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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건강한 가족] "난청 환자 '소리 스위치' 인공와우이식술로 켜 치매 발병 위험 낮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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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소리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 귀의 가장 안쪽에 있는 와우(달팽이관)다. 와우는 공기의 진동을 전기신호로 바꿔 청신경과 뇌로 전달한다. 스위치가 망가지면 조명을 켤 수 없듯 와우가 손상되면 뇌가 소리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 문제는 한번 손상된 와우는 스스로 낫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령화시대, ‘인공와우’ 기술이 주목 받는 이유다. 지난 17일 한림대 동탄성심병원에서는 ‘인공와우 이식과 관련 기술’을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스웨덴 웁살라대 헬게 라스크 안데르센 교수, 미 컬럼비아대 로런스 러스틱 교수, 한림대 성심병원 김형종 교수가 함께 인공와우이식술의 성과와 발전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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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종 교수 ● 서울대 의대 박사 ● 한림대 이비인후과 교수 ● 전 대한소아이비인후과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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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인공와우이식술이란.

A : 김형종 교수(이하 김)=일반인의 청력을 100%라 하면 75% 정도 상실된 상태를 고도 난청이라고 한다. 선천적 이상이나 노화·사고로 와우가 망가진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보청기로 소리를 증폭시켜도 청신경이 자극되지 않아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때 선택하는 치료법이 인공와우이식술이다. 인공와우는 크게 내부와 외부 장치로 나뉜다. 외부 장치가 소리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고, 내부 장치가 이를 전기신호로 전환해 와우에 연결된 전극으로 보낸다. 이를 통해 청신경을 직접 자극하면 뇌에서 소리를 인식하게 된다.

로런스 러스틱 교수(이하 러스틱)=인공와우의 개념은 약 200년 전 처음 제시됐다. 난청이었던 이탈리아의 한 과학자가 자신의 귀에 전극을 삽입해 물 끓는 소리를 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초기에는 과학자들조차 전기자극으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데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와우와 청신경, 뇌의 연결고리가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했고, 1980년대 미 식품의약국(FDA)이 성인과 소아를 대상으로 한 인공와우이식술을 승인하면서 관련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다.


Q : 인공와우이식술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A : 헬게 라스크 안데르센 교수(이하 안데르센)=과거 인공와우이식술은 양쪽 귀가 들리지 않는 경우 주로 시행했다. 전극을 삽입하는 과정에서 뇌 손상이나 잔존 청력 상실 등 부작용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세 전극이 개발되고, 수술 중 손상을 최소화하는 수술법과 약물(스테로이드) 투여 기술의 발전으로 이런 위험이 크게 줄었다. 지금은 청력이 남아 있을 때, 한쪽 귀만 들리지 않아도 더욱 완벽한 소리를 듣기 위해 인공와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러스틱=고령층은 인공와우이식술의 주요 대상자다. 이들에게 청력은 치매와도 깊은 연관성이 있다. 청력을 잃었을 때 인지장애와 치매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청력을 회복했을 때 치매 예방 효과에 대한 연구가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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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런스 러스틱 교수 ● 미 컬럼비아대 이비인후과-두경부외과 교수 ● 미 이비인후과연구학회장 ● 미 신경이과학회장




Q : 현재 인공와우이식술의 과제는 무엇인가.

A : 러스틱=청신경은 3만5000여 개에 달한다. 이를 18~24개 전극으로 한꺼번에 자극하는 것이 현재의 인공와우 기술 수준이다. 마치 권투장갑을 끼고 피아노를 치는 것과 비슷하다. 청신경이 한꺼번에 작동하기 때문에 소리를 섬세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소리를 감별하는 것은 청신경을 자극하는 전극 수가 많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기자극을 줄일 때 청력이 더 많이 회복되는 경우도 있다. 전기자극과 청신경의 상호작용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김=뇌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 뇌가 어떻게 소리를 이해하고 음악을 감상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많다. 어떤 청신경이 뇌에 자극을 전달하는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뇌에 대한 이해가 커질수록 인공와우이식술의 성공률도 높아질 것이다.


Q : 난청 환자가 사라지는 날이 올까.

A : 러스틱=현재로선 확실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인공와우는 청력을 100% 되살리진 못한다. 청신경과 와우의 기능이 어느 정도 남아 있을 때만 시행할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전자 치료다. 아토1(Atoh1)이란 유전자는 와우 내부에 있는 유모세포 분화를 촉진시킨다. 유모세포는 공기 진동을 감지해 이를 청신경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포유류는 이 세포가 재생되지 않아 청력이 회복되지 않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동물실험을 통해 아토1이 유모세포 증식과 청력 회복을 돕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주요 연구 주제로 떠올랐다. 우리 대학도 고도 난청인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유전자 치료 임상시험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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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 국제학술 심포지엄은?

한림대의료원은 2004년부터 컬럼비아대·코넬대·뉴욕프레스비테리안 병원과 공동으로 매년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모여 유전자 치료, 로봇수술, 퇴행성 신경질환 등 의료 분야의 최신 현안을 폭넓게 다뤄 왔다.

지난해 10월에는 생체물질을 활용해 손상된 조직과 장기를 치료하는 조직공학과 재생의학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올해는 ‘인공와우 이식과 관련 기술’을 주제로 선천성·후천성 난청과 난치성 이명의 치료에서 인공와우이식술의 성과와 전망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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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게 라스크 안데르센 교수 ● 스웨덴 웁살라대 의대 박사 ● 스웨덴 웁살라대 이비인후과 교수 ● 국제 이비인후과 저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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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인공와우 기술 발전을 위해 강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A : 안데르센=인공와우이식술은 환자에게 ‘제2의 삶’을 선물한다. 귀와 관련된 수술 중 환자 만족도가 가장 높은 수술이다. 하지만 복지국가라고 평가받는 스웨덴에서조차 고도 난청 환자의 20%만 수술을 받을 정도로 인지도가 낮다. 한국은 이보다 더 적을 것이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인공와우가 필요한 환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인공와우에 대한 환자와 의료진의 인식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동의한다. 인공와우이식술은 청력이 상실된 기간이 짧을수록 수술 결과가 좋다. 특히 선천성 고도 난청 환자는 이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부모가 적극적으로 치료와 재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인공와우 수술 실력과 경험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기초연구와 장비 개발은 미국·호주 등 해외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이는 치료비를 높이는 요인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련 기술 개발과 지원에 나서 주기 바란다.


글=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송경빈

박정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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