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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일상의 우울, 광장에서의 조증…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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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연 포럼] 개인 없는 개인주의의 나라

'페미니스트 대통령', '전 국민 안식년제', '전 국민 기본소득 보장'. 유력 대선 후보들의 주요 기조 및 공약을 나열해보면, 현시대의 좌표와 정치적 해석 사이의 괴리를 느낄 수 있다. '페미니스트, 안식년, 기본소득'이라는 키워드에는 사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와 나아갈 방향이 모두 숨어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러한 공약을 들었을 때 우리의 감성과 직관은 '아! 이거다!' 하는 느낌을 받기는커녕 가려운 곳은 놔두고 조금 비껴간 곳을 긁는 것 같아 시원치가 않다. 오히려 '일상의 울증과 광장의 조증'으로 오늘날 대다수 국민의 심경을 표현한 사회학자 엄기호의 직설이 더 와 닿는다.

그렇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억울하고 우울하다. 이 숨 막히는 듯한 '울증'은 생존 여건에 대한 불안 및 이 일상적 불안과 울증을 해소할 능력과 공간의 부재에 기인한다. 인격 유지에 필수적 요건인 생존의 안정과 연대를 통한 사회적 인정의 기회 모두를 박탈당한 한국 사회의 '개인'들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피로하고 억울하다. 이처럼 생존과 자존의 자유를 모두 박탈당한 시민들의 억울함은 오로지 허용된 익명의 표출 공간인 인터넷이나 광장에서만 토로 되고 공유된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오직 세 가지의 편협한 의미로만 실현된다. 경제적 비 간섭주의, 소비능력, 형식적인 선거권. 인격적 주체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와 같은 '자유'의 용례는 지극히 집단적이고 전체주의적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하게 그럴듯한 자유인 통치체제 구성의 자유는 얼마 전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확인했다. 우리에게는 이 자유밖에 없기에 그나마 광장에서의 '조증'은 가능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짓누르는 일상의 '울증'이다.

프레시안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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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각국의 중산층 기준을 비교해 놓은 '중산층 별곡(別曲)'이라는 자료가 많은 네티즌 사이에서 공유되며 회자되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은 중산층의 기준으로 '1개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하고, 스포츠를 즐기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으며, 사회적 약자를 도우며 공분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꼽고, 영국인들은 중산층 시민을 '페어플레이 정신을 소유하며 신념을 지니고 독선적이지 않으며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하며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은 '자가 소유의 30평대 아파트 보유,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2000CC급 중형차 보유, 예금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 1년에 한 차례의 해외여행'과 같은 물질적 요소들로만 표상되었다.

우리는 이런 자료를 보면 두 가지 측면에서 우울함을 느낀다. 먼저, 자신의 삶이 위와 같은 중산층의 물질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또 한 가지는 왜 우리는 이러한 물질적 기준에만 목매달 수밖에 없으며 더 여유롭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없는가에 대해…. 이는 우리가 기대하는 행복한 삶의 조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더 우울하다. 우리가 내세운 '중산층'이라는 행복의 조건은 일정 수준 이상의 물질적 여건만으로 충족되는데 이는 사실 상위 10% 정도의 계층에게만 허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각국의 중산층의 기준이 이처럼 획일화된 객관 지표로 정리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이 자료가 공신력 있는 기관에 의해 정리된 명확한 근거를 결여했다 해도 이러한 자료가 많은 공감을 얻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우리의 무너진 삶의 여건을 '중산층'에 대한 관심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는 동시에 현세적 물질주의로만 구성된 우리 삶의 지향과 한 명의 주체적 시민으로서의 자존을 성취하는 것을 중시하는 소위 서구 선진국 국민들과의 인식의 격차에 대한 자조적 성찰도 드러낸다.

영화 <거짓말>(김동명 감독, 2013)에는 이처럼 우리의 짓이겨진 인격적 자존감에서 비롯된 울증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영화에서 여주인공 아영(김꽃비 분)은 피부 관리실 조무사로 일하며 알콜중독자인 언니(이선희 분)와 변변찮은 일자리를 전전하는 남동생(진희 분)을 거두며 생계를 꾸려간다. 손이 부르트도록 손님의 여드름을 짜내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두운 집에는 늘 술에 취해 볼이 벌건 언니가 멍하니 텔레비전을 응시하고 있고 아영은 이 모든 절망적인 현실에 늘 신경이 곤두서있다. 그녀는 점심시간이면 밖으로 나와 대형 평수의 아파트를 보러 다니고 좋은 가전제품들을 구매했다 해지하는 일을 반복하며 가상의 시공간에서 자신의 현실에서 잠시나마 도피한다. 그녀는 중고차 매매업체의 직원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애인(태호 분)을 만났지만, 작은 방 한 칸과 부엌이 전부인 그의 자취방을 둘러보고는 애인에게 화를 내면서도 동료 직원들에게는 좋은 직업과 상당한 재산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는 것처럼 거짓말하며 자신의 자존감을 충족한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평생 입성 불가능할 것 같은 브랜드 아파트, 이런 아파트에 어울리는 고급 가전제품, 외제 차 주변을 서성이면서 아영은 현실과 기대의 극복될 수 없는 괴리 속에서 괴로워하고 억울해한다. 이런 아영의 괴로움과 억울함은 어쩌면 많은 젊은이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아니, 이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에 투영된 억울함과 피로의 맨살이다. 방 세 개짜리 아파트, 수백만 원짜리 텔레비전 혹은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 중형차, 한 자녀 당 최소 영수 기본과목 및 예체능 하나 정도의 사교육을 시킬 수 있는 소득, 주말에 대형쇼핑몰 나들이 겸 외식, 휴가철 외국여행. 아마 여건과 상황에 따라 그 기준은 다르겠지만 '중산층'을 표상하는 이 6종 세트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응당 누려야 할 마음의 짐이자 빚으로 각인되어 있고,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불행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사적으로는 공개하기를 꺼린다. 그래서 오직 익명의 광장에서만 표출의 즐거움이 허용된다. 영화 속 아영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자존감 형성에 이와 같은 물질적 요소들의 비중을 상당히 반영하며, 이를 갖추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러한 부끄러움은 우리 폐부 깊숙이 자리한 우리의 인격의 종류를 보여준다. 그 인격은 너무나 물질적,획일적이며 또한 상당히 위축되어 있다.

우리의 자아는 왜 이렇게 획일적이고 위축되어 있는가? 일제 강점기, 전쟁, 분단, 미 군정기의 급박한 역사 속에서 한국인의 근대적 인성은 생존과 관련된 판단능력으로만 협소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세적 생존능력만으로 규정된 인간성은 국가 주도의 양적 경제성장 구도에서 국가의 목표라는 전체에 편입된 도구적 존재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된다. 즉, 한국의 '근대적 개인'은 주체적 변혁의 힘을 가진 독립된 개인의 추동력을 연습할 기회도 없었고 급박한 생존 경쟁 속에서 또 다른 내면의 인격성을 계발하지 못한 채 물질적 요건에만 순응하는 방식으로 가치관을 정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체적 개인들의 '합의'를 전제로 한 민주주의나 자유주의와 같은 정치 경제적 이념들은 형식적으로만 받아들여져 합리적 주체 간의 '연대성'이 아닌 왜곡된 관계성인 연고주의나 이중적 규범주의를 바탕으로 운용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호 불신은 일상화 되었고 생존 경쟁에서의 안정적 고지 확보만이 우리가 정립해내야 할 인격과 자유의 전부가 되었다.

자유방임주의를 위시한 한국 사회의 강자 우선, 약자 방치의 경제 시스템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강자의 독선에 대한 제재를 막은 전체주의에 불과하다. 그 결과 대다수 국민의 생존의 자유는 극심히 침해되었다. 최소한의 생존 자립 능력도 없는 개인들이 대다수인데 각자도생의 자유를 표방하는 자유주의는 단지 무책임한 개인주의에 불과하다. 개인의 자존이 사회의 성립보다 먼저라는 개인주의는 개인의 모든 자유를 방임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오히려 사회가 개인의 자존만큼은 지켜줘야 한다는 중요도의 우선성을 의미한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 민주공화국을 공동체의 목표로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와 민주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이 각자의 경향대로 행복을 누리며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필수다. 자존을 유지할 수 있는 자유의 보장, 즉 생존의 자유와 자기 인격 형성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주의의 모습이다.

그런데 다수 국민이 희망하는 이러한 생존 여건은 현재 상위 10%에게만 허용되어 있고 이 기준에 도달할 수 없는 국민의 열패감과 자존감의 위축은 각종 분노와 절망으로 드러나고 있다. '헬조선', 'N포세대'라는 절망과 포기의 언어는 이미 청년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으며, 이러한 분노는 각기 다른 성별과 세대를 향한 편향적 인식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맹자도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無恒産因無恒心)'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적인 생존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신념과 원칙, 신뢰의 덕목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사회 안전망이 결여된 우리의 철저한 개인주의적 경제 시스템을 고려할 때, 중산층의 삶을 원하는 물질적 욕구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대다수 국민들이 지향하는 그 중산층의 기준과 생활 방식이 적정한가의 문제는 남는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의 삶의 수준은 경제 규모보다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이나 대형 아파트, 중형차 보유와 같은 기준에서 볼 수 있듯 실제적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졌으며 그 지출 방식도 지나치게 획일적이다.

실제로는 투룸 빌라 전월세 감당도 벅찬데 중산층의 최소한의 기준에 맞춰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마련하고 소득의 대부분을 대출이자와 원금 상환에 쏟아붓고 있는 젊은 부부나, 상위 10%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지만 역시 자신의 경제적 여건에 비해 과도한 투자를 위해 무리한 대출을 받아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일부 기성세대의 경우에서 보듯 삶의 가치를 오직 집이나 차, 소비에서만 찾는 물질적 인격은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울증만을 낳는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기본적인 생존 여건이 보장된 상태에서 인격과 물질의 절대량을 무조건 동일시하는 협소한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참여와 연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진정한 개인의 형성이 시급하다. 또한 물질의 향유에 있어서도 그 소비 방식과 충족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자기 삶의 신념을 자율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독립적 인격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러한 개인들이 있을 때 비로소 연대를 바탕으로 한 의미 있는 복지 체제 구성 논의도 가능할 것이다.

획일적이고 과시적인 물품의 소비가 아닌 북유럽 스타일의 물품처럼 용도에 맞고 실용적이며 개성 있는 물건의 소비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젊은 세대의 소비 성향, 반값결혼과 같이 기존의 거품성 과시욕을 자제하고 합리적 인격 간 결합으로서의 결혼의 의의를 강조하는 문화의 확산 등은 이처럼 소비와 생산의 기본 욕구를 존중하면서도 그 안에서 물질만으로 충족될 수 없는 가치를 추구하며 자존감의 회복을 누리려는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공론화되지 못했던 약자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상징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나 삶의 질과 여유를 고려한 전 국민 안식년제, 보편 복지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시험해보려는 기본소득 논의는 이러한 측면에서 새로운 시대의 삶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가치관에 대한 인식과 해법은 지나치게 피상적이며 현실의 울증을 실질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이미 생존의 자유를 획득한 일부 계층의 한가한 이야기, 혹은 대다수 국민들의 연대적 합의와는 관련 없는 진보적 복지주의자들의 레토릭 수준 정도로만 인식된다. 우리의 의식은 탈 물질적이며 획일화되지 않은 '자존'과 '독립'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에 맞는 '개인'의 생존 여건도, 사회 문화적 인정과 이해의 여건도 아직은 미비하다. 일상의 우울, 광장에서의 조증이 아닌 일상의 만족, 광장에서의 합리적 연대를 희망하는 이 시대의 필요와 감성을 제대로 해석하고 제도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정치적 번역이 중요한 때다.

기자 : 이지영 다준다청년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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