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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시가있는 월요일] 사춘기 시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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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보문3교 중간에 다리 저는 남자의 뻥튀기 기계
왜 거기서 나는 열셋의 나를 보았는가
뻥이요 뻥 마르도록 듣고 있었던가
날름거리는 엘피지 불꽃과 천일사 스피커의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던 그가 나를
붙들었을까 내가 그를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그때 나는 사랑인 줄도 몰랐고
조금 아득했고 조금 열려 있었는데
무엇인가 내 안에 고여들었는데
흰 거품처럼 흩어지고 말았는데

- 장석원 作 <이상한 슬픔> 중

사춘기 시절 사랑은 늘 예고 없이 왔다가 예고 없이 가곤 했다.

마음이 시리도록 아프면서도 그게 사랑인지 몰랐던 날도 있었다. 그 시절 사랑 앞에서는 어떤 전략도 어떤 대비도 의미가 없었다. 그저 기다리고 그리워할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랑은 마음대로 왔다가 마음대로 가버렸기 때문에.

중년이 된 시인은 뻥튀기 기계 앞에서 열세 살의 자기 자신을, 솜털 보송보송한 소년을 만난다.

거품처럼 흩어졌지만 그 시절의 사랑은 힘이 셌다. 그 사랑 때문에 생의 이면을 배웠고, 그리움을 알았고, 그 사랑을 통해 어른이 됐으므로.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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