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6 (목)

[필동정담] 김우중의 50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자주했던 말이 "이봐, 해봤어?"라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은 "세계 경영"이다. 그가 1989년 출간한 책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집집마다 책꽂이에 꽂혀 있었을 정도로 베스트셀러였다. 당시 우리 집에서 쓰던 TV,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중 대다수가 '탱크주의'를 표방한 대우 제품이었고 아버지의 첫 자동차도 대우 '르망'이었다. 남들이 국내에서 뭘 팔까 연구할 때 그는 냉전체제 붕괴로 떠오른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로 말을 달렸다. 칭기즈칸의 진군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킴기스칸'. 1998년 해외법인은 400개에 육박했다.

31세 나이에 단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세우고 재계 2위 기업으로 키운 김 전 회장은 샐러리맨들의 우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추앙은 1999년 7월 유동성 위기로 그룹이 몰락하면서 같이 막을 내렸다. 한때 팽창 경영의 모델로 박수를 받았던 그의 전략도 그룹이 패망하자 '문어발 경영'으로 폄하됐다.

김우중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간다. '돌진형 리더십의 화신'이라는 긍정 평가부터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냉혹한 평가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1분1초도 아낀 '워커홀릭'이기도 했고 폭군으로 군림했던 '개발연대형 인간'이기도 했다. 그의 몰락한 제국 대우가 오늘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청년 김우중이 명동에 20평 사무실을 차렸던 날을 기념하기 위해 과거의 대우맨들이 오늘 한자리에 모인다. 베트남에서 청년사업가를 육성하고 있는 팔순의 그도 한국을 찾았다. 망한 기업의 나이를 세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대우의 경우는 좀 다르다. 아직도 대우조선, 대우건설, 포스코대우 등 대우 브랜드를 걸고 있는 10여 개 기업이 산업계에 빛과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그의 수출 드라이브가 성공했더라면, 외환위기라는 파도 앞에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재계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김우중의 공과에 대해서는 오래도록 논쟁이 지속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의 기업가 정신이다. 맨주먹으로 세계를 호령했던 도전과 패기, 세계 경영은 당시 한국 경제에 이정표를 제시했다. 세계 경영은 대우와 같이 종말을 맞을 유물이 아니라 지금 다시 꺼내들어야 할 화두다.

[심윤희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