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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조용헌 살롱] [1088] 邊山의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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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이야기를 채취하는 채담가(採談家)에게 강단(講壇)과 강호(江湖)는 밥이 된다. 강단에서 채취한 이야기는 뼈대가 되고, 강호의 이야기는 피와 살이 된다. 강단만 있고 강호가 없으면 풍만한 육덕(肉德)이 없는 빈약한 체격이고, 강호만 있으면 골격이 약해서 쉽게 골절상을 입는다. 강단과 강호를 넘나들다가 깨달은 사실이 있다. 강단은 고단자와 저단자가 이미 드러나 있다. 내공의 랭킹이 저술과 논문으로 이미 공지되어 있어서 상대하기 편하다. 그러나 강호는 강과 호수로 둘러싸여 있어서 노출이 안 되어 있다. 누가 고수이고 누가 하수인지 알 수 없다. 고수를 몰라보고 함부로 여기다가 두들겨 맞는 수도 있다.

변산(邊山)을 유람하다가 뜻밖의 선수를 만났는데 탄목(呑 ) 김영철(55)이다. 입고 있는 옷은 부안(扶安)의 문화해설사였다. 부안과 변산, 줄포만 일대의 풍수와 인문지리, 음양오행, 역사, 불교와 도교, 인물, 유적지를 꿰고 있었다. 거의 도사급이었다. "변산은 요새지형입니다. 변산이 장광(長廣) 80리인데 그 지형이 구절양장(九折羊腸)과 같고 소의 천엽과 같이 복잡한 미로로 되어 있어요. 도망자가 여기에 들어오면 잡을 수가 없었던 지역입니다. 지금은 간척되어 변했지만 과거에는 변산반도 자체가 강과 바다로 둘러싸인 섬과 비슷한 지형이라 접근하기도 어려웠어요. 크고 작은 봉우리가 300여 개 되는데, 이 봉우리 사이로 작은 샛길이 그물코처럼 되어 있어서 그 방향과 장소를 종잡을 수가 없죠, 역사적으로 아웃사이더의 아지트였다고 보면 맞습니다."

변산 일대는 산과 들판, 바다가 어우러진 곳이다. 외부 조달 없이 충분히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갈퀴만 하나 들고 갯벌에 나가면 굶어 죽지 않았다. 거기에다 배를 타면 중국으로의 항해가 가능한 뱃길이 열려 있다. 요즘 필자가 관심 갖고 있는 분야는 조선조 반체제 승려들의 비밀결사인 당취(黨聚)인데, 이 당취의 본향이 변산 아니었나 싶다. 당취의 이념인 미륵신앙(彌勒信仰)의 성지가 바로 변산 의상봉 절벽 중간의 부사의방이었기 때문이다. 탄목의 안내로 변산의 미로를 돌아보면서 변산이 왜 '변두리이고 끝'이라는 의미의 변(邊)자를 썼는지 감이 잡혔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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