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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산의 작가` 박고석 탄생 100주년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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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게도, 예술가의 아내가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경우가 많다. 이중섭, 유영국, 장욱진 뿐 아니라 현재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열리는 박고석(1917~2002)의 경우도 그렇다.

구순의 아내 김순자 여사는 아흔의 나이라는 숫자가 무색할 정도로 꼿꼿하고 지적이었다. 지난 21일 장수의 비결을 짓궂게 묻는 기자들의 공세에 그녀가 내놓은 답이 일품이었다. "마음고생". "젊을 적 마음고생이 너무 심해서 그런가 봅니다. 가난했고 남편의 낭만을 못 쫓아갔지요."

추석이나 설 등 명절 차례는 물론이고 제삿날에도 등산화를 신고 전국 산으로 달려갔던 남자, 박고석. 건축가 김수근의 누이로 이화여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인텔리 여성인 그녀는 평생을 억울해하고 화를 냈다고 했다. 3남1녀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도시락 장사, 무대의상 일도 마다하지 않고 생활 전선에 나섰다. 예술가의 아내란, 기쁠 때는 한없이 기쁘지만 또 바닥을 칠 때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복 많은 자리라는 것을 그녀의 삶이 보여주는 듯했다.

그녀가 남편의 탄생 100주년 전시를 보는 감상은 어떠할까.

"그 남자와 혼인을 해서 손해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전시장에 걸린 그림을 보면서 이제서야 화가 다 풀렸어요."

카랑카랑한 목소리다.

평양 출신으로 일본에서 유학한 박고석은 평생 산을 그렸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산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자연의 대명사인 산을 그린 작가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에도 '설악산 작가' 김종학, 산을 모티브로 해 색면 추상을 완성한 유영국 등 수없이 많다. 박고석의 '산'은 사실적인 표현보다 표현주의적인 화법이 강하다. 붓터치는 격정적이면서 두껍고 색은 화려하고 강렬하다. 미술평론가 서성록 안동대 교수는 "박고석은 우리 풍토와 체질을 바탕으로 산을 그렸다"고 평했으며 오광수 뮤지엄 '산' 관장은 "박고석만큼 산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산이 되는 경지는 없을 것 같다. 바라보는 대상으로서 산을 그린다기보다 산과 일체가 되는 경지, 인간과 자연이 분화되지 않고 일체화되는 경지에서 그의 산 그림의 본령을 엿볼 수 있다"고 비평했다.

이번 전시는 1950-60년대 표현주의적 화풍이 강했던 작품, 모던아트협회에 참여하며 시도한 추상작품을 시작으로 산에 미쳐 살았던 1970-80년대의 작품, 산에서 마을 풍경까지 시야를 넓혔던 1990년대 작품까지 주요 작품 40여점을 선보인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은 박고석은 50호를 넘는 크기의 대작을 제작하지는 않았다. 전시장에도 10호와 30호 사이의 작품들만 죽 걸렸다. 그가 생전 그렸던 유화 역시 300점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산에서 직접 그렸던 수채화와 드로잉은 3000점이나 된다.

과작(寡作)이라는 지적에 대해 부인은 "(남편이) 게을렀다"고 타박을 했지만 서성록 교수는 유화와 수채화의 구분을 굳이 두지 않은 것 아닐까 추측을 했다.

연배가 비슷하고, 같은 실향민이었던 이중섭의 '절친'으로도 유명하다. 이중섭이 세상을 떠나고 유골의 3분의 1이 1년간 박고석 집에 머물렀을 정도다. 김순자 여사는 당시 물감인 줄 알고 유골 가루를 입에 찍어 먹어봤다며, 이중섭 1주기에 그것이 유골이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는 일화도 털어놨다. 전시는 5월 23일까지.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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