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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육아의 신` 오은영 박사 "진짜라고 착각한 자식 사랑, 자녀에겐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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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자녀를 때리면 안 됩니다. 아이에게 눈을 흘겨서도 안 돼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합니다. 간혹 '저는 어렸을 때 부모님한테 매를 많이 맞고 컸어요. 그래서 잘 자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저는 '매 맞았던 것을 성인이 된 후 긍정적으로 해석해서 그런 것이지 체벌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 드립니다. 이것은 마치 '음주운전을 했는데 사고가 안 났으니, 저는 운전을 잘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2005년부터 2016년까지 TV 육아 전문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통해 대중에게 '육아의 신(神)'으로 알려진 오은영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박사)는 인터뷰 동안 '체벌 금지'를 여러 번 강조했다.

"아이를 끊임없이 가르쳐야지 혼내면 안 됩니다. '절대 이 행위를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이 가르치는 것이고, '야! 그거 하지 말랬잖아'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혼내는 겁니다. 아이에게 공포감을 조성해 말을 빨리 듣도록 하는 유혹에 빠지면 나중에는 아이에게 화를 내는 강도가 더 커집니다. 화를 냈다고 아이가 더 잘 배울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에요. 아이를 형제는 물론 다른 아이와 비교해서도 안 돼요."

오 박사는 연세대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한 뒤 고려대 대학원에서 정신의학 박사까지 마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다. 그는 아주대 대학원 내 특수교육학과를 신설해 주임교수를 지냈으며, 1990년대 중반 경기도의 어린이 정신건강사업 프로젝트를 이끈 주인공이기도 하다. 1998년 경기도가 오산시에 어린이 정신건강센터를 마련한 뒤 경기도 소재 학교에 도움을 주는 등 아동정신건강사업을 시작했는데, 이 프로젝트 역시 그가 맡았다.

'체벌 금지론자'인 오 박사는 자신의 아들도 회초리를 들거나 화를 내지 않고 키웠다. 오 박사의 평소 퇴근 시간은 밤 11시혹은 12시인데, 그의 아들은 이때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고 엄마를 기다릴 정도로 모자 관계가 돈독하다. 주말에도 쉴 틈 없이 바쁘게 일하는 오 박사지만 매일 30분 이상 아들과 대화한다.

"지금은 스무 살이 된 아들이 중학생 때 제게 화를 낸 적이 있어요. 그때 아들에게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화를 내지 말라고 말하는 게 아니야. 그런데 '화'에는 1부터 10까지 정도가 있어. 10은 나라를 빼앗겼을 때, 9는 누가 우리 가족을 해쳤을 때. 네가 지금 내야 하는 화의 정도는 1이야. 네 감정을 적당한 수준까지 표현해야만 네가 상처를 덜 받고 상대도 네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어'라고 말해줬습니다. 아들이 제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오 박사는 육아에서 한국 부모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불안감'이라고 지적했다. 아이를 잘 키우려는 마음에서 불안감이 형성되고, 이 불안감이 지나치면 아이에게 해를 가하는 부모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부모는 아이를 낳는 순간 본능적으로 아이를 사랑하게 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아이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면서도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요. 영화 '사도'를 보면 영조(송강호)가 죽은 아들 사도세자(유아인)를 끌어안고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데'라면서 울부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사랑했을지 모르지만 아이에게는 해를 끼치는 아버지였습니다."

'영어·수학 태교'라는 신조어도 나올 만큼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부모들이 넘친다. 영어 공부는 몇 살 때부터 시키는 게 적절한지 물었다.

"아이 나이가 6.9세가 되면 아이는 외국어를 외국어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전부터 영어 등 외국어 교육에 목숨 거는 엄마가 많죠. 하지만 모국어 능력이 뒷받침돼야 사고력이 좋아지고 외국어도 오히려 잘 배울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모국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3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우도록 하는 게 효율적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가 될 것이라는 오 박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뭘까.

"아이를 건강하게 잘 키우는 것이 삶의 출발점이자 국가의 가장 큰 자산이며, 복지의 시작입니다. 세상 사람 모두 누구에게도 화를 낼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요. 제가 4년 전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료 강연을 하는 이유입니다."

[신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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