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한판에 1만원' 다시 뛰는 달걀값…산란계 살처분 후폭풍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달걀대란’이 다시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 지난 2월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가 잠잠해진 이후 한동안 안정세를 보이던 달걀 값이 다시 치솟고 있다. 소규모 슈퍼마켓 등 일선 소매점에서 파는 달걀 한 판 가격은 두달여 만에 다시 1만원 선을 넘어섰다.

2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산지에서 거리가 먼 서울 인근 슈퍼마켓에서는 운송비와 제반 비용을 더해 달걀 한 판이 1만원 이상에 팔리고 있다. 대형마트 판매가격도 1판당 1만원에 근접했다. 이마트에서는 PB제품인 30개들이 달걀 한 판이 8800원, 롯데마트 PB제품은 8600원에 판매 중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1월 16일 9518원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6900원까지 내렸던 달걀 평균 소매 입점가(30개들이 특란 기준)는 지난달 말부터 서서히 오르기 시작해 지난 21일 7716원까지 뛰었다. 한 달 전 가격인 7311원보다 400원(5.47%) 이상 올랐으며, 1년 전 가격(5350원)과 비교하면 2300원(44%) 이상 급등했다. 소매 입점가는 소매점이 도매상에서 사는 가격을 말한다.

◆ 소풍·나들이철이라 달걀 수요 늘어나는데…재고는 평소 3분의 1수준

조선비즈

지난 24일 서울 시내 소규모 슈퍼마켓에서 달걀 1판을 1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라남도 나주, 충청남도 성환, 경기도 포천 등 국내 주요 산지 달걀 도매가격도 2월 초 개당 159원까지 떨어진 뒤 24일 186원까지 올랐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한창 확산하던 지난해 12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달걀 값은 당분간 오를 가능성이 크다. 5월은 전통적으로 초·중·고등학교 소풍철이 많은 시기라 달걀 수요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올해는 5월 1일 노동절부터 9일 대통령선거일까지 징검다리 휴일이 이어져 나들이 수요가 예년보다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달걀 수요가 몰리는 이맘때 풀려야 하는 재고 물량은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21일 기준 시장 가격을 좌우하는 달걀 재고 물량은 서울·수도권 지역 일부 대형 달걀 집하장 기준 평소의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장기적인 수급이 불안해진 상황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AI 사태로 산란계를 대거 살처분하면서 국내 산란계 전체 사육 마릿 수가 전년보다 19.3% 감소한 5666만마리로 줄었다”며 “살아남은 산란계를 최대한 활용해도 다음달까지 달걀 생산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8%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추정했다.

◆ “알 낳을 닭이 없다…회복까지 최소 6개월”

달걀은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산란계를 24시간 다그친다고 해서 일시적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없다. 이미 국내 주요 산란계 농가는 AI 사태 이후 심각한 산란계 고갈난(難)을 겪고 있다. 농가들은 현재 살아남은 산란계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생후 80주가 넘은 늙은 산란계까지 달걀을 낳게끔 사육 체계를 조절하고 있다.

달걀 유통업체 관계자는 “산란계는 보통 생후 80주까지 연간 약 250~300개의 알을 낳는데, 80주가 넘으면 연간 150개 안팎으로 산란율이 뚝 떨어진다”며 “지금은 산란계가 부족하다 보니 생후 100주가 지난 산란계마저 달걀을 낳게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지난해 12월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방역 당국이 살처분 및 방역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산란계가 귀해지다보니 평소 마리당 500~800원선에 거래되던 병아리 가격은 현재 2000원 안팎까지 올랐다. AI가 처음 발생했던 11월 570원 이후 5개월 연속 상승세다. 산란계 농가가 병아리를 들이고 첫 산란을 하기까지는 5개월이 걸린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작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AI가 발생한 국내 농가 383곳 중 산란계·산란종계 농장은 158곳이다. 이 중 아직 새로 병아리를 들인 곳은 단 한곳도 없다. 방역대 해제 후 병아리를 새로 들이려면 방역 관리와 점검에 평균 3~4개월 가량 걸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달걀 공급이 정상화되려면 지금부터 최소 6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예측한다.

◆ 호주산 달걀, 구원투수로 투입…태국산 달걀도 수입 초읽기

정부는 지난 1월 끝없이 오르는 달걀 값을 잡기 위해 최근 20년간 수입된 적이 없던 미국산 달걀을 수입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방법조차 여의치 않다. 지난달 미국 동부 테네시주(州)에서 H7형 AI가 발생하면서 미국산 달걀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는 미국산 달걀 수입에 대한 대안으로 호주산 달걀을 들여왔다. 1차 물량 4536판(30구 기준)이 19일 부산항을 통해 국내에 들어왔고, 21일에는 2차 물량 9240판이 추가로 수입됐다. 이 달걀은 서울·수도권 지역에 우선적으로 공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비즈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판매 중인 미국산 달걀. 왼쪽 하단 빨간 라벨에 쓰인 미국 농무부(USDA) 마크가 선명히 보인다. /유진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호주산 달걀 가격은 국내 달걀과 비슷하다. 현지 도매가 기준 개당 172원으로 153원인 미국산보다 10% 정도 비싸다. 국내에 공급된 호주산 달걀은 한 판당 8000~9000원에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호주는 1930년대 이후 한 번도 AI가 발생하지 않은 청정지역이지만, 항공편으로 운송했던 미국산과 달리 선박으로 운송하기 때문에 신선도가 우려스럽다”며 “보름에 가까운 수입 기간과 국내산 달걀과 비슷한 가격을 감안하면 경쟁력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호주산에 이어 태국산 달걀을 대거 들여와 달걀 대란에 대응할 계획이다. 농식품부는 지난 11일 태국을 식용란 수입금지지역에서 해제하는 내용을 담은 ‘지정검역물의 수입금지지역 일부개정고시안’을 행정예고했다.

태국산 달걀은 미국산 ‘흰색 달걀’과 달리 국산 달걀과 같은 황란(黃卵)이다. 가격은 현지 도매가 기준 개당 80원 정도다. 호주와 미국산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운송비와 통관비, 소매유통 마진 등을 포함해도 30구 한판 소매가 기준 5000원 수준에 팔릴 것으로 예측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태국은 미국과 달리 달걀 수입금지국이어서 수입재개 절차에 시간이 걸리지만, 빠르면 6월 초에 태국산 달걀을 수입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수입 달걀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달걀 값 안정을 위해 사재기 등 시장질서 교란 행위에 대한 유통 점검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진우 기자(ojo@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