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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전통음악에 ‘중용의 속도’ 단서 있다고 감히 주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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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전 국립국악원장 한명희 박사

한겨레

한명희 전 국립국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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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의 음악과 맥박의 음악, 식물성 음색과 금속성 음색, 비움의 음악과 채움의 음악. 한명희(78) 전 국립국악원 원장이 쓴 <한국음악, 한국인의 마음>(열화당 펴냄)에 올라 있는 차례 항목들이다. 서로 대비되는 한국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특징들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지은이는 서로 다른 특장을 얘기할 뿐 우열을 가리지는 않는다. 한국 전통예술을 이해하는 몇 가지 키워드라는 항목도 있는데 흥과 멋, 운치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이 자신의 전통음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쉽게 풀어 쓴 일종의 교양 인문서다. 전통음악의 남다른 특징을 나름대로 적시하고, 이를 전통문화의 체질이나 한국인의 심성과 연계해서 풀어 보려고 했다. 또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사회를 풍미하는 서양 공통관습시대의 음악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살펴보려 했다.”

‘한국음악, 한국인의 마음’ 개정판
라이프치히 도서전 주제도서 전시


기자 지망하다 방송 피디로 10년
가곡중흥운동하며 ‘비목’ 작사해
“휴전선 최전방 근무때 체험 담아”
26일 토크쇼 ‘담담풍류’에서 소개


‘한국음악, 한국인의 마음’은 지난달 독일에서 열린 ‘2017 라이프치히 도서전’ 한국관에 주제도서로 전시됐다.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가 2013년부터 해마다 참가하고 있는 이 도서전 한국관의 올해 주제는 ‘한국음악-자연따라 흐르는 맑고 온화한 선율’이었는데, 송혜진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의 <한국음악 첫걸음>과 함께 독일어와 영어본으로 소개됐다.

“지난해 7월 이기웅 열화당 대표로부터 도서전 참가 결정을 통보받고 지난 연말까지 다시 썼다. 1994년에 출간한 <우리가락 우리문화>의 개정·증보판인데, 기왕의 책에서 단 한 문장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전체 내용을 모두 다시 쓰고, 3분의 1 가량의 항목들은 교체하거나 새로 보태 썼다.“ 초판도 3쇄까지 찍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상도 받았고, 국정홍보원에서 영역본을 만들어 외국에 배포하자는 제의도 받았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20여 년만에 개정판과 번역본까지 한꺼번에 이룬 셈이다.

“세상도 문명도 마하의 속도로 달린다. 너무 빠르다”로 시작해서 “적정한 속도를 회복해야 한다. 중용의 속도를 지켜야 한다. (…) 바로 중용의 속도를 찾는 몇 가지 단서가, 여기 한국 전통음악의 이야기 속에 있다고 감히 주창해 본다”로 이어지는 서문부터 유장하면서도 깊다. “원래 기자가 되고 싶었다”는 그의 글솜씨는 서울대 국악과 학·석사와 성균관대 철학과 박사, <티비시>(TBC) 피디 생활 10년을 거치면서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다. <문학사상> 등의 기고문들을 통해서도 인정받은 그의 문재는 널리 불리는 우리 가곡 ‘비목’의 작사자가 그라는 점으로도 확인된다.

“1964년 학군사관(ROTC)으로 임관받아 66년 말까지 1년 반쯤 비무장지대 철조망 안 최전방 초소 지피(GP) 복무를 자청했다. 그때 도처에 죽음의 흔적들이 늘려 있던, 인민군들과도 일상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그곳에서 느낀 게 많았다. ‘비목’에는 그때 체험이 그대로 녹아 있다.” 60~70년대 방송을 하면서 그는 서양음악 일색을 탈피해 우리 가곡도 좀 하자고 용을 썼다. 출연 가수들이 우리 가곡 한 곡 끼워 부르는 것조차 매우 못마땅해 할 정도로 우리 음악을 우습게 알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가곡 중흥운동에 동참한 작곡가 장일남씨가 신곡 작업을 하면서 그에게 노랫말 한 번 써보라고 권해서 나온 게 ‘비목’이란다. “그때까지도 내 또래 20대 군인들도 부지기수로 해골로 발굴됐다. 그들도 꿈이 있었고 애인도 친구도 부모 처자도 있었을 텐데. 전쟁이 도대체 뭐냐,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70년대 중반부터 ‘비목’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가사나 곡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우리 민족 모두 한 다리만 건너면 그런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아마도 그걸 딱 찔러줘서 그랬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 인연으로 96년부터 지금껏 해마다 현충일이면 강원도에서 ‘진혼예술제’도 열어왔다.

그는 냉전이 무너진 91년께부터 20여 년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지의 고려인 위문공연, 순회공연을 이끌면서 현지 음악인들을 한국에 초청도 했다. “거기 가면 여기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고려인들의 조국애, 이곳 핏줄에 대한 동경을 느낄 수 있다. 가난하고 소외당한 그들의 한국 음악에 대한 갈망도 엄청나다.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서로 펑펑 울 정도로 그들의 가슴앓이는 깊다.” 그런 활동에 대한 답례로 그는 알마티 음악원과 타슈겐트 음악원에서 명예 박사학위도 받았다.

“20세기 중·후반 우리 전통음악은 기피 대상이었고,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거추장스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그때와는 놀랄 만큼 개선된 요즘의 한국사회에서도 음악이라는 보편적 용어는 서양음악을 지칭하는 데 쓰이고, 한국음악은 따로 ‘국악’이라 통칭한다. 서로 같은 지평으로 융합되지 않은 우열구도의 잔재다.”

‘한국음악, 한국인의 마음’을 보면, 서양음악과 한국음악을 우열구도로 바라보는 시선이나 사고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단조로울 수도 있는 장단에 맞춰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판소리 열창에 왜 서양인들이 기립박수로 열광하는지, 왜 우리가 버린 긴 호흡·느린 템포·단아한 식물성 음색·빈 여백의 한국적 미학을 오히려 높이 평가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시인 신경림과 평론가 유종호가 충주고 선배이자 같은 예술원 회원이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충주고 후배다. 74년 서울을 떠나 경기도 덕소에서 44년째 살고 있다. 오는 26일 저녁 그는 서울 대치동 한국문화의 집에서 열리는 토크쇼 ‘담담풍류’에 나가 살아온 궤적을 돌아보고 얘기를 나눈다. 성우 김종성, 춤꾼 이애주 교수, 기타리스트 김광석 등도 함께 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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