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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50년만에 이름 바꾼 전경련 "경제외교·회원사 친목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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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고강도 혁신안

매일경제

대국민 사과하는 허창수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임원진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상혁 전무, 권태신 상근부회장, 허 회장, 배상근 전무.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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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경제인연합회가 24일 내놓은 혁신안은 '바꿀 수 있는 것은 다 바꾸겠다'는 것이다. 50년 만에 이름도 바꿨고 문제가 있던 조직은 없애 과거와 결별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해체 요구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미온적인 대응책으로는 비판 여론만 더 커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4대 그룹 탈퇴로 인한 예산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고민과 경제단체로서의 위상 유지를 위한 구상 등이 혁신안 틀을 짜는 데 배경이 됐다. 그러나 전경련의 혁신안이 4대 그룹 등의 회원 복귀나 당장 운영자금도 부족한 처지를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날 밝힌 혁신안에는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을 대부분 수용했다.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이름을 바꿨다. 전경련은 1961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등 기업인 13명이 주도해 한국경제협의회로 출발한 뒤 그해 한국경제인협회로 개명해 1968년 현재 이름을 갖게 됐다. 전경련은 이번 한국기업연합회로의 개명이 "경제인(회장) 중심의 협의체에서 '기업'이 중심이 되는 경제단체로 거듭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경유착의 통로'라는 비난을 줄이기 위해 오해 소지가 있는 조직들을 도려내고 규모를 최소화했다. 기존 7개 본부 중에서 기획·경제·산업·사회본부를 없애 1본부 2실로 바꿨다. 기획·사회본부는 '정경유착'이란 비난을 받아온 기업들의 기부를 통한 재단 설립이나 어버이연합 지원 등을 담당해왔다. 연구 기능은 모두 한국경제연구원으로 넘겼다. 남는 기능이 민간경제외교(국제협력실), 회원사 소통(사업지원실), 홍보(커뮤니케이션본부) 등이다. 회원사 소통과 홍보가 경제단체로서 최소 기능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민간외교 기능만 남는 셈이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정부 차원 외교와는 다른 민간 차원의 경제외교에 대한 회원사들의 요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쪼그라든 규모로 인한 위상 축소는 한경연의 연구 기능 강화를 통해 만회한다는 것이 전경련의 복안이다. 한경연의 연구주제를 기존 '기업 관련'에서 저출산·4차 산업혁명 등을 포함한 어젠더로 확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권 부회장은 "예산 축소로 인해 규모는 줄겠지만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재계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기능을 못했던 회장단 회의도 '경영이사회'로 바꿔 회원사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길도 만들고 재벌단체란 이미지도 없애겠다는 계획이다. 회원사에 갑질을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사무국의 전횡 방지에 대해서는 운영 관련 정보 공개 강화와 사무국 기능 제한을 해법으로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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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개편과 함께 인적 쇄신도 전격 실시됐다. 배상근 전무가 총괄 전무 겸 커뮤니케이션본부장을, 엄치성 상무가 국제협력실장, 이상윤 상무가 사업지원실장에 임명됐다. 유환익 상무는 한경연으로 파견됐다. 이승철 전 상근부회장과 함께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업무를 맡았던 임상혁 전무, 한선옥 상무, 이용우 상무 사표는 수리됐다. 회장·부회장을 제외한 임원 수는 8명(한경연 포함)에서 5명으로 줄었다.

문제로 지적됐던 부분에 대해서 대안을 마련했지만 전경련에는 과제가 산적해 있다. 당장 돈이 없다. 전경련은 "조직과 예산 40%를 축소하겠다"고 밝혔으나 4대 그룹 이탈로 구멍난 예산 70%를 채우기엔 역부족이다. 전경련 건물에 입주한 LG CNS 등과 임대 계약이 올해 만료되면서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대출금 상환에도 비상이 걸렸다.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해 회장직 연임을 결정한 허창수 회장의 후임을 찾는 것도 과제다. 재계에서는 19대 대선이 끝난 후에 후임 회장 등을 찾는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추진력을 지닌 차기 회장이 취임한 후 진짜 혁신이 시작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탈퇴한 주요 그룹들을 다시 회원사로 끌어들이는 것 역시 전경련 앞에 놓인 숙제다.

전경련의 혁신안에 대한 엇갈린 평가는 전경련 앞에 놓인 불투명한 미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안재욱 경희대 교수는 "(혁신안은) 사회적 비판 여론이 높아진 상황 속에서 내놓은 최선의 선택"이라며 "앞으로 새로 출범하는 한국기업연합회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비해 해체를 주장해온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얼굴에 좀 분칠한 걸로 환골탈태했다고 말하는 꼴"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본부를 남긴 것은 대관 업무를 통한 로비 기능 유지용이며,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한 졸속 혁신안"이라고 했다.

이번 혁신안은 전경련 혁신위원회가 주도했다. 혁신위에는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이 참여했다. 외부에선 윤증현·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김기영 광운대 총장이 힘을 보탰다.

[정욱 기자 /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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