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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홍석현 "진보·보수…국민합의 통해 하나의 대북정책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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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초청 강연

"교류·협력 중단하면 중·러가 나서

통일의 기회 때 우리 명분 약해져

이질성 줄이는 게 통일과정서 필요

핵 동결, 협상 참여 유도가 현실적

남남합의가 남북대합의 도출하고

공존·공영·평화통일로 이어질 것"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은 29일 “우리가 통일을 포기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북한을 상대로 한 접촉 노력을 전면적으로 포기할 순 없다”고 말했다. 홍 전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초청으로 한 ‘비핵화와 교류협력은 가능한가’라는 특강에서 “북한과의 교류와 접촉을 통해 남·북 간의 이질성을 줄이고 동질성을 키워나가는 것이 우리가 언젠가 만들어가야 할 통일의 과정에 있어 굉장히 필요한 일”이라며 이처럼 강조했다.

이번 특강은 통일평화연구원이 진행하는 ‘통일평화정책포럼-전환기 통일평화정책 대토론회 : 대한민국 청년들이 묻다’의 일환으로,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와 외교·안보 분야 석학들을 초청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전략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매주 시리즈 특강이 이어지고 있으며, 홍 전 회장에 앞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강연했다. 이날 강연엔 학생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중앙일보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29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 '비핵화와 교류협력은 병행 가능한가'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홍 전 회장이 패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 전 회장, 이난희 서울대 외교학과 석사과정, 김영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3학년, 김학재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김성룡 기자/ 2017.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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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교류 중단되면 중·러가 북한 생명줄…우리 영향력만 약해져”=홍 전 회장은 “남북 간의 교류가 전면 중단돼도 중국이 북한을 계속 지원하는 한은 큰 변화가 없다”며 “우리가 교류와 협력을 중단하면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생명줄 역할을 하며 북한을 부양하고, 우리의 영향력과 입지는 축소되는 역기능이 일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럴 경우 통일로 가는 길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도 말했다.

홍 전 회장은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을 이어가야 하는 또다른 근거로 북한의 국가 지위에 대한 한국 헌법과 국제법 상의 인식 차이를 들었다. 그는 “헌법상 북한은 수복되지 못한 우리 영토의 일부이지만, 국제법적으로 보면 한국과 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한 별개의 나라”라며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입각해 ‘일시적으로 분단된 우리 영토의 일부’라는 관점에서 북한과 교류·협력의 실적을 축적해나가야지, 북한을 남보듯 하다가 북한에서 인도적 재앙이 발생했을 때 개입하려 하면 중국과 러시아 등 국제사회가 ‘외국의 일에 개입하지 말라’고 막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북한에서 내부 분란이나 붕괴 상황이 발생해 통일의 기회가 올 경우 ‘우리가 그 간 동포라는 특수한 관점으로 교류·협력을 지속해왔다’는 노력의 근거가 없이는 갑자기 우리 땅이라고 들어갈 명분이 굉장히 약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소개했다.

◇“교류·협력의 전제조건은 치열한 비핵화 추구, 한미동맹 바탕으로 한 철저한 안보 태세”=동시에 대북 교류·협력을 지속하기 위한 전제조건도 강조했다. “교류·협력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비핵화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비핵화는 당연히 치열하게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다. 이어 “핵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김정은의 북한은 핵보유를 추진해온 김정일의 북한과는 전혀 다른 나라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로 대한민국과 일본 오키나와 주일미군 기지를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한미동맹의 강력한 지속이 굉장히 중요한 전제조건이며, 철저한 안보 태세란 것을 대전제로 깔고 (교류·협력 문제를)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에 대해 홍 전 회장은 “북한에 대해 선제타격 등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면 6·25전쟁 때보다 더 참혹한 전면전으로 갈 것이고, 그렇다고 방관을 할 수도 없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라도 핵 동결을 시키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남·북·미 3자회담과 북·미 회담 병행, 협상테이블서 북핵문제 풀어야”=홍 전 회장은 “그 간 북한은 핵 문제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만이 자신의 상대라며 우리를 무시해왔다. 하지만 아주 미세하지만 지난해부터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런 기회를 잘 살려나가면서 외교적 역량을 발휘한다면 남북과 미국을 포함한 3자회담, 또는 미국이 우리에게 통보를 해준다는 전제 하에서 북·미 간 양자회담을 병행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구체적 방법을 제시했다.

홍 전 회장은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한 독자적이고 일관된 대북정책 마련이 필수라고도 강조했다. “김대중 정부 이후 10년 간의 햇볕정책, 이명박 정부 이후 9년 간의 압박 정책은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도 못했고 북한의 붕괴도 이끌어내지 못했다”면서다. 홍 전 회장은 “진보와 보수, 여와 야가 국민적 담론 수준의 토론과 타협을 통해서 하나의 대북정책을 이끌어내는 것이 참으로 필요할 때”라며 “우리가 남남합의에 의한 하나의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때 정부 교체와 상관 없이 남북 간 대합의를 도출하고 공존과 공영, 더 나아가 평화통일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남남합의에 의한 일관된 대북정책 필요”=또 “남북 문제를 놓고 독자적 입장을 세워나가는 노력이 앞으로 지도자들에게 필요하다. 독자적 정책은 주변국, 특히 미국과 중국과의 협의를 통해서 리드해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멀미를 하지 않는 법”이라면서 “복잡한 북핵 문제는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서 주도적으로 노력한다는 자세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당당히 소통할 수 있는 리더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전 회장은 북한과의 교류·협력에 있어 유의해야 할 점도 명확히 했다. 홍 전 회장은 “현금 유입은 가능하면 자제해야 하고, 현금이 아니더라도 북한의 도발에 쓰일 수 있는 전략적 자원이 유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교류·협력의 과정이 북한 당국에 좌우되지 않도록 제도화, 국제화한 행동규범(code of conduct)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북한이 ‘남한은 동포니까, 돈이나 자원을 달라고 하면 그냥 주는구나’라는 심리를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 사회 변화 꾀할 수 있는지가 교류·협력의 중요한 기준”=홍 전 회장은 “여기서 준거가 되는 것은 이를 통해 북한 사회에 미치는 파급 효과의 정도”라며 “조심스럽지만, 북한에 경제적 편익이 돌아가는 사안이라도 접촉을 통해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큰 협력의 경우엔 이를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표적인 예가 개성공단”이라며 “그냥 재개하는 것은 안 되지만, 제도화된 행동규범을 북한이 따르도록 하고 남·북 당국 어느 한쪽에 의해 자의적으로 닫히지 않도록 이를 국제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이것도 북핵의 일시적 동결과 6자회담 협상 테이블로의 복귀 등을 전제로 할 수 있는 시기에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전 회장은 북한 문제에 대한 이분법적 접근도 경계했다. 그는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 연구하다 보면 원칙과 현실 중에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원칙과 현실을 대립적 개념으로만 본다면 해법은 찾기 어렵고 더 나쁜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비핵화와 교류·협력을 다루며 가장 잘못된 자세는 이분법적 사고에 함몰되는 것”이라며 “논리나 이념보다 현실과 사정에 맞게 판단해야 한다. 인도적 협력을 포함해서 필요한 만큼의 교류·협력을 하는 동시에 핵무기 개발에 자원이 직접 쓰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문제, 이분법적 접근 안 돼”=그러면서 홍 전 회장은 선불교의 파자소암(婆子燒庵) 일화를 예로 들었다. 어느 불심 깊은 한 노파가 조그만 암자를 하나 지어 젊은 선승을 20년 동안 모셨다. 노파는 선승을 시험하기 위해 딸에게 “스님의 무릎에 앉아 교태를 부려보라”고 했다. 무릎에 앉은 딸에게 선승은 “고목나무가 찬 바위에 기대고 선 것 같다. 불 꺼진 채처럼 따스한 기운이 전혀 없다”며 썩 물러가라고 내쳤다. 이 이야기를 들은 노파는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며 선승을 내쫓고 암자를 불태워버렸다. 홍 전 회장은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노파는 선승이 계율을 지키는 수행에는 성공했지만 자비심은 익히지 못했다고 보고, 이는 인정이 없고 메마른 ‘죽은 도’라고 여긴 것”이라며 “세상에는 하나의 원칙이나 계율로 재단해선 안 되는 복잡한 경우가 많이 있고 북한 문제도 이분법적으로만은 접근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정책 믹스를 추진하는 데 있어 투철한 자유민주주의, 인권주의, 인본주의라는 세 가지 원칙을 벗어나 편의적 타협을 해선 안 된다. 파자소암의 화두에서 노파는 선승이 계율에 얽매이지 말 것을 바란 것이지 파계를 바란 것은 아니다”라며 강연을 끝맺었다.

유지혜·허진 기자 wisepen@joongang.co.kr

유지혜 기자 yoo.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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