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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녹슨 선체 떠오르자…"꿈속 우리아이처럼 상처투성이" 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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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습 드러낸 세월호 / 팽목항서 밤새운 유족들 ◆

23일 오전 3시께 전남 진도군 조도면 부근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 1마일(1.6㎞) 떨어진 어업지도선 갑판 위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날부터 세월호 선체 부양 작업을 지켜보기 위해 밤잠을 잊은 채 TV를 지켜보던 가족들 중 일부가 갑판으로 나왔다. 궂은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해수면이 고요한 것을 확인한 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는 단원고 2학년 1반 조은화, 2반 허다윤, 6반 남현철·박영인, 단원고 교사 고창석·양승진, 일반 승객 권재근·권혁규 부자, 이영숙 씨 등 9명이다. 여전히 어둠이 짙게 깔린 바다를 향해 망원경을 꺼내 들고 집중해보지만 그저 검푸른 바다와 작업 현장의 희미한 불빛이 렌즈 안에 들어온 전부다. 갑판의 선원과 해양수산부 직원들이 "아직 멀었으니 좀 쉬시면서 기다리시라"고 안내했지만 초조한 마음에 잠이 올 리가 없었다.

1시간 뒤인 오전 4시께 "선체가 물 위로 부상했다"는 소식이 선체 내 휴게실로 전해졌다. 3년 전 참사 발생 이후 정확히 1073일 만이다. 여전히 육안으로 직접 부상한 세월호를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오전 5시 30분께 해수부가 직접 작업 바지선 위에서 촬영한 세월호 선체 옆면이 TV 화면을 통해 나타났다. 녹슬고 부서진 처참한 모습이었다. 유족들은 녹슬고 긁힌 선체 단면을 바라보면서 "엊그제 꿈에 나왔던 우리 아이처럼 상처투성이"라며 서로 손을 맞잡고 울먹였다. 일부 가족들은 이런 상황에서 기뻐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휴대폰으로 안산에 남은 유족들과 계속 연락하며 소식을 전하는 가족들도 목격됐다. 허다윤 양 어머니 박은미 씨(48)는 "어떻게 사람이 저런 데 있느냐. 제발 찾아달라"고 절규했다. 조은화 양 어머니 이금희 씨(48)는 "지금 울 때가 아니다"며 "딸을 찾고서 울어야지.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박씨를 다독이기도 했다.

박씨와 이씨 등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날 오전 참담했던 3년의 기다림에 대한 소회와 정부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은화 양 어머니 이씨는 "다윤이 엄마와 내가 새벽에 배가 올라왔다는 얘기를 듣고 환호를 질렀다. 이제 세월호가 올라오는구나. 우리 아이를 찾을 수 있겠구나. 우리 은화, 세월호 속에 그만 있어도 되는구나"라며 미수습자 9인의 이름을 불렀다. 이어 이씨는 "미수습자 엄마로서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는 기막힌 상황이 말이 되느냐"며 "그래도 국민께서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아파하고 함께하고 기도해주셨고 그 마음이 변함없으리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다윤 양 아버지 허흥환 씨는 "이게 마지막이 아니고 시작"이라며 "2년 전엔 하루라도 빨리 올라오길 바랐는데 선체를 보니 많이 망가져 있어 하루 늦어도 온전하게 올라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유족들은 "세월호선체조사위원이 8명인데 세월호 유족에게 배정된 3명 중 1명을 미수습자 가족으로 넣어달라"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해수부는 애타는 유가족들 심경을 고려해 세월호가 완전히 부상한 후 반잠수식 선박에 고박되면 가족들이 직접 반잠수 선박에 올라 간략한 추모제를 치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윤학배 해수부 차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수습자들을 위해 종교 행사를 하려고 한다"며 "자세한 내용은 가족들과 상의하겠다"고 말했다. 긴 침묵의 끝에서 깨어나는 세월호를 위로하기 위한 일반 시민들의 발길도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설치된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이어지고 있다.

팽목항 분향소에 비치된 방명록에는 인양 작업이 시작된 22일부터 시민들 글과 노란 리본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경남 거제에서 찾아왔다는 윤 모씨(52)는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을 전후해 세월호 인양까지 충격적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며 "모든 비정상이 정리되는 과정으로 이제 아이들도 편안히 하늘나라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양 이후에는 도움의 손길이 이어질 전망이다. 단원고가 위치한 경기 안산의 제종길 안산시장은 23일 "세월호를 반잠수식 선박에 싣는 작업까지 성공하면 저도 목포로 가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제 시장과 안산시의회 의원 6명은 이날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인양 현장 인근 해역의 배에 머물고 있는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을 면담했다. 제 시장은 "미수습자 가족과 동거차도 등에 있는 세월호 유족들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최대한 돕겠다"며 가족들을 격려했다. 이날 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 관계자들도 가족들이 탄 배를 찾아 시험 인양 결정 직후 다급하게 사고 해역으로 오게 된 가족들을 위해 담요 200개를 지원했다.

[진도 팽목항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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