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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한의학의 진화…과학에 손내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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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의학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최근 한의학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논문 발표가 늘고 있다. 사진은 맥을 짚기 위한 로봇 연구 모습. [사진 제공 = 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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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여야 국회의원 11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한한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 화두는 한의학의 표준화·과학화·세계화였다.

이날 참석한 여야 국회의원들은 한의학 과학화의 첫걸음인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관련 규제를 비롯한 각종 불합리한 제도를 철폐해야 하는 데 뜻을 같이했다. 일부 의료단체는 한의학은 과학이 아니며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반대한다. 일부 한의학계에서 벌어진 잘못된 진단과 고가의 한약 처방 등도 한의학계의 신뢰를 깎아 먹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한의학연구원(한의학연)과 미국 하버드대 의대 공동 연구진이 지난 10일 국제학술지인 '브레인'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침을 맞은 손목터널증후군 환자들의 뇌에 변화가 있었으며 이것이 치료 효과로 이어졌다는 연구였다. 연구진은 침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치밀하게 대조군을 설정했다. 손목터널증후군 환자는 손목을 이루는 뼈와 인대로 이루어진 '손목터널'이 두꺼워지거나 좁아진 상태에서 이 압력이 '정중신경'을 압박한다.

연구진은 79명의 손목터널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56명에게는 진짜 침을, 23명에게는 가짜 침을 놨다. 8주간 16회의 침과 전기침 치료를 실시한 뒤 '기능적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이용해 뇌의 변화를 살폈다.

연구를 이끈 김형준 한의학연 임상연구부 선임연구원은 "손목터널증후군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검지와 중지를 자극했을 때 활성화하는 뇌의 '일차감각피질'의 거리가 줄어든다는 것이 과거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며 "줄어든 검지와 중지 사이 거리는 진짜 침 치료 후 평균 1.8㎜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가짜 침을 맞은 사람의 뇌에서는 유의미한 변화가 발견되지 않았다. 김 선임연구원은 "침이 임상적으로 진통 효과를 보인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환자들의 주관적 보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침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힘들었다"며 "이번 연구는 진짜 침만이 뇌에 변화를 유도한다는 사실을 fMRI와 뇌 확산텐서영상(DTI)을 이용해 처음으로 밝혀낸 연구"라고 설명했다.

이 논문 한 편으로 "한의학은 과학이다"고 말할 수 없다.

한의학이 과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의학의 기반이 되는 '음양오행' '기'와 같은 철학적 사상이다. 한의학을 과학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김 선임연구원은 "한의학에서 모든 현상을 '기'라는 용어 하나로 환원시켜 설명하지는 않는다"면서 "주로 침, 한약 치료의 효과나 기전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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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박사인 김재욱 한의학연 한의기반연구부장은 "최근에는 세포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전기적 자극이 '생체장'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되고 있다"며 "기의 현대화를 풀 수 있는 고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한의학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에는 부족한 설명이다.

질병 치료 시 과학적 근거와 함께 매뉴얼이 존재하는 서양의학과 달리 한의학에서는 침을 놓는 자리도 한의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어떤 한의사는 "손과 다리에만 침을 놔도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혈자리'라는 매뉴얼이 존재하지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하지만 침을 놓는 자리로 알려진 '경혈'에 대해 김 선임연구원은 "한의사는 수많은 경혈 중에서 손발에 침을 많이 놓는다"며 "경혈을 자극하는 것이 다른 부위를 자극하는 것보다 뇌가 더 활성화된다는 연구도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으로 길을 가면서 인터넷을 하는 21세기에 여전히 한의학을 찾는 사람은 많다. 수천 년간 쌓여 온 경험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의학으로 치료 효과를 봤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다수 존재하는 만큼 아직까지 이 믿음이 한의학에 대한 신뢰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사이비 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류 과학자들을 비판하며 "우리의 이론이 무시 당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뿐 주류 과학자들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이론을 설득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의학계는 과학의 연결고리를 피하지는 않는다.

한의학을 과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기껏해야 1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한의학연이 최근 5년간 SCI급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수는 2012년 68건에서 2016년 77건으로 총 339건에 달한다. 기타 논문까지 합치면 1571건이다. 한의학이 아직 과학의 영역으로 온전히 들어오지 못했지만 과학으로 입증하는 논문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한의학에 남은 숙제는 철저하게 과학으로 한의학적 메커니즘을 설명해 나가는 일"이라며 "양방과 한방을 함께 사용했을 때 치료 효과가 좋다는 연구가 많은 만큼 풍부한 역사와 경험이 존재하는 한의학이 그 근거를 조금씩 찾아가기 위해서는 애정 어린 협조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전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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