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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朝鮮칼럼 The Column] 통합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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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이번 대선은 역대 가장 불완전한 선거 될 판

보수·진보 균형 깨져 民意 왜곡, 중상모략과 포퓰리즘도 난무해

패권적 권위주의 탄생 막으려면 투표로 균형과 통합 요구해야

조선일보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민주적으로 탄생한 박근혜 정권의 국정 농단을 심판한 탄핵 결정. 헌법 틀 속에서 권력의 독주를 제어하는 '견제와 균형' 원리가 작동한 것처럼 보인다. 탄핵 심판을 보며 우리의 입헌주의에 자부심을 느끼는 국민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이런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여론 분위기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국민적 분위기가 어딘지 '시무룩하고 근심스러운' 모습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견제와 균형 기능이 쉽지 않음을 경험해 온 탓인지 모른다. 그래서 통치 시스템 자체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을 통해 우리가 새삼스레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대통령은 상식적 인간'이라는 전제가 있지 않으면 입헌주의는 기능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국정 농단에 대한 국민의 충격을 보라. 국정 농단의 위법성보다는 사실 은폐와 거짓 해명으로 일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언행에 더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 아닌가.

헌재 판결도 다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도 응하지 않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을 질타했다. 그뿐만 아니라 최순실 국정 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기며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비난하는 비상식적 모습에서 헌법 수호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포스트 탄핵 정국은 제대로 된 입헌주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요즘 대선 정국에서 무언가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포스트'란 용어의 의미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고 있다. 우리 정치가 '맹목적 복종'을 강요하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후유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최순실 같은 비선 실세가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동안 의회는 무력해지고 정치는 왜소해져 버리지 않았던가. 이런 정치에서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할 정치가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정치 평론가들은 한결같이 우려하고 있다. 이번 대선이 민주화 이후 역대 대선 중 가장 불완전한 민주적 선거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조선일보

26일 대전MBC에서 열린 2017년 대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자 합동 토론회에 참석한 후보자들이 토론 시작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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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려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보수와 진보의 균형 파괴로 대선에서 민의 왜곡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대선의 요체는 어디까지나 서로 다른 비전과 정책을 들고 경쟁하는 후보들의 존재에 있다. 유권자들이 이런 후보들을 두고 선택을 고민할 때 제대로 된 민주적 대선이 가능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보의 독주로 보수는 자신들의 의사를 대변해 줄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의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 자질에서 파생하는 우려다. 지금 대선 정국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화두는 과연 대통령감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민은 정치가란 권력을 추구하면서 항상 '자기 것'보다는 '큰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 대선 주자들의 얼굴은 뻔뻔스럽고 입은 거칠며 마음은 협량해 보인다. 소셜미디어에서 근거도 없이 중상모략하며 공격적 말로 정적을 무너뜨리는 상식 이하 수법에 매달리는 모습 아닌가. 이러다 보니 한편에서는 유권자들의 원색적 감정을 자극하는 색깔 논쟁을, 다른 한편에서는 대중 입맛을 따라가는 안보와 경제 포퓰리즘을 대선판에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언론은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 대선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보수 정치가 공백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보수 정치의 몰락은 2007년 진보 정치의 몰락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 정치적 결과는 훨씬 심각해 보인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보수 세력은 제1 야당 역할은 물론 5년 후에도 대안적 집권 세력으로 다시 살아나기 어려워 보인다. 문제는 보수의 공백 속에 진보의 독주로 또 다른 패권적 권위주의가 탄생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진보와 보수의 균형이 실종한 가운데 통합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가를 볼 수 없는 대선판이다. 세계적 현상의 한국판 같기도 하다. 분열을 자극하며 민주적 선거의 강물을 혼탁하게 하는 방법도 비슷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유권자들에게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상식적으로 투표해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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