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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매거진M] '토니 에드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너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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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에드만’(원제 Toni Erdmann, 3월 16일 개봉, 마렌 아데 감독)을 한마디로 소개하기는 매우 어렵다. 주연 배우 샌드라 휠러조차 “영화가 너무 복합적이어서 ‘아버지가 딸의 직장에 찾아간다’는 말 다음엔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을 정도니까. 2시간 42분 동안 도무지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게 관객을 끌고 가다, 적어도 두 번 포복절도를 일으키고, 마침내 가슴으로 눈물 흘리게 만드는 작품이니 말이다. ‘LA 타임스’ ‘뉴욕 타임스’ ‘가디언’ 등 전 세계 주요 매체들이 “지난해 제69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사실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아야 했다”고 평한 ‘토니 에드만’의 면모를 파헤쳤다.

중앙일보

토니 에드만 / 사진=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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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1

웃음과 감동,

사회적 풍자까지 놓치지 않는

‘토니 에드만’은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가 어떤 인물인지 보여 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택배 배달원에게까지 장난을 못 쳐 안달인 백발의 남자. 그 장난이 기이하기 짝이 없다. 그가 농담을 던지거나 장난을 치고, 주변 사람들이 황당해 하는 그 어색한 공기를 영화는 천천히 담아낸다. 그 호흡이 굉장히 여유롭다. 여느 할리우드 장르영화처럼 재빠른 편집을 통해 극적으로 상황을 간추리지 않는다. 거칠게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유럽 작가영화의 관조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독일에 살던 빈프리트가 냉철한 딸 이네스(샌드라 휠러)가 일하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로 날아가, 우스꽝스러운 의치와 덥수룩한 가발을 쓰고, 이네스와 주변 인물들에게 자신을 사업가 혹은 독일 대사 ‘토니 에드만’이라 소개하며 벌어지는 이 모든 이야기를 말이다. 독일의 마렌 아데(40) 감독은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안이하게 생략하는 걸 싫어한다”고 설명했다. “극 중에서 인물이 그 상황의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 간다는 믿음을 주려 했고, 이를 연출의 최우선으로 삼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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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에드만 / 사진=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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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처한 상황을 천천히 복합적으로 살피는 연출 방식은, 극 중반을 넘기며 대단한 효과를 발휘한다. 예컨대 빈프리트의 장난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하게 된 이네스를 비추는 장면이라든가, 이네스의 생일 파티에 빈프리트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나타나 벌어지는 촌극이 박장대소를 일으키는 것. 이는 그 아래 켜켜이 쌓인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을, 관객이 충분히 공감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그 장면들은 엄청난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짠한 감동과 함께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한 성찰을 선사한다. 그야말로 웃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지는 통렬한 희비극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칸영화제 상영 당시 많은 언론들이 이 영화를 ‘놀라운 코미디’라 일컬었는데, 그것은 아데 감독과 두 주연 배우에게 예상 밖의 일이었다. “진지하고 슬픈 드라마라 생각하며 연기했다”는 것이 휠러의 말이다.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 말고도, ‘토니 에드만’은 이네스가 일하는 모습을 통해 성차별적 직장 문화를 신랄하게 꼬집기까지 한다.



정체 2

유치찬란 아버지 vs 냉소적인 딸, 그들의 갈등에 주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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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에드만 / 사진=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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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감각을 잃지 마세요.” 빈프리트, 아니 토니 에드만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을 향해 진심 어린 목소리로 건네는 말이다. 그의 말대로, 빈프리트는 “이것저것 하는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삶에서 “뭘 이루는 데만 치중할 게 아니라” “붙잡아 둘 수 없는 순간을 즐기고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머는 그가 그 순간을 즐기는 방법이다. 이네스는 그와 반대다. 이네스에게는 일과 성공이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 밤낮 없이 일한다. 독일에 있는 가족과도 멀어진 지 오래다. 그의 직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어떤 업무를 외주로 돌릴지, 큰 기업을 상대로 컨설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느 부서의 누구를 잘라 그 일을 외부 업체에 맡길지 조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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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프리트에 비할 때 이네스가 비인간적이고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이 부녀의 갈등은 좀 더 깊은 뜻을 지닌다. 언제든 유머와 웃음이 먼저인 빈프리트. 그는 모든 걸 ‘좋게’ 넘기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네스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굉장히 ‘가혹한’ 일이다. 토니 에드만이 된 빈프리트가 “유머 감각을 잃지 말라”는 말을 건넨 이는, 곧 집이 헐려 거리로 내쫓길지 모르는 사람이다. 아데 감독은 그 갈등이 세대 간의 것이라 말한다. “빈프리트는 전형적인 전후(戰後) 세대다. 자유로운 세계를 믿고, 정치적이고 인간적인 가치를 위해 싸웠으며, 아이들에게 그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국경을 허물면서 전 세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다. 빈프리트의 세대가 옹호했던 인도주의는 가라앉는 섬, 너무 순진한 것이 되어 버렸다.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졌다. 나 역시 더 이상 누구를 탓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빈프리트와 이네스 중 누가 옳고 그른지 답을 내리려 한 것은 아니다. 그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 뿐이다.”

정체3

마렌 아데,

새로운 작가 감독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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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에드만’은 아데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세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 감독으로 떠올랐다. 그의 첫 번째 장편 ‘나만의 숲’(2003)은 제21회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드라마 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두 번째 장편 ‘에브리원 엘스’(2009)는 제5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나만의 숲’은 시골 출신 신참 교사 멜라니(에바 로에보)가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이웃 티나(다니엘라 홀츠)와 친해지는 데 매달린 나머지 자꾸 거짓말하게 되는 이야기다. ‘에브리원 엘스’는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으로 휴가를 떠난 젊은 연인 기티(버짓 미니크마이어)와 크리스(라르스 아이딩어)의 이야기다. 둘 사이에 묘한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이상적으로 보이는 사나(니콜 마리슈카)와 한스(한스 요칸 바그너) 부부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두 편을 나란히 보면, 아데 감독은 인간관계의 미묘한 질서와 변화를 파헤쳐 각 인물의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그건 ‘토니 에드만’도 마찬가지다. 아데 감독은 이 영화가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이야기”라 정의한다. “극 후반, 이네스는 정신 나간 일을 함으로써 혹은 아주 큰 용기를 발휘함으로써 삶의 주도권을 다시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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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배우 잭 니콜슨 역시 그 내면의 여정에 반했다. 멜로영화 ‘에브리씽 유브 갓’(2010, 제임스 L 브룩스 감독) 이후 연기 활동을 쉬고 있던 그가 ‘토니 에드만’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에 아버지 역으로 출연하게 된 것. 딸 역은 코미디 배우 크리스틴 위그가 맡는다. 감독은 누가 될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아데 감독은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이 독특한 매력으로 뭉친 영화를 할리우드가 어떻게 리메이크할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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