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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파면 11일 만에 '29자 메시지'… 1001호 조사실 직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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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조사 안팎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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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이 사건 진상규명이 잘 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십시오.”(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

“그간 검찰이 수고가 많았습니다. 성실히 잘 조사를 받겠습니다.”(박근혜 전 대통령)

21일 오전 9시25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10층. 평소 특수1부 검사들이 사용하는 1001호 조사실과 연결된 1002호 휴게실에서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마주앉았다.

노 차장은 박 전 대통령 비리 혐의를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부본부장이다. 앞으로 이뤄질 조사 일정과 진행 방식에 관한 노 차장의 설명에 박 전 대통령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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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입장표명 뒤 조사실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짤막한 입장표명을 마친 뒤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이날 검찰에 출석한 박 전 대통령은 평소처럼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였다. 머리를 단정하게 올렸고 짙은 남색 코트에 바지를 입었다. 그는 1월23일 설 연휴를 앞두고 국립현충원을 찾아 부친(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서 성묘할 때,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 후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복귀할 때에도 같은 색상의 코트를 입었다.

박 전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즐겨 입던 짙은 색 코트와 바지 차림은 집권당을 향한 ‘전투 모드’ 복장으로 통했다. 그 때문에 이날도 검찰 수사에 임하는 자세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변호인을 통해 “사상누각”, “억지로 엮은 것” 등 표현을 써가며 검찰 수사를 비난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 한웅재 형사8부장이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오전 9시35분부터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제 모금 의혹 등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고 11시간만인 오후 8시40분부터서는 이원석 특수1부장이 맡아 최순실씨에 대한 삼성의 부당 지원 의혹 등을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질문할 때는 ‘대통령님’이라고 불렀지만 조서에는 ‘피의자’로 기재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예” 또는 “아니요”라고 의사표시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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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실에는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정장현 변호사가 입회해 박 전 대통령의 답변을 도왔다. 손범규·서성건·이상용·채명성 변호사도 대기실에 머물며 지원태세를 갖췄다.

조사 시작에 앞서 녹음·녹화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단 간에 논의가 이뤄졌다. 피의자는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조사 전 과정을 녹음·녹화할 수 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박영수 특별검사가 대면조사를 요구했을 당시 “녹음·녹화는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하다 조사 자체가 무산된 전례가 있다. 이 점을 감안한 검찰이 녹음·녹화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었고 박 전 대통령 측이 부동의 의사를 밝혀 녹음·녹화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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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오전 조사는 약 2시간30분 만에 끝났고 박 전 대통령은 낮 12시5분부터 변호인, 수행원들과 함께 미리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도시락엔 김밥, 샌드위치, 유부초밥 등이 조금씩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4시간25분 동안 조사를 받은 박 전 대통령은 조사실 옆 휴게실에서 경호실 측이 준비한 죽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오후 7시10분부터 다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이날 보안과 경호 차원에서 외부인의 청사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기자들도 며칠 전에 신청한 비표를 발급받고 신원확인을 거친 뒤에야 청사에 드나들 수 있었다. 기자단은 박 전 대통령 출석에 대비해 6가지 질문을 미리 준비했으나 박 전 대통령은 “국민께 송구스럽다.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짧게 말한 뒤 질문을 받지 않고 곧장 조사실로 향했다.

김건호·김태훈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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