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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중앙시평] 박근혜 이후 우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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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단테와 베버의 통찰이

들어맞는 시대착오의 현실

내면에선 저 혼군의 절대무지를

차라리 용서해야 할는지 모른다

우리 시대 곪아터진 내면상처를

다음 세대까지 물려줄 수는 없다

중앙일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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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어쩌다 ‘건국 이래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맞게 되었는가? 또 그를 뽑았던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과 민주주의 역사에도 이토록 크나큰 생채기를 남겼는가?

아버지는 ‘재임 중 피살된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된 데 이어 자녀는 ‘재임 중 탄핵당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으니 2대에 걸친 비극(과 국민승리)의 연쇄고리에 말을 잃는다. 어머니마저 ‘피살된 최초 영부인’이니 더 무엇을 말하겠는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육신을 장례 지낸 그 길을 따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자신의 정치적 장례 길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인간 운명과 공사(公私) 인연의 만상을 떠올리게 한다.

재임 시의 반복된 헌법 위반과 국정 농단이 탄핵의 근본 요인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기회가 수차 있었다. 그 때문에 애국시민들의 분노는 더 컸다. 진실의 폭로와 광장의 폭발 이후 검찰조사·특검조사와 헌재심판에 임해 성실하게 진술했으면, 동시에 남은 임기만이라도 국법을 준수하며 국정을 집행하겠다고 반성하고 다짐했으면 판관들과 국민들은 최소 관용을 베풀었을지 모른다.

재임 시에도 갱생의 기회는 계속 주어졌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수사부터 청와대 문건 유출, 민정수석 비위 감찰 문제까지 국정 정상화의 중대 계기들에서 그는 위법자들을 징치하는 대신 외려 바로잡으려는 검찰총장·공직기강비서관·특별감찰관을 모두 내쫓았다. 세월호 사후 대처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혼군의 몽매와 오기는 끝이 없었다.(그러나 의회의 탄핵소추안은 매우 온건했다. 소추되지 않은 다른 중대 위헌·위법행위도 후대를 위해 깊이 탐구돼야 한다.)

근본은 부친 명예회복이라는 ‘사적 욕망’을 위해 ‘공적 대통령’을 도전한 오판 자체에 있었다(졸고 중앙시평 ‘박정희의 희극, 박근혜의 비극’. 2012년 10월 18일). 당시에 ‘이렇게까지 하면서 집권을 해야 하나’라며 필자가 전한 박근혜의 마음은 훗날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라는 직접 고백으로 바뀌고 말았다. 민주 시대에 아버지의 통치방식을 따라가다 당한 자녀의 능욕으로 인해 부친마저 부관참시를 당하고 말았으니 공적 효도는커녕 인간적 불효도 이런 불효막급이 없다. 박정희는 영원히 자녀의 국정파탄·탄핵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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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혼군들의 본질인 인지불능·대화불능·소통불능 상태를 문명 시대에 다시 보아야 하는 불행한 상황에서 근대의 여명을 열었던 단테의 깊은 통찰을 떠올린다. 단테는 ‘고귀한 사람들’과 ‘훌륭한 가문’의 자녀들도 ‘고귀한 사람’으로 불리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니며’ ‘고귀는커녕 천박하다’ ‘천박할 뿐만 아니라 가장 천박하다’고 언명한다. 자기 성에 갇혀 세상인간들과의 대화를 위한 이성을 사용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이성을 사용할 줄 모르는 그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죽은 것’이며, ‘죽은 채 땅을 걷고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어떻게 죽었는데 걸어다니는가?” 묻는 그는 “사람으로서는 죽었고 동물로서는 살아 있다”고 답한다.

혼군과 국정 농단 주범들의 은폐되었던 마음들·대화들·행태들·수법들은 불법 이전에 천박하기 그지없었다. 반대집회와 재판 과정에서 횡행한 국회의원들과 법률가들의 계속되는 상식 이하의 억지·저질말투·상스러움 역시 동색이다. 전직 대통령이 사적 몽매가 아닌 공적 이성을 갖고 국민들과 대화를 했다면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공화와 공공성이 이토록 참담한 파탄 상태에 직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금번 광장의 폭발이 시민들이 주도한 공적 이성의 회복이요 대화의 복원인 이유다. 박근혜 이후를 이끌 개혁세력은 복원된 이성에 바탕해 절대적으로 품격과 품위와 노겸(勞謙)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빌려올 통찰이 아직 하나 더 있다. 막스 베버에서 비롯된 가산주의 통치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마치 박근혜의 통치를 본 뒤의 분석 같아 놀랍다. 사적 관계에 바탕한 측근 인원 충원, 뇌물과 복종과 거래에 바탕한 공직과 예산과 정책의 채택, 법과 제도 밖의 위계질서와 상하관계, 유사 종교적 주종관계, 부하들의 면종복배에 따른 지도자의 게으름과 나태, 불확실하고 불명확한 보고체계, 중요 사항의 구두지시, 공공과 사사 영역의 경계 붕괴, 특정인의 광범한 재량권에 따른 시스템과 업무 영역의 혼선, 주관적 판단과 비선 절차에 따른 자의적 정책결정, 편파적·특혜적 규칙 적용과 시혜….

단테와 베버의 시대가 대체 언제인가? 그들의 오래전 통찰이 들어맞는 시대착오의 현실에서, 우리는 밝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혼군의 저 절대무지를 법적 처벌과는 별개로 내면에서는 차라리 용서해야 할는지 모른다. 생기와 활력을 갖고 살아가야 할 다음 세대에까지 곪아터진 우리 시대의 썩은 내면상처를 물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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