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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블랙리스트’ 집행 과정 법정 증언···“지원현황 올리면 문체부가 전화로 ‘배제’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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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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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가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명단(블랙리스트)을 집행한 구체적인 과정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증인으로 출석한 문예위 관계자는 “문체부의 요구를 무시하기 힘들었다”며 “많은 예술인들에게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황병헌 부장판사)의 심리로 진행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등의 7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홍모 문예위 무대예술부장은 이 같은 내용을 법정에서 밝혔다.

홍 부장은 문체부가 문예위에 특정 문화 사업에 대한 ‘지원 배제 요청’을 하고, 이를 문예위가 집행하는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그는 ‘(문화 사업) 신청자 명단을 문체부로 보내주면 문체부에서 지원배제 지시가 내려왔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질문에 “신청서를 받으면 그 현황을 문체부에 e메일로 보냈다. 그 뒤 문체부 담당자가 문예위에 전화를 걸어 지원배제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홍 부장은 “지원신청 현황을 보내고 일정 기간 뒤 문체부 담당 사무관이 (문예위) 담당 부장에게 전화해 ‘이러이러한 사업들은 지원에서 배제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런 과정을 경험하고 말하는 것인가’는 질문에 “2016년 상반기에 같은 부서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원들과 함께 겪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며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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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부장은 문체부에서 하달된 블랙리스트가 문예위 심의 과정에 적용되는 과정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일반적으로 담당 부서장이 심의를 총괄 진행한다”며 “심의를 참관한 경험에 따르면 지원신청서에 적힌 내용 중 안좋은 부분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심의위원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홍 부장은 “심의는 위원들이 하는 것이니 심의 과정에 문예위 직원들이 관여해서는 안된다”면서도 “(문체부로부터) 지원배제 지시를 받은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몰렸다”며 당시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현재 문예위는 실제 예술가들에게 지원할 수 있는 재원이 고갈되다보니 문체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문체부의 지원배제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여러가지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문예위 위원장을 문체부 장관이 직접 임명하는 구조다보니 기관장과 직원들이 (문체부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예위 직원들은 예술인들과 현장에서 마주하며 활동하는데, 지원배제 이후 현장에서 예술인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다”며 “대한민국의 기초예술을 진흥시킨다는 자긍심을 갖던 많은 직원들이 ‘회사 그만두고 싶다’, ‘왜 이런 일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많았다”고도 말했다.

홍 부장은 “문예위가 블랙리스트 관련 업무를 일부 했다는 사실을 시인한다”며 예술인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는 “저 또한 블랙리스트로 알려진 분들 중 호형호제하고 소주 한 잔 기울이는 예술가들이 많다”며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예술인들을 공정하게 지원해야 할 문예위 조직원으로서 이런 일에 연루돼 정말 창피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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