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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마을기업] '방앗간의 진화'…생들기름 4만5천병 팔아 9억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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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에버그린에버블루'…지역 농산물 살리고 일자리도 창출

"올리브오일 대체"…6차 산업화·세계 시장에 의욕의 '도전장'

(양평=연합뉴스) 김경태 기자 = 예상은 빗나간다. 공장 문을 열었을 때 시골 방앗간이나 동네 기름집에서 풍기던 특유의 들기름 냄새가 진동할 것이라는 상상은 무지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이었다.

생들기름을 만드는 마을기업 '에버그린에버블루협동조합' 문을 열고 들어서니 구수한 향기가 은은하게 배어 나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극적인 들기름 냄새는 들깨를 고온에서 들들 볶을 때 나는 냄새입니다. 생들기름에서는 들깨 자체의 자연스러운 향만 나옵니다. 볶지 않고 기름이 나올 정도만 가열해서 착유한 것을 보통 생들기름이라고 합니다. 공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오메가3를 보존하고자 저온에서 짜낸 것을 통틀어 생들기름이라고 부릅니다"

에버그린에버블루 이인향(55) 대표의 설명은 생들기름 질감처럼 막힘이 없었다.

남한강이 바라보이는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운심리 마을 입구에 있는 기름공장은 아담하다 못해 비좁아 보였다.

지난해 11월 행정자치부 주관 마을기업 경진대회에서 전국 1천320개 마을기업 중 최우수상을 받은 3곳 중 한 곳이다.

직원 5명으로 지난해 들깨 65t을 수매해 만든 생들기름 4만5천병(250㎖)으로 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시골 작은 공장이 2년 만에 일군 작은 기적이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국에서 벤치마킹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공장을 찾아간 지난 21일에도 강원도 동해시 농업기술센터 공무원과 농민 부부 2명이 창업 준비 견학차 이곳을 찾아 한마디라도 도움되는 창업 정보를 얻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지난 17일 경기도 따복공동체지원센터에서 120명이 단체로 방문했을 때는 사무실이 비좁아 인근 주민자치센터 강당을 빌려야 했다.

연합뉴스

'들깨 그대로'
(양평=연합뉴스) 김경태 기자 = 경기도 양평군 마을기업 '에버그린에버블루협동조합' 이인향 대표(왼쪽)와 지선경 총무가 들기름(들깨그대로)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2017.3.26



◇ 왜 들깨인가…"누구나 즐겨 먹는 전통 건강식품"

다른 작목도 많은데, 왜 들깨를 창업 종목으로 선택했는지를 묻자 돌아온 답은 기후 여건과 시장 동향이었다.

일교차가 크고 서늘한 양평 기후가 들깨 성장환경에 적당하다.

들기름은 조선시대 '농사직설'에도 나올 정도로 누구나 즐겨 먹던 전통식품이고 최근 들어 건강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대표는 "선조들이 먹던 들기름이 얼마나 세계적인 식품인지 확신했기 때문에 생들기름 단품으로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 보고 조합원분들께 들깨를 많이 심으라고 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역 자원을 활용해 수익도 내고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 공동체를 실현해보자는 마을기업 정신에도 충실했다.

2014년 강하면 들깨작목반 11명으로 출발해 지금은 조합원이 42명으로 불어났다.

조합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볶지 않고 저온 착유한 생들기름(제품명 '들깨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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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은 들기름보다 오메가3 함유량이 많고 발암물질 벤조피렌 함유량이 적다고 한다.

고열 공정에서 색소, 방향, 맛을 진하게 만드는 검(GUM) 등이 흘러나와 색깔이 진해지고 고유의 맛도 변형되는 열처리 공법의 대안이다.

생들기름 자랑이 이어졌다.

"올리브유, 버터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고 소고기처럼 오메가6가 높은 음식과 함께 섭취해 오메가3와 균형을 맞춥니다. 오일풀링도 하는데, 아직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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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시행착오…"결국 사람이 하는 일"

마을 이장의 권유로 조합 설립을 시작했던 이 대표는 창업 과정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공장을 차리기 전에 방앗간에 알바생으로 취직해서 배웠어요. 공장을 차리고는 착유기를 납품하신 사장님께 또 배웠고요. 그 후에는 먼저 배운 분들이 조합원들을 가르쳤습니다"

들깨는 온도와 습도에 무척 민감하다.

측정장비가 있지만, 계절마다 달라지는 조건 때문에 100% 의존할 수 없어 아직도 감에 일부 의존한다고 한다.

시행착오만 얘기해도 밤을 새울 정도라고 지선경(36) 총무가 거들었다.

"초기엔 착유기가 꽥꽥거리며 멈추기도 하고 죽처럼 나오는가 하면 천장으로 한꺼번에 뿜어져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름으로 뒤집어쓰기도 했어요. 들기름이 머릿결에 좋다는 것을 그때 알았죠. 농담이지만 임상시험을 제대로 한 셈이죠"

초창기 수작업으로 시작한 공정은 규모가 작아도 착유, 정제, 충진, 캡핑, 라벨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자동화했고 지난해 10월에는 저장, 전처리시설, 완제품 포장까지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을 받았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갖춘 설비는 장치 특허까지 낼 정도의 사업 비법이 됐다.

조합원들 사이에 소소한 갈등이 있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결과물로 얘기하자"고 서로 다독였다고 한다.

일정한 품질의 원료를 확보하는 것도 기본이었다.

들깨를 사들일 때 양평산임을 확인하는 각서를 받고 의심이 되면 동네 주민들을 통해 '뒷조사'도 했다.

소량 구매라도 마다치 않지만 덜 손질해서 가지고 오면 매정해도 돌려보냈다.

발로 뛰어 농협, 생협, 로컬푸드 매장과 4대 오픈마켓, 홈쇼핑 등 온·오프라인 판매망도 확보했다.

지난해 1월 공영홈쇼핑에 런칭한 이후 10회 중 5회 매진을 기록하며 생들기름 대박 행진을 주도했다.

소비자 반응은 어떨까.

"볶은 들기름처럼 고소하지 않다고 하는 분들이 있지만, 건강을 챙기는 젊은 주부들이 많이 찾아요. 무릎관절통, 주부습진 때문에 고생하시다가 좋아졌다는 분들도 있구요"

홈쇼핑 물량이 몰려 포장과 발송 작업이 힘겨우면 나이 지긋한 조합원들이 집안일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고 한다. 매출액의 20%가 인건비로 지급해 일자리 창출에도 한몫했다.

매출액 중 43%는 원료인 들깨 구매에 들어가는데, 종전 관행보다 20% 높은 가격에 사들여 생산 농가에도 이득이다.

최근엔 출자금의 5%를 조합원에게 배당했다. 3%를 넘지 않는 농축협 배당률과 대조적이다.

임광준(48) 강상면작목반 회장은 "자식처럼 키운 농작물을 친환경 식품으로 만들어 판매한 수익금으로 세금도 내고 배당도 받게 돼 자부심이 남다르다"며 "매연 대신 고소한 냄새가 나오고 깻묵 폐기물은 재활용하는 친환경 산업이라서 지역사회에서도 환영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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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차 산업화·세계시장 '도전장'

생들기름 판매량이 늘면서 양평지역 들깨 재배면적도 늘었다.

지난해 35㏊였는데, 올해 50㏊로 예상했다. 특히 무농약, 유기농 농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양평에서는 감자나 옥수수 다음에 심거나 들깨 다음에 마늘이나 배추를 심을 수 있는 이모작 작물이기도 하다.

에버그린에버블루는 이제 시작이다.

2018년 카페테리아와 식물농장을 갖춘 공장으로 이전해 체험관광이 가능한 6차 산업화(1×2×3차 산업)를 꿈꾸고 있다.

무공해·유기농 프리미엄 라인을 설치해 하이엔드마켓을 공략하고 기업특판 사업에 진출해 B2B 판매망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들깨 재배 생산지 확대, 들깨 산업생태계 조성, 한국 들기름 세계화라는 비전도 제시했다.

세계시장을 장악한 올리브오일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서울에 살다가 귀촌해 마을기업을 일군 이인향 대표는 "마을기업은 태생적으로 자본, 정보, 노동력이 부족하고 아마추어적인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어서 일정한 규모의 경제와 지속 가능성에 이를 때까지 초기 자본을 투자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잠재력 있는 마을기업을 선별해 적절한 자금을 점진적으로 투입하는 정책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콩으로 두부, 두유, 견과를 가공 판매하는 경기도 오산 '잔다리마을공동체'의 성공 키워드도 '정직한 먹거리'다.

홍진이(43) 잔다리마을공동체 대표는 "콩으로 신선한 제품을 만들면서 마을기업끼리 힘을 합쳐 대기업과 대응할 힘을 키우고 싶다"면서 "올해 목표는 마을기업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표준모델을 공급하는 것인데, 관련 교육과 기술 이전 등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kt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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