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봄’ 처음 듣고 눈물 펑펑
“내년 대학 진학 제대로 배우고파”
세 차례 시도 끝에 탈북에 성공한 김명씨가 오카리나를 들고 환히 웃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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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를 울린 건 생전 처음 본 악기였다.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에 찾아온 강사가 오카리나를 꺼내 연주한 순간 김씨는 자신도 모르게 목놓아 울었다. 오카리나로 연주된 곡은 ‘고향의 봄’이었다. “국경을 건널 때의 공포, 북한에 잡혀와 당했던 온갖 고문, 12살에 생이별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죠. 연주 내내 펑펑 울었어요.” 그렇게 그는 오카리나와 인연을 맺었다.
김씨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5세 때 처음 가족들과 국경을 넘었다. 3개월 만에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다시 붙잡혀갔다. 어머니·이모와 함께 중국 선양(瀋陽)에서 7년가량을 숨어살았다. 어느 날 장사를 하러 간다던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김씨는 어머니가 남한으로 갔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어머니는 김씨를 데리고 오려 애썼다. 하지만 12살이던 김씨는 북한으로 잡혀가 수용소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고 반년 만에 풀려났다.
세 차례 시도 끝에 탈북에 성공한 김명씨가 오카리나를 들고 환히 웃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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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 온 김씨는 경기 김포에서 가족과 살았다. 하지만 남한 생활 역시 녹록하지 않았다. 학력이 없는 데다 ‘탈북자’ 딱지가 붙어 적응하기 어려웠다.
“주방보조, 식당 서빙, 안전요원, 원양어업, 농사 등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주식 투자까지 해봤어요. 남한 사회를 이해하려 닥치는 대로 경험했죠.” 스폰지처럼 자본주의 생활방식을 빨아들이면서도 김씨는 독학으로 오카리나를 익혔다. 서울 청계천·인사동에서 버스킹(거리 공연)도 틈틈이 했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독학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무작정 오카리나 연주로 유명한 경북 경산 대신대 김준우(39) 교수에게 연락했다. 지난해 그를 처음 만났고 지금은 한 달째 그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 내년엔 대신대 음악학부에 진학할 계획이다.
“아직 부족한 실력이지만 더 노력할 겁니다. 제 이야기를 주제로 한 브랜드 공연도 만들고 싶어요. 가족이 있는 자유의 땅에서 사람들의 감성을 녹이는 연주를 할 겁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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