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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리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월드투어’, 탄탄한 배우들에 직설적 연출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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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앤하이드’는 이제 선과 악으로 뚜렷하게 이분되는 이중인격 캐릭터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최근 개봉해 주목받은 영화 ‘23아이덴티티’가 무려 23개의 인격을 가진 다중인격인 것을 감안한다면 현대 관객에게 ‘지킬앤하이드’의 선악 대비는 예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일순 돌변하는 지킬과 하이드의 연기는 이 작품만이 가지는 색다른 볼거리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이번 ‘지킬앤하이드 월드투어’는 뮤지컬 넘버의 정석과도 같은 프랭크 와일드 혼의 흡입력 강한 명곡들을 원어로 감상할 수 있다는 면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조승우로 대변되는 한국 공연에 익숙해진 관객이라면 같은 넘버와 연기를 직설화법으로 리얼하게 그려낸 월드투어 버전의 연출을 새롭게 즐겨볼 수 있다.

월드투어 주연 배우들 캐릭터 해석 어땠나- 카일 딘 매시, 린지 블리든, 다이애나 디가모

이번 서울 공연은 그간 주역으로 무대에 올랐던 브래들리 딘이 건강상의 문제로 하차를 결정하면서 카일 딘 매시가 원캐스팅으로 무대를 이끌게 됐다. 외모적으로도 훤칠한 왕자님을 연상케 하는 카일은 매우 정직한 해석으로 극 초반의 지킬 박사를 연기했다. 그의 이러한 캐릭터 해석은 조승우나 브래들리 딘의 연기에 비해 극 후반의 하이드의 인상을 더욱 강렬하게 부각하는 반전 효과를 노린 듯하다. 하지만 반면에 초반 지킬 박사의 강인한 의지나 노력,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실험 정신 등은 다소 약화된 면이 있다. 전형적인 신사의 점잖음에 다소 심심하다고 느낄 때 쯤 폭풍처럼 몰아치는 강렬한 카리스마의 하이드 캐릭터가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번 공연에서 한국관객에게 유달리 사랑받는 넘버 ‘This is Moment’보다 오히려 지킬과 하이드의 대비를 한 곡으로 보여주는 넘버 ‘Confrontation’이 더욱 인상적으로 남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엠마 역의 린지 블리븐은 청아하고도 감성적인 음색으로 지킬 박사를 향한 순수한 사랑을 애절하게 노래했다. 그녀의 연기는 지고지순하고 평면적인 약혼녀 캐릭터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괴짜 취급을 받는 지킬 박사를 자신만의 신뢰와 신념으로 선택했다는 개인의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더욱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돋보이게 했다. 특히 그녀만의 부드럽고도 심지 있는 음색과 강인한 연기가 그간 엠마를 루시만큼 강렬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관객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남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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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지 블리븐의 엠마가 맑고 우아한 음색이라면 루시를 연기한 다이애나 디가모는 애교가 섞인 카랑카랑한 음색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팝가수 출신인 그녀의 화려한 기교와 무대매너는 다른 어느 주연배우보다도 개성이 뚜렷했다. 여기에 영국 뒷골목 환락가의 도발적인 모습을 노골적으로 연기한 ‘Bring on The Men’이나 지킬 박사에게서 이곳을 떠나 새 삶을 살라는 편지를 받고 희망과 설렘을 노래한 ‘A New Life’는 그녀의 가창력뿐만 아니라 루시의 다양한 면모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연기력까지 돋보여 관객의 큰 박수를 받았다.

실력과 개성 갖춘 앙상블의 탄탄함, 그들의 리프라이즈

이번 월드투어 공연은 표정이 하나하나 살아 있고 제각기 다른 목소리의 힘 있는 조합이 돋보이는 앙상블의 탄탄함에도 눈길이 갔다. 특히 인간의 양면성과 위선과 가식을 ‘가면 속의 허상’으로 표현한 넘버 ‘Facade’에서 특히 가창력이 균일하게 빼어난 앙상블의 압도적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앙상블에 의해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Facade(허상)’의 리프라이즈는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현대인의 이중적인 면모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 장면이라 하겠다.

그밖에도 조연으로 등장하는 엠마의 아버지나 지킬의 변호사 어터슨, 술집 여주인이나 주교와 같은 배역에도 연기력과 가창력이 탄탄한 실력파 배우들이 캐스팅되어 빠짐없이 기량을 발휘했다. 한국공연에 비해 19세기 영국의 사회현실을 더 리얼하게 느낄 수 있는 이유도 직설화법을 구사하는 대본에 더해진 인간군상의 조연들이 열연하는 개성적 연기 덕분이다. 특히 영국 뒷골목 환락가에서 펼쳐지는 성적 착취나 방탕한 귀족들의 어두운 삶은 매우 노골적으로 그려지는데 19세기 영국 사회 현실에 대한 가감 없는 표현과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느리게 즐기는 정찬의 맛, 1막의 속도감 아쉬워

공연계에서도 이제 자극적인 소재와 급박한 전개가 넘쳐나는 탓일까. 이번 공연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속도감이다. 특히 지킬박사가 하이드로 변신하는 극적 장면을 고대하며 지켜보는 관객들로서는 1막의 ‘정신병원-약혼식-이사회 논쟁’으로 이어지는 지나치게 자세한 스토리텔링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서두의 자세한 상황 설명과 인물 묘사가 캐릭터들의 성격을 이해하고 주인공 지킬 박사의 극단적인 결정을 납득하게 하는 데는 충분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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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1막의 지킬이 긴 서사를 가지고도 평범한 성격으로 제 개성을 발휘하지 못했던 만큼 2막의 강렬한 캐릭터인 하이드가 합리적인 설득력을 갖춘 자신만의 서사를 가지길 기대한 관객에게는 하이드의 악행이 별다른 계기 없이 반복되는 후반에 아쉬움이 커진다. 하이드의 캐릭터가 매력적인 만큼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좀 더 살아 있는 이야기와 고뇌하는 인간적인 면모 속에서 악행이 빛을 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느리게 즐기는 정찬 속에서도 마무리는 중요한 법이다. 빠짐없이 탄탄하게 잘 차린 정찬 속에서 후반 하이드만의 공감가는 서사를 그려냈다면 지킬과 하이드가 한 몸 속에서 번갈아 등장하며 선악의 대결을 팽팽하게 펼치는 넘버 ‘Confrontation’ 또한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선 깊은 감동을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은 영원하다’고 했던가.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무대로 각색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서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울림이 있다. 특히 뮤지컬에는 원작 소설에는 없었던 비극적인 로맨스가 더해지면서 ‘지킬앤하이드’만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완성됐다. ‘엠마’와 ‘루시’라는 전혀 다른 여성 캐릭터가 지킬 박사에게 품는 애절한 사랑이 관객의 마음을 흔들고, 여기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와일드혼의 감성적이고 흡입력 강한 넘버들이 듣는 귀를 충족시킨다. 그것만으로도 빠짐없이 코스를 갖춘 이 느린 정찬을 맛볼 의미는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사진_뉴스테이지 DB​

박세은 기자(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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