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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국민연금에 달린 `대우조선 살리기`…출자전환 반대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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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조선 구조조정안 확정 / 내달 사채권자 집회 ◆

매일경제

대우조선에 대한 2조9000억원 추가 지원 대책이 발표된 23일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이 채무재조정 방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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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이 4월 중순 사채권자 집회를 열기로 하면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 의중에 시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를 포함한 다른 기관투자가들이 국민연금 결정을 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총 6회의 유형별 사채권자 집회 중 일부는 국민연금의 반대만으로도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미 국민연금 내부는 이번 채무조정안에 대해 '사실상 반대' 방향으로 분위기가 기운 것으로 알려져 사채권자 집회 부결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해양은 전체 사채권자의 30%를 차지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찬성을 얻어내는 데 사력을 다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P플랜을 보다 철저히 준비하겠다는 방침이다.

2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24일 이사회를 열고 사채권자 소집일을 확정할 예정이다. 현재로선 4월 17일과 18일에 사채권자 유형별로 총 6회의 집회를 열어 결의하는 내용이 유력시되고 있다. 개별 회차마다 총채권액의 3분의 1이 참석하고, 참석 채권액의 3분의 2가 동의해야 가결되며 모든 회차가 반드시 가결돼야 한다. 한 회차라도 부결이 나면 대우조선해양은 P플랜으로 가게 된다.

사채권자들 가운데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가장 많은 규모인 39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전체 회사채와 기업어음(CP) 1조5500억원의 약 4분의 1에 달하는 규모로 국민연금 동의 없이는 채무조정안이 힘을 얻기 어렵다. 국민연금을 포함해 우정사업본부(1800억원), 보험사,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의 회사채나 CP 보유 비중은 전체의 70%다. 국민연금은 이와 관련해 아직까지는 공식적인 의견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공식 입장을 도출하기 위해 이달 중 위원장(기금운용본부장), 내부위원 3명, 외부위원 3명으로 구성된 투자관리위원회를 열어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의 부실 내용을 심의할 예정이다. 해당 심의 내용은 다시 투자위원회의 안건으로 상정돼 의결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여기서 채무조정안에 대한 동의 여부가 결정된다.

현재 국민연금은 내부적으로는 채무조정안에 동의하지 않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고 있다. 채무조정안에 동의를 해준 뒤에도 대우조선해양이 정상화하지 못해 손실을 보게 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민의 피 같은 노후자금으로 재무적 투자자로 나서 투자한 자금인데, 50%나 출자전환하면서 손실을 떠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합병 건으로 이미 홍역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 또다시 그와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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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서는 국민연금이 불참 등 방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을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이 같은 중대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관련 담당자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동의'라는 결론을 내리고 의사표현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다른 연기금 관계자는 "법정관리에 돌입했을 때 채권 회수율이 훨씬 가혹하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는다"면서도 "그러나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해야 하는 데다 법정관리 돌입시 손실 여부 역시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국민연금 담당자 입장에선 채무조정안에 동의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신 국민연금이 "사채권자 집회 결정을 따르겠다"는 식의 수동적인 결론을 내리고 입장을 내놓지 않을 확률이 가장 높다는 관측이다. 이는 곧 기권인데,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 두 기관의 채권 비중이 전체 회사채의 4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기권'은 곧 부결로 이어질 수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6회의 사채권자 집회에서 각각 가결이 나와야 하는데 개별 집회 가결 가능성을 절반으로 본다면 사실상 전체 가결 확률은 1.56%에 불과하다"며 우려했다.

국내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의 결론은 우정사업본부나 다른 기관투자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과 회사채 투자 조건이 거의 유사한 기관투자가들이 그와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은 무리여서 대부분 따라갈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금융당국은 사채권자 집회 부결 가능성도 작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보다 철저한 P플랜 준비에 돌입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사채권자 집회 가결이 쉽진 않을 것으로 본다"며 "국민연금이 사채권자 집회에서 의견을 내지 않으면 사실상 부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P플랜을 철저히 준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효혜 기자 / 윤진호 기자 / 송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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