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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덕기자 덕질기 3] 던져야 산다 / 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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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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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
한겨레21부 디지털팀


크로스핏은 던지는 맛에 한다. 안 던져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던져본 사람은 없다. 그만큼 기막힌 손맛이다. 그 무거운 걸 끌어올리다 도저히 어쩌지 못하고 에라 모르겠다고 퉁 놓아버릴 때. 도무지 들리지 않던 그게 바닥을 타격하고 경쾌하게 퉁 튀어오를 때. 관절에서 출발해 근육을 타고 심장으로 전달된 무게의 감각이 온몸에 공감각적으로 전해진다. 뭘 던지느냐고. 바벨이다. 크로스핏은 역도를 바탕으로 바벨을 드는 걸 기본으로 한다. 누구도 바벨을 계속 들고 있을 순 없다. 들면 반드시 놓아야 한다. 그 내려놓기, 에라 모르겠다는 팽개치기의 순간이야말로 크로스핏만의 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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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사는 셀프로 진행했다. 비용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 박스 하나를 꼭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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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크로스핏을 시작했던 박스는 고층 건물의 지하였다. 언젠가부터 바벨을 못 던지게 했다. 크로스핏 와드에서 ‘언브로큰’(unbroken)이라고 부른다. 이런 수행 방식은 보통 ‘터치앤고’(touch&go)다. 손에서 바벨을 놓지 말고 바닥에 플레이트가 닿자마자 다시 들란 의미다. 갑자기 그런 와드들이 많아진 이유는 간단했다. 시끄럽다는 민원이 거세고, 건물이 뒤틀려간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엄포도 있었다.

바벨을 던지지 못하니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내가 수행해야 하는 행위는 드는 것인데, 던지지 못하니 재미가 없는 아이러니. 그걸 참지 못한 몇몇이 박스를 떠났다. 그러곤 ‘바벨을 던질 수 있는 박스 바닥’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들이 오갔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는 세상에서 그걸 허락할 용자가 있겠느냐는 쪽으로 결론이 모였다. 주로 단층 건물에 박스가 있는 외국에는 이런 문제가 없을 것이란 한탄도 이어졌다. ‘결로와 박스 소음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토건 공화국의 압축적 근대화의 실패를 보여준다’ 같은 시답지 않은 얘기가 오갈 때 누군가 말했다. “형, 저희 아버지 건물 지하가 놀고 있는데 박스나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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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사는 셀프로 진행했다. 비용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 박스 하나를 꼭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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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기적 제안이었다. 그때부터 어떤 바닥소재를 깔았을 때 소음과 충격이 최소화될 것이냐에 관한 ‘덕질’이 본격화됐다. 각종 건축 자재에 대한 집단 지성적 탐구가 이어졌다. 바벨이나 플레이트 같은 장비를 사는 것보다 바닥이 더 중요했다. 우리는 던져야 했다. 바닥 공사에 대한 견적을 잡아보니 1인당 초기 출자금은 300만원으로 정해졌다. 임대 보증금 1000만원을 포함해 최종 예산은 4500만원이면 충분했다. 15명의 조합원을 규합하기로 했다. 보통 한 달 크로스핏을 하는 데 20만~30만원의 수강료를 내니, 1년치 정도를 선납하면 ‘너와 나의 박스’가 생길 수 있단 단순 무모한 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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