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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검찰에 소환된 ‘피의자 박근혜’ 위한 4가지 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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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치BAR_‘파면된 1호 대통령’의 특별한 하루_정치바



박근혜 전 대통령 검찰 조사가 22일 드디어 마무리됐다. 헌법을 위반한 중대한 사유로 불명예스럽게 파면된 자연인이었지만 검찰 조사 과정에서의 예우는 모자람이 없었다.

1. 삼성동에서 서초동까지 8분에 주파

박 전 대통령은 21일 오전 9시15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올림머리를 하고 서울 삼성동 집 대문 밖을 나섰다. 삼성동에서 서초동 검찰청사까지 평소 20분 정도가 걸리는 거리인 점을 감안하면 다소 늦게 차에 올라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박 전 대통령의 이동 경로를 완벽하게 통제했고 그 덕에 8분 만에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파면된 대통령은 연금이나 사무실 제공 등의 혜택은 박탈되지만 10년 동안의 청와대 경호실의 경호, 그 이후엔 경찰의 경호를 받는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의 안전한 이동을 위한 경찰의 교통통제는 합법적인 경호 서비스였다. 그러나 그 시각 발이 묶인 시민들은, 파면된 대통령이 검찰청에 조사받으러 나가는데 왜 출근 시간대에 불편을 겪어야 하냐는 불만을 토로했다.

2. 영상녹화를 피하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 쪽에 소환 일정 통보’ 방침을 밝히는 비공개 브리핑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영상녹화 여부는 박 전 대통령의 의사와 상관없이 검찰이 정하는 거냐’는 질문에 “조사 방법은 우리가 정한다. 참고인은 동의를 받아야 하고 피의자에겐 통보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영상녹화 문제는 검찰이 자체적으로 판단할 문제이지 피의자인 박 전 대통령과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검찰청에서의 조사 상황을 디지털 파일로 담은 영상녹화물은 법정에 선 피고인이 검찰에서의 본인 진술 자체를 부인하면 이를 반박하는 증거로 제출된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온갖 거짓말로 진실을 은폐하려 했기에 육성 진술 장면을 영상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박 전 대통령이 특검의 조사를 거부했던 이유 중 하나도 영상녹화 문제였다.

그간의 상황을 감안해 이번 검찰 조사에서는 박 전 대통령 조사 상황이 녹화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게 ‘의향’을 물어본 뒤 조사 과정을 녹화하지 않았다. “진술을 듣는 게 중요한데 절차적인 문제로 실랑이가 되면 조사가 어려운 부분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쪽 손범규 변호사는 “영상녹화에 대해서, 검찰에서 하자고 하면 하고, 필요 없다고 하면 안 하려고 했는데 ‘할 거냐, 말 거냐’라고 묻길래 ‘안 하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영상녹화에 따른 ‘절차적인 실랑이’를 우려했다지만 조사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피의자가 반발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영상녹화가 영 껄끄러웠던 박 전 대통령으로선 ‘생각지도 못한 편의’를 검찰로부터 제공받은 셈이 됐다.

3. “대통령님” 소리 듣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실에 앉은 박 전 대통령을 검사는 “대통령님”이라고 불렀다. 임기도 못 채우고 불명예스럽게 대통령직이 박탈된 그에게 현직 때 직함을 그대로 써준 것이다.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규정을 보면 박근혜씨에게 붙일 수 있는 직함은 ‘전직 대통령’이다. “헌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재직하였던 사람”, 즉 대통령으로 선출돼 일했던 사람이면 말년이 어떻든 ‘전(직) 대통령’이라는 얘기다. “대통령님”은 ‘전 대통령’을 편의상 줄이면서 존칭까지 담긴 호칭이라고 봐야겠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 혐의로 대검에 출석해 조사받을 때 우병우 당시 중수1과장 등 검사들은 피의자인 노 전 대통령을 지칭할 때 “대통령께서”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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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의자신문조서 검토를 마치고 22일 오전 6시55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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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1시간…전직 대통령 최장 소환조사?

박 전 대통령 조사는 오전 9시35분에 시작해 밤 11시40분까지 14시간 만에 끝났다. 점심·저녁 식사, 휴식 시간 등을 빼면 12시간이 채 안 된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은 특유의 만연체 화법으로 조사에 임했다고 한다. 뇌물,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등 13가지 범죄 피의자인 박 전 대통령 진술의 모순점을 검사가 파고들어 추궁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을 시간이다. 검찰과 특검 수사의 성패를 좌우할 삼성 뇌물 사건 조사를 맡은 이원석 특수1부장은 박 전 대통령을 3시간 정도 신문할 수 있었다.

자정을 넘기게 되면 검찰은 피의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심야 조사에 들어가는데 대부분의 피의자는 이에 동의한다. “이번에 조사받고 끝내겠습니까, 아니면 집에 갔다가 다시 오겠습니까”라고 물으면 피의자로선 검찰청 나온 김에 한 번에 몰아서 조사받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조사에서는 자정을 넘기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야 박 전 대통령이 귀가해 ‘대통령 소환조사 21시간, 역대 최장’이라는 소리를 듣는 건 그가 자신의 피의자신문조서를 무려 7시간이나 검토했기 때문이다. 조서 검토를 제외한 대면조사 시간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16시간 20분, 노무현 전 대통령이 13시간이었다.

전직 대통령 검찰 조사는 이번이 4번째다. 검찰은 전례를 감안해 박 전 대통령을 예우했겠지만 임기도 못 채우고 청와대에서 쫓겨난 대통령은 그가 처음이다.

박 전 대통령과 뇌물죄 삼각동맹의 두 축인 최순실씨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직권남용의 하수인인 안종범 전 경제수석,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문화체육부 장관 등은 모조리 구속됐다. 이제 ‘자연인 박근혜’의 신병 처리만 남았다. 파면된 전직 대통령에게 예를 갖춘 검찰의 의전이 정당한 예우인지, 아니면 과도한 특혜였는지는 결국, 구속영장을 손에 들고 있는 검찰의 액션에 따라 최종적인 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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