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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만물상] 공포의 '선거 막말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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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3일 충남 서산에서 '문팬' 창립총회가 열렸다. 그전까지 네다섯 개로 나뉘어 있던 문재인 민주당 후보 온라인 팬클럽이 이날 통합 출범을 했다. 정서적으로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종했던 '노사모'를 계승한 정치 팬클럽이다. 300여명 운영진이 참여한 행사에서 문 후보는 '선플(착한 댓글) 달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요즘 SNS가 너무 살벌하다. 문팬 가족부터 선플 달기로 분위기를 바꿔 나가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8000명으로 시작한 문팬 회원은 최근 1만7000명까지 불었다. 얼마 전 '문재인 펀드'가 1시간 만에 329억원을 돌파했다. 문팬들 힘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선 이들이 다른 사람을 향한 증오 공격을 쏟아내는 주력 부대일 가능성이 있다. 지난주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이 공개됐을 때 12시간 만에 1만4000개의 댓글이 달렸다. 일부는 송 전 장관 블로그로 쫓아가 악성 댓글을 남겼다. '폭로하면 한자리 준다고 하더냐?' '곱게 늙어라' '×자식'… 자극적인 막말들이 많았다.

▶며칠 전엔 가수 전인권씨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칭찬했다가 비슷하게 당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TV 토론에서 문 후보를 공격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안희정 충남지사 측은 경선 과정에서 문 후보를 비판했다가 문자 폭탄을 받았다. 안 지사는 "사람을 질리게 한다"고 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지난달 "문 후보 지지층의 댓글 공격은 '십알단'과 유사하다"고 했다. '십알단'은 '십자군 알바단'의 줄임말이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댓글을 퍼 나른 '댓글 부대'를 민주당에서 비하하며 일컬었던 말이다. 박 의원은 이들이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판다고 했다. 그러자 문 후보 지지자 한 명이 단체 대화창에 이런 글을 남겼다. '박영선은 당에서 기어나가라고 문자 좀 하세요.'

▶이번 대선엔 문팬 외에 국민희망(안철수 후보), 홍사모(홍준표 후보), 유심초(유승민 후보), 심크러쉬(심상정 후보) 등이 눈에 띈다. 하지만 극성스러움과 증오에서 문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노사모에 이은 문팬이 왜 유독 이런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 정치가 지향하는 협치(協治)를 위해선 바뀌어야 한다. 병리적 집단행동이 벌어지는 인터넷 공간을 '에코 체임버(echo chamber)라고 부른다. 엇비슷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면서 증폭된다는 뜻이다. '극성과 증오'가 아니라 품위 있는 비판이 메아리처럼 울리는 날은 언제 올까.

[안석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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