회 엘리트의 속마음인 것처럼 말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목격되는 대다수의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전문성만이 지금의 현실을 바꿔낼 해법이라고 자신한다. 선거가 본격화되면서 위기의 대한민국 구하기에 뛰어든 ‘선의’의 엘리트들이 바로 좋은 예다. 실패한 적도, 그렇다고 억울함에 가슴을 쳐본 적도 없는 ‘똑똑하고 정의로운’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공명심에 들뜬 이들은 설혹 자신의 계획이 실패해도 안전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매순간 생사의 절벽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민중의 절실함과 급박함을 감각할 수 없는 이들이 외치는 사회 변혁의 꿈은 자신들의 명예욕에 다름 아니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사회를 위해서 ‘헌신’한다고 외쳐대는 이들의 대부분은 사실 나르시시즘에 빠져 타인과의 소통이나 공감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한국사회를 호령했던 엘리트 집단은 빠르게 몰락하고 있다. 한때 여론을 완전히 장악했던 언론 권력은 이제는 찌라시,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과 대결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에 직면하였고, 지식담론과 교육의 주도권을 쥐었던 대학은 한낱 취업준비학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것뿐이겠는가. 법조계, 의료계, 과학계와 같이 ‘전문성’으로 승부하는 엘리트 집단은 그 권위를 잃어버린 채 이기적인 이익집단으로 손가락질받는다. 변해버린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높은 지식을 ‘우매한’ 대중이 알아보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한다.

급진적 사상가이자 운동가인 이반 일리치는 수많은 개인과 집단들이 엘리트의 지배 권력을 만들어내는 사회-기술적 조건들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으며, 엘리트들에 의해 ‘필요’(needs)로 만들어진 가짜 욕망들에 반기를 드는 이들 또한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정치 엘리트의 주장이 더 이상 어떤 실천적 함의도 지적·도덕적 권위도 얻지 못하는 이유다.

지난겨울 서로를 마주한 이 땅의 민중들은 맹목적으로 엘리트를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수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던 것은 다시금 구원의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더 이상 지식과 전문성이라는 이름에 농락당하지 않을 것이며, 민중의 의지와 경험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다짐을 되새기기 위함이었다. “가만히 있으라.” 이 말은 세월호에 갇혀 있던 학생들이 아닌 선거철마다 한껏 자만심에 젖어 떠들어대는 이 사회 엘리트 집단에게 지금 우리가 던져야만 할 명령일 것이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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