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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56) 시즌 2 <본부장이 時代를 말한다> 제 7 편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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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곡만큼 슬픈 삶을 살다간 러시안 감수성의 제왕 <차이코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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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미라는 것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다고 본부장이 말한 적이 있다. 하나는 인간(mortality)이 신(Immortality)과 다름에 대한 끊임없는 내적 자각을 통해 불완전성 극복을 위한 끊임없이 투쟁을 하는 모습이다. 또 하나는 인간이 가진 불완전성을 받아들이고 자신과 같은 불완전한 인간들을 측은하게 바라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인간적인 멋이란 말과 인간적인 맛이 난다는 표현으로 대별시킬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인간적인 멋이란 우주공간에 오직 유일하게 고차원적인 지적 능력을 가지고도 영원히 살 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역설적 자부심을 최대한 누리려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지적, 정서적 모습이다. 인간적인 맛이란 유한한 존재이기에 오히려 마음 놓고 포기할 수 있는, 우주적 책임감에서 과감히 벗어나 오로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이기적인 쾌락을 마음껏 즐기면서도 타인의 쾌락도 최대한 배려하려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본부장이 평소에 느껴온 인간에 대한 상념이다. 본부장이 무슨 철학 책을 많이 보고 연구한 것도 아니고 실제 조직원 및 면접자 개개인을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정도'로 너무나 유심히 관찰하고 또 그들 때문에 즐거워하고 괴로워 해본 경험으로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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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에서 보이는 두 가지 시선 <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한 투쟁과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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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본부장이 인간에게 내린 결론은 지구상의 어떤 사람이나 어떤 나라도 이 두 가지 인간미(인간적인 멋과 맛) 모두를 추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처한 시대적 공간적 상황과 개인적인 특수한 경험에 따라 그 비율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나를 따르는 여러분들께 당부하고 싶은 것은 최대한 이 두 가지 부분을 균형 있게 추구해주길 바란다. 역사상 한쪽 날개만을 가지고 비상한 개인이나 조직 그리고 국가는 없었다. 모든 개인과 조직, 국가의 우열은 언제나 그 비율의 균형에서 판가름이 난다. 토마스 칼라일이 말했듯이 인간은 가장 보기 좋은 상태 즉 아름다움(beauty)을 얻기 위해 권력(power)과 지(wisdom)를 도구적으로 가지려고 하는 것이다. 권력과 지혜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닌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란 것을 바로 균형 잡힌 상태로 보는 것이 2000년 동안 그리스 로마에서 내려온 주된 사상이다. 본부장이 보기에는 매우 납득이 가는 얘기다. 본부장 또한 이런 균형 잡힌 상태를 항상 강조하는 바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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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 밤, 전 세계의 모든 이에게 미증유의 행복감을 준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그래서 권력(power)을 가진 자가 자신의 조직을 보다 균형 잡힌 아름다운 상태로 추구할 대상(본부장이 전편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말한 크라운 주얼, 최고의 가치)을 갖지 못했다면 그는 비루한 자이고 知(wisdom)를 가진 자가 그게 없을 때 본부장은 그를 쉬운 말로 변태라고 말하고 싶다.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가 없이 많이 알기만 하면 필히 변태가 되는 것이다. 권력이 아름다울 때는 그래서 아름다움을 위한 권력일 때이다. 예를 들면 극도로 불균형한 국가 경제 계층의 양극화를 해소해 균형 잡게 해주거나 또는 정치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해방시켜준다거나 반대로 지도층이 너무 권한이 없어 추동력이 없을 때 이를 바로 잡거나 영토가 너무 사분 오열 나누어져 있어 합목적적인 시너지가 안 생겨질 때 이를 연방 같은 더 큰 공동체로 묶어 모두에게 더 큰 이익을 줄 수 있는 그런 권력은 아름답다. 왜냐면 그러한 나만이 아닌 타인이나 전체를 배려하는 모습은 언제나 그리고 누가 보아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익을 추구하지 말고 공익을 추구하라는 말도 본부장이 보기에는 의무감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추구이다. 智者나 權者는 반드시 공공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 본부장이 이 부분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지금부터 다룰 차이코프스키란 인물이 가진 너무나도 멋진 총체적인 인간미 때문이다. 즉 인간적인 멋과 맛이 있는 인간으로서의 멋을 모두 갖추고 더 나아가 타인이나 대중을 위한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인물이다. 앞서 말한 이탈리아의 베르디처럼 이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 여러분이 꼭 주목하길 바라는 인격적인 모델에 정확하게 맞는 실전형 인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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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적 색채가 듬뿍 담겨져 있어 더욱 매료되는 멜로디 <교향곡 5번>


본부장은 어떤 기회에서든 러시아편에서 꼭 차이코프스키를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었다. 앞서 말한 그가 가진 인간미도 물론이겠지만 그가 만든 시대를 앞서는 20세기형 대중친화적인 작품과 전 세계인이 갖고 있는 러시아의 긍정적 이미지의 절반이상을 차지함에도(마치 러시아의 셰익스피어라고 할까) 러시아라는 배경 때문에 디스카운트된 부분을 말이다. 그는 자기 희생을 통해 조국 러시아를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갖춘 나라로 만들었다. 당시만해도 19세기는 사회나 개인이나 겉멋이 제대로 든 시대였다. 온갖 사상가와 예술가가 서로 친분을 쌓고 요즘 흔히들 이야기하는 통섭을 하며 각 영역을 넘나들면서 공통된 점을 찾아 다녔다. 서로끼리 영역을 달리하면서도 무슨 라이벌도 참 많았고 모임들도 많았다. 당시에 특히 이런 문화 예술 그리고 학문적 통섭이 가장 빈번하던 곳이 세 곳이었다. 대륙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며(독일 제국은 속으로 비웃겠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동맹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귀족들이 신분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빈(비엔나), 그리고 당시 가장 번영을 누리던 신흥 계급 젠틀리들이 점령한 영국 런던, 그리고 예술과 명품에 대한 실질적 전문가들의 집합소인 프랑스 파리다. 본부장이 전작에서 무슨 일이든 성공하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희소성'과 '돈', 그리고 '커리어'라고 말이다. 꺼져가는 신분제의 마지막 보루였던 오스트리아 빈이 주는 희소성과 대영제국 심장부 런던이 보장해주는 막강한 파운드화의 위력 그리고 파리가 유럽 문화 예술의 마이스터들이 모여드는, 대체불가능한 커리어를 갖춘 인재 집합소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래서 이 세 곳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을 기반으로 세계의 모든 유행은 시작되었고 또 거기서 평가되었다. 19세기 문화 예술 심지어는 학문적 유행은 반드시 비엔나-파리-런던을 잇는 축의 선상에서 이루어졌다. 명심해라. 책에서도 얻을 수 없는, 본부장이 수년간 유럽 오페라 축제에 참가하면서 다양한 친분을 통해 얻은 살아있는 정보이니 말이다. 본부장은 올해도 스위스 루체른으로 갈 것이다. 베를린 필의 전용 음악축제인 루체른 페스티발에 참석하기 위해서 말이다. 눈요기나 하러 가는 게 아니다. 다 필요해서다. 본부장의 150년 이상된 스승님들 중에 한 분인 '미야모토 무사시'(오륜서)의 9가지 계율 중 첫 번째를 특히 명심하라.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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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운 곡이 당시에는 혹평의 대상이었다. <백조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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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변방인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에게 앞서 말한 세 중심지는 그야말로 냉혹한 시험장 같은 곳이었다. 그가 연출하려는 감수성 강한 멜로디나 선율이 그들에게는 매우 촌스러워 보였다. 너무나 대중적으로 보였다고나 할까. 당시 19세기 유럽은 난해한 음악이 대세였다. 일반 대중이 듣기에 너무나도 힘든 음악들 위주였는데 대표적인 분들이 쇤베르크,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말러 등이 있다. 클래식 전공자도 그냥 졸리는 작품들을 쓴 사람들인데 오죽하겠나. 차이코프스키는 이들에게는 완전히 촌놈이었다. 이게 음악도 나라 분위기를 따르는 것인데 19세기적 통섭의 시대에서는 너무 국가나 민족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에 큰 점수를 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독일의 바그너,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체코의 스메타나, 노르웨이 그리그 등이 좀 그랬다. 그런데 이들은 그래도 유행은 따라 가면서 썼기에 촌스럽다는 얘기는 안들었는데 차이코프스키는 민족주의뿐 아니라 당시의 유행을 전혀 따르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그의 곡은 대부분 처음부터 반응이 안좋았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이나 바이올린 협주곡은 완전히 유행에서 벗어난 곡조였고 지금은 불후의 명곡인 교향곡 4,5,6도 들인 노력에 비해 처음엔 그저 반응이 그랬다. 당시 유럽 최고 인기 파트인 발레에서마저도 지금은 전세계 모든 사람과 심지어 어린애들까지 그렇게 좋아하는, 그의 3대 발레곡인 '백조의 호수'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 그리고 '호두까기 인형'도 초기 흥행에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 본부장은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의 신세를 너무나 한탄한 나머지 모스크바의 차가운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했다는 말에 그저 공감이 간다. 누구라도 이 정도의 좌절이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 당시에는 러시아 민요풍의 멜로디를 그리 높게 쳐주지 않았다. 본부장이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초기 음악적 결과가 차이코프스키가 엄청난 애국자여서 라기보다는 그가 가진 인간적 신념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편협할 정도로 자신의 것을 주장해서도 안되지만 자신의 것을 먼저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을 본부장은 믿지 않는다. 예를 들면 여러분의 부모나 형제 그리고 조국에 관련된 모든 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타부(금기사항)와도 같은 것이다. 타부란 지난 수 천 년간 인간이 인간으로서 꼭 지켜야 한다고 조상으로부터 전해지는 신념을 말한다. 마치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소프클래스의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가 비록 천륜을 저버렸지만, 그런 이유로 자신의 오빠의 시신을 땅에 묻지 못하게 하는 자들을 비난하면서 하는 명분인 '땅에 묻지 않는 것은 타부를 깨는 것'이라고 한 대목처럼. 러시아에서 태어나 줄곧 러시아에서 살아온 사람으로 매우 당연한 삶의 태도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타부에 근거한 신념을 집념으로 투쟁하여 남다른 작품이 창작 되는 것이다. 명심하라. 명작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반드시 고난을 각오하라. 고난이 명작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부도덕이 아닌 신념이 불러오는 고독함은 최종적 성공을 위해 일부러라도 만들어야 하는 통과의례적 필수 사항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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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 사람이 최고다. 러시아 바이올니스트 <데이비드 오이스트라흐>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유럽보다는 주로 바다 건너 영국 런던에서 호평을 받았으나 오히려 자기 나라인 러시아에서 조차 홀대 받았고 파리나 빈에서도 처음엔 평이 그저 그랬고 나중이 되어서야 평가를 받았다. 영국에서 호평을 받은 것은 차이코프스키가 가진 대중적 서정성에 대한 호소력이 당시 엄청난 문화적 욕구를 가진 영국 신흥 부유층(개천에서 난 용)에게 먹혔던 것이다. 당시만해도 영국에서 돈 좀 번 사람들은 젠틀리 계층으로 전통적인 귀족계급을 넘어섰고 수도 많았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보면 런던시민들이 영화를 보듯이 오페라를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바그너 오페라를 말이다. 바그너 오페라는 보통 100명 이상의 관현악단이 필요하기에 웬만한 국가에서는 초청되지도 못하고 자체적 공연은 더 더욱 불가능하다. 차이코프스키의 시대를 앞서는 대중적 영감에 영국 런던의 신흥 젠틀리 계층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유럽에서는 20세기에 가까이 되어서야 신분제가 완전히 깨지고 대중사회적 분위기가 힘을 더해가면서 차이코프스키의 진가는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가 죽은 1893년 이후에 말이다. 비운의 스타가 아닐 수 없다. 그가 마지막으로 온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는 '비창'이 그의 운명을 예측한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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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이 곡의 별명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그리고 완성된 그 해 혹평을 받고 곧 사망한다.<교향곡 6번 비창>


여러분들도 느낄지 모르겠지만 본부장은 러시아 국가를 들으면 왠지 차이코프스키가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냥 멜로디가 비슷하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차이코프스키가 초기 작곡가 시절에 자국에서도 매우 촌스러운 멜로디를 쓴다고 욕을 먹었다고 하는데 이유는 바로 러시아 민요에서 따온 장단 때문이다. 만약에 그가 당시 19세기 유럽의 유행을 무작정 따라 하는 일반적인 우를 범했다면 후에 이런 엄청난 명성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생을 살면서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절대 여러분만의 이론을 만들라는 것이다. 나를 정의할 나만의 이론을 만든 사람은 오히려 남에게 여유로운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본인의 이론이 없으면 불안한 법이다. 불안하면 상대방이나 대중은 여러분을 알쏭달쏭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끝인 것이다. 여러분의 성공은 상대방이 나를 명확하게 어떤 사람인지 알게 만드는 것이다. 혹자는 '상대가 나를 모르게 해야 승리한다'고 한다. 엄청나게 아마추어 같은 이야기다. 상대가 나의 속을 어찌 알겠는가 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속을 알든 모르든 신경 쓰지 말아라. 여러분이 겁내는 것이 무엇인 줄 안다. 여러분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키는 것이 걱정이 아니겠는가. 원하는 게 그토록 단순하고 근시안적이니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이다. 본부장이 강조하는 '바다 같은 사람'이 되었다면 무엇이 걱정인가. 대인배들은 제발 나를 알아 주기만 바랄 것이다. 역사상 모든 큰 인물들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바로 이처럼 그저 우직하게 뚜벅뚜벅 걸어간 사람이 차이코프스키이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경우 그의 스승이 이건 쓰레기라고 악평한 후 거의 다 고칠 것을 명령했지만 그는 자신의 이론과 음악적 定義를 지키려고 했고 결국 이 음악은 방금도 유투브로 본부장이 본 예브게니 키신 피아노 연주와 세이지 오자와 지휘 공연의 세계적 조회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21세기에서도 여전히 또 듣고 싶은 명곡이 되었다. 더구나 그토록 혹평을 받았던 피아노 독주 도입부가 지금은 가장 인기 있는 부분이 된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10명중 7명이 하는 평범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지 평범한 생각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론은 오직 나만의 것 즉 60억 중 1명이 하는 생각이 최고다. 다시금 강조한다. 너만의 이론을 가지고 그것을 강력하게 定義하라. 정의하지 않으면 우주적인 힘이 널 주목하지 않는다. 결국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명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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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의 패배로 나폴레옹은 실각하고 유배된다. 프랑스에게는 패전 기념곡 <1812년 서곡>


자 이거 하나는 알고 가자. 1812년 서곡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유럽은 서로가 서로에게 한번씩은 지고 또 이겨봤지만 프랑스에게는 정말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이 음악에 들어 있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대패한 1812년을 기념한 러시아 승전 기념 음악인데 프랑스에선 공식적 행사의 금지곡이고 영국과 러시아에선 워털루 승전 기념식과 1812년 러시아 승전기념식때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과 함께 엄청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영국 영화 ‘브이 포 벤테타’에서는 아예 해방의 의미를 가지는 축가로 나올 만큼 영국에서 오히려 애용되는 음악이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엄청 기분 나쁜 이슈이다. 하지만 러시아에게는 멸망의 순간을 넘긴 기적 같은 승리였고 그 희생 또한 매우 컸다. 그래서 차이코프스키 데뷔곡 중 드물게 처음부터 자국에서부터 호평을 받은 곡이다. 상식으로 알아두길 바란다. 그러니 프랑스 가서 이 음악을 틀거나 좋아한다고 하면 런던의 펍(Pub)에서 멘체스터 유나이티드 좋아한다고 하면 나오는 반응을 보게 될 것이다. 특히 1812년 서곡을 유심히 들으면 애처롭게 들리는 프랑스 國歌 ‘라 마르세예즈’가 敗者의 비명처럼 들린다. 요즘 말로 디스. 한 마디로 비아냥거린 것이다. 차이코프스키는 19세기에 벌써 이런 기법을 보인 예술품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곡의 초연 때인 전승 기념식에서는 실제 대포를 사용할 정도로 앞서나가는 시도를 하였다고 한다. 러시아의 이러한 새로움에 대한 작은 꿈틀거림은 곧 있을 그 나라가 감당할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의 추동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미 흥미단계를 넘어선 격이 다른 눈높이의 시작이고 또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의 이동에 대한 암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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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은 이해하기 어려운 곡보다 대중적 취향이 느껴지는 차이코프스키를 특히 많이 녹화했다. 대중의 요구를 알고 시대를 앞서 음반 레코딩의 시대를 연 카라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레코딩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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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는 전세계적으로 지금도 엄청난 인기다. 독일 클래식이 전체의 80%를 장악하고 있고 또 그렇기에 연주자나 지휘자도 독일 클래식 위주로 교육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코프스키는 당당하게 자신의 스타일대로 곡을 만들어갔고 또 그런 스타일과 자신의 조국이 겪은 봉쇄 프로그램과 함께 냉전시대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디스카운트를 겪고도 이 정도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명심하기 바란다. 본부장이 말한다. 대중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고대 중국의 전략가 제갈공명은 남들이 모르게 하려면 아예 그걸 하지 말라고 했다. 만약 차이코프스키가 독일인이었다거나 영국인이었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나아지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신념의 이미지가 오늘날 차이코프스키의 유명세에 반드시 작용했을테니 말이다. 여러분들이 겪는 모든 불합리한 디스카운트나 폄하를 두려워 말라. 대중들은 이미 여러분들이 받는 불이익을 알고 있다. 묵묵히 받아들여라. 그럼 그들은 그런 모습 또한 알고 있다. 여러분이 받는 고통과 그것을 이겨내려는 발버둥을 모두 알고 있단 말이다. 우리가 차이코프스키를 듣는 것은 그가 작곡한 음악만을 듣는 게 아니다. 그가 겪은 수많은 시련을 연상하며 그를 동정하고 연민하며 어루만지면서 듣는 것이다. 서두에서 말했던 인간이 가진 두 가지 인간미를 모두 가슴 깊이 느끼게 해주는 차이코프스키의 인생을 듣고 그 곡을 듣는 것이다. 이게 바로 본부장이 이야기 하는 실전형 리더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슬픈 곡보다 더 슬픈 비극적 삶을 스스로 이겨내려고 절규하는 超人이다. 그리고 동시대와 앞으로 올 세대에게 똑같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겪을 고독함을 위로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자세를 보여준 大人이다. 그가 떠난 지 100년이 훨씬 넘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만큼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도 없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의 영역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켜준 그에게 너무나도 감사하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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